[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서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버스는 새벽 4시 정각에 출발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그 버스와 4시 5분 경에 출발하는 그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 만에 신도림과 구로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사이 그 복도 길까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중간 줄임) 이 버스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은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 어쩌다가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서 안 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서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오십 대, 육십 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새만금 해창 갯벌에서 진행된 세계 잼버리 대회가 폐영식 뒤에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입지 선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예산 지원, 업자 선정, 지원 체계, 책임 소재 등등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계속 보도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총체적인 부실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새만금 사업은 필자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추적해 온 사업이다. 이 글에서는 새만금 사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검토해보고 새만금 갯벌의 미래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2005년 어느 날, 전북발전연구원(현 전북연구원)에 근무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신은 고향이 전주인데 왜 그렇게 새만금 사업을 반대하느냐? 애향심을 발휘해서 새만금 사업이 완성되도록 도와 달라.” 나의 답변은 이랬다. “내가 고향을 사랑하기 때문에 새만금 사업을 반대한다.”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사업이라는 새만금 간척 사업은 1987년 12월 11일에, 대통령 선거를 불과 5일 앞두고 노태우 후보가 전라북도 도민들의 표를 의식하여 선거 공약으로 발표하면서 탄생하였다. 새만금(새萬金)이라는 이름은 김제평야의 다른 이름인 만금평야(만경평야의 ‘萬’과 김제평야의 ‘金’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간송(澗松). 산골에 흐르는 물, 그리고 푸른 소나무를 뜻하는 이 말은 어느새 우리 문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간송은 물려받은 큰 재산으로 우리 문화재를 지켜내는 데 열과 성을 다한 전형필 선생의 호다. 오늘날 국보급 문화재를 한국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우리 미술사에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것도 간송이 그 모든 것을 지켜내지 않았더라면 요원했을 일이다. 최석조가 쓴 이 책 《조선의 백만장자 간송 전형필, 문화로 나라를 지키다》는 ‘간송미술관’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간송 전형필의 일생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간송에 막 관심을 가진 청소년이 읽기에도 좋다. 미술 교과서에서 보았던 수많은 그림과 도자기가 알고 보면 간송의 엄청난 노력으로 이 땅에 남아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간송 전형필은 1906년 서울에서 아버지 전영기, 어머니 밀양 박씨 사이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큰형 형설은 벌써 열다섯이었으니, 정말 늦둥이였던 셈이다. 아들이 귀한 집안이었기에 형필은 자식이 없던 작은아버지 전명기의 양자로 들어갔고, 온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선대 할아버지 때부터 배오개 장터(지금의 종로)에서 장사한 그의 집안은 나라에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만이불일(滿而不溢)’ "가득 차면서도 넘치지 않는다."라는 말씀입니다. 승진하여 윗자리에 오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 넘치지 않는 지혜가 있다면 위태롭지 않습니다. 그것이 오래도록 존귀함을 지켜주지요. 공자는 인(仁)을 강조했습니다. 이 글자를 파자하면 人이 두 개가 나옵니다. 곧 두 사람이라는 의미가 되지요. 이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하는 것보다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높은 지붕 위에 올라간 새끼 염소는 늑대가 올라올 수 없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안심하고 늑대를 놀려댑니다. 늑대는 새끼 염소를 올려다보며 말하지요. "이 철딱서니 없는 것아. 네가 지금 우쭐거릴 수 있는 건 네가 잘나서가 아니라 네가 서 있는 그 자리 때문이란다." 윗자리에서도 겸손하게 아래를 올려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중국 전국시대 오기라는 장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아내를 죽인 무자비함 때문에 역사적으로 폄훼된 인물입니다. 지금도 오기 부리지 말라는 말씀이 있고 보면 오기라는 인물이 그다지 좋은 평을 받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하지만 그의 장수로서의 행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노회찬 평전》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동안 노회찬 재단에서는 ‘인간 노회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노회찬평전 기획위원회를 구성하여 노회찬의 말과 행적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이광호 씨가 글로 엮어내는 작업을 하여, 4년 만에 평전이 세상에 나왔네요. <미디어 오늘>, <레디앙> 등의 편집자였던 이광호 씨는 이를 위해 노회찬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을 만나 대담을 하였답니다. 사실 이광호 씨는 노회찬과는 살아생전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답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적임자라 생각하여, 평전 기획위원회에서는 그에게 집필을 의뢰한 것이랍니다. 이광호 씨는 머리말에서 노회찬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현명한 무신론자, 마음이 따뜻한 유물론자, 마키아벨리스트와는 거리가 먼, 순진한 구석이 있었던 정치인, 과묵한 달변가, 변화에 열려 있고 첨단을 즐길 줄 아는 원칙주의자, 베토벤ㆍ차이콥스키ㆍ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좋아한 음악 애호가, 박학다식을 뽐낸 음식 마니아, 요리를 즐긴 남자, 소년의 호기심을 지닌 어른,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비판받지 않았던 페미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본 고전문학을 전공하면서 천여 년 전 작품들 중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삶을 담은 작품에 매료되었고 공감했습니다. 