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비가 온다는 것은, 우산을 들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는 길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 며칠 전 구파발역 쪽 병원에 내려갔다가 구파발천 옆길을 따라 올라오는데 예보에 없는 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제법 굵은 빗줄기로 바뀌어 내리기 시작한다. 우산이 없으니 우선 길 중간에 설치된 휴게시설의 한 의자에 앉아 비를 피하며 쉬다가 문득 뒤를 보니 의자 뒤