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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경주 최부잣집, 수백 년 이어간 부의 비결

《경주 최부잣집은 어떻게 베풀었을까?》, 황혜진 글, 어현빈 그림, 보물창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경주 최부잣집.

부를 일구는 것은 어렵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려운 것처럼, 부를 이어가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것은 그렇게 부를 쌓으면서도 세간의 칭송을 받는 것이다.

 

사람들은 부자를 질시한다. 돈과 권력에는 그만큼 시샘하는 눈길이 따라붙는다. 그렇기에 부와 권력을 지닌 이들은 그 눈길을 피해 더 높은 곳으로 가고, 공고한 자신만의 성채를 짓는다.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이 지키려 한다.

 

황혜진이 쓴 책, 《경주 최부잣집은 어떻게 베풀었을까?》는 그와 반대로 절제와 중용을 실천하며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들 속에 머물렀던 경주 최부잣집의 이야기를 읽기 쉬운 문체와 그림으로 담아냈다. 경주 최부잣집이 대를 이어 실천했던 부에 대한 철학, 진정한 명문가 정신이 녹아들어 있다.

 

 

최부잣집에는 여섯 가지 가훈이 있었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이는 부와 권력을 동시에 탐하지 말라는 경계였다. 부가 생기면 권력이 탐나고, 권력이 있으면 부가 탐나는 것이 인지상정이건만 부를 지키고자 한다면 최소한의 양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벼슬만 하고 중앙 정계에 진출하는 큰 벼슬은 욕심내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고위공직자 가운데 지나친 부를 탐하다 패가망신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이러한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부를 가진 재벌이 정계에 진출해 권력까지 얻으려 할 때도 크게 화를 당할 수 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놓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둘째, 재산은 1만 석 이상 모으지 마라. 재산은 모으다 보면 욕심이 끝이 없어지는 만큼 한도를 정해둬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의 욕심은 바닷물을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지듯이 점점 더 심해지게 마련이라, 이렇게 의식적으로 절제를 실천하지 않으면 자신이 충분히 가졌다는 것도 깨닫지 못한 채 끝없이 갈구하게 된다.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이는 손님을 차별 없이 대접하여 인심을 얻는 동시에 집안을 널리 알리라는 지혜가 담겨 있다.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면 일단 호감을 얻는다. 그리고 각자의 장소로 돌아간 손님들이 최부잣집에 대한 긍정적인 입소문을 내주는 것이다.

 

찾아온 과객들은 정보원 역할도 했다. 오늘날처럼 뉴스와 신문이 발달하지 않은 때는 먼 곳의 소식을 알기 어려웠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과객들은 전국의 소문과 정보를 전달해주니, 부를 지키는 데 알게 모르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넷째, 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마라. 이것은 어찌 보면 가장 지키기 어려운 가훈이었을 것 같다. 오늘날에도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사람이 무수히 많았던 시기에 한쪽에서는 기존에 쌓았던 자본으로 재산을 수십 배 불렸다. 이렇게 위기가 닥칠수록 이미 많이 가진 이들에게 상황은 유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자신의 기득권을 활용해 재산을 불리려는 마음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강렬하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흉년에 재산을 늘리지 마라’라는 말을 기억한다면,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시기에 재산을 불리는 것을 최소한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 들 것이다.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온 뒤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이는 재산이 많아도 근검절약하는 습관이 들도록 한 것이다. 최부잣집에 시집을 온 며느리들은 오늘날로 치면 ‘재벌가 며느리’였는데, 초반에 근검절약하는 버릇을 들이며 ‘조심스럽게 사는 연습’을 하도록 했다.

 

여섯째, 사방 1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이는 최부잣집의 공동체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가훈이다. 아무리 부자라 해도 조선 팔도의 모든 사람을 구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소한 사방 1백 리, 그 규모의 공동체는 건사하겠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이를 통해 가진 부의 크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봉사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머릿말)

『경주 최 부잣집은 어떻게 베풀었을까?』에 등장하는 최씨 집안 사람들은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의 재산을 아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진정한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300여 년 동안 대를 이어 가문의 부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재물과 권력을 과시하고 뽐내는 대신 겸손함과 절제를 가풍으로 굳혀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재물이 있어도 그것을 과시하지 않고, 근검절약하며 겸손하게 살았던 최부잣집. 단순히 재물이 많다고 명문가로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훌륭한 철학과 정신적 토대가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진정한 명문가로 세간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재물을 불리고 관리하면서 고민이 된다면, 최부잣집이 귀하게 여긴 이 가훈들을 곱씹어봐도 좋겠다. 최부잣집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한번 골똘히 생각해보면 많은 문제에 대한 현명한 해답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