바쁜 현대인이 잊고 살았던 사계절의 변화를 나도 느긋하게 느끼면서 즐기고 싶어서 이번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계절은 한 바퀴 돌면 다시 새로운 계절이 돌아옵니다. 27세인 내가 그린 사계절화 70점은 이번 전시에 처음 공개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려나가겠다는 다짐을 담은 전시를 예쁘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 이는 젊은 일본 작가 나카가와 세이라(中河星良)의 말이다. 나카가와 세이라는 1996년생으로 일본 시코쿠 도쿠시마현 바닷가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대학생이 되면서 도쿄에서 생활하기 시작했고, 대학원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일본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2015년 대학 2학년 때 KADOKAWA 출판사의 ‘코믹그랑프리’에 입선하여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연재하는 잡지 ‘하루타’에서 만화가로 등단했고, 그 뒤 5년 동안 ‘하루타’에 작품을 연재해왔다. 이번에 인천관동갤러리에서 8월 11일(금) 부터 나카가와 세이라 작가의 "사계(四季)" 전이 열린다. 이번 전시 그림은 나카가와 세이라가 대학원에서 전공한 고전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경주 최부잣집. 부를 일구는 것은 어렵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려운 것처럼, 부를 이어가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그렇게 부를 쌓으면서도 세간의 칭송을 받는 것이다. 사람들은 부자를 질시한다. 돈과 권력에는 그만큼 시샘하는 눈길이 따라붙는다. 그렇기에 부와 권력을 지닌 이들은 그 눈길을 피해 더 높은 곳으로 가고, 공고한 자신만의 성채를 짓는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지키려 한다. 황혜진이 쓴 책, 《경주 최부잣집은 어떻게 베풀었을까?》는 그와 반대로 절제와 중용을 실천하며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들 속에 머물렀던 경주 최부잣집의 이야기를 읽기 쉬운 문체와 그림으로 담아냈다. 경주 최부잣집이 대를 이어 실천했던 부에 대한 철학, 진정한 명문가 정신이 녹아들어 있다. 최부잣집에는 여섯 가지 가훈이 있었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이는 부와 권력을 동시에 탐하지 말라는 경계였다. 부가 생기면 권력이 탐나고, 권력이 있으면 부가 탐나는 것이 인지상정이건만 부를 지키고자 한다면 최소한의 양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벼슬만 하고 중앙 정계에 진출하는 큰 벼슬은 욕심내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고위공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맹자의 진심장에 ‘농단’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익이나 권력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이익을 독점하는 것을 농단(壟斷)이라고 합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곡식을 가지고 와서 모피와 바꾸거나 또는 생선을 소금과 바꾸는 물물교환의 시장이 있었습니다. 이때 어떤 남자가 돈을 벌려고 진기한 물품을 가지고 와서 약간 높은 언덕의 깎아지른 곳[농단(壟斷)]에 자리를 깔았습니다. 그곳은 사방이 다 잘 보이는 자리여서 어떤 물건이 비싸게 거래되며 사람이 많이 모이는지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이 남자는 농단을 차지하여 물건을 팔아 큰 이득을 얻었습니다. 농단은 언덕 농(壟)자에 끝단(斷)을 써서 언덕의 끝이라는 평범한 용어여서 그 말 자체에는 좋고 싫음의 감정이 들어있지 않지만 농단을 차지한 상인의 교활함을 이유로 불편한 말이 되었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와 소, 말 등은 원래 자연에서 자유롭게 살던 것들이지만 인간에게 길들기 시작하면 자연으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태어나서부터 새장에서 일생을 보낸 새가 하늘을 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지요. 집에 포메라니안 종의 강아지를 기르고 있습니다. 이놈은 같은 견종의 강아지보다 주인인 사람을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때 바다에서 23번 싸워 23번 모두 승리한 불패의 영웅이란 사실은 우리 겨레로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한산도 해전, 명랑해전, 노량해전을 3대 해전으로 꼽지요. 한산도 해전은 남해를 돌아 서해로 올라오려는 왜군의 전략을 좌절시키고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데서, 명랑해전은 13척의 판옥선으로 133척의 왜군 함대와 맞서 절대적인 열세를 치밀한 전략과 울돌목의 지형을 이용하여 승리로 이끈 명 대첩이기에 3대 해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노량해전은 잘 아시다시피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마지막 해전으로 이때 적선 200여 척을 격파하고, 100여 척을 나포한 최대 전과를 올렸기에 3대 해전에 들어갑니다. 이 가운데서 특히 한산도 대첩은 바다를 장악하고 호남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데서, 3대 해전에서 나아가 진주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힙니다. 아니, 아예 임진왜란을 넘어서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대첩으로 꼽힐 정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한산도 대첩은 이에 더하여 학익진이라는 새로운 전술을 이용하여 정교하게 적의 수군을 포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가 필요한 날이 있다. 옛날에는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상황에서 나보다 앞서 살다 간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지는 때가 있다. 신동욱이 쓴 《그래서 역사가 필요해》는 그럴 때 펼쳐보기 좋은 책이다. ‘삶의 무기가 되는 역사 속 인물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지은이 신동욱은 자신의 삶에 놓인 수많은 문제 앞에서 고심하고, 또 노력했던 인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예나 지금이나 ‘인생 고민’은 늘 비슷한 것처럼, 똑같이 슬퍼하고 분노하며 기뻐하는 역사 속 그들을 보노라면 시대를 뛰어넘은 동질감이 느껴진다. 가령, 책의 한 꼭지로 들어가 있는 제목처럼 ‘배신감과 복수심이 내 마음을 어지럽힐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성왕의 사례를 들려준다. 백제 성왕이야말로 신라 진흥왕에게 호되게 배신당한 인물이다.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운 대로,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몰아낸 뒤 한강 유역의 땅을 수복했지만, 진흥왕이 갑자기 배신하면서 기껏 되찾은 한강 유역이 모두 신라의 땅이 되고 말았다.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서 건국한 백제는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 유역의 땅을 되찾는 것이 누대에 걸친 숙원사업이었다.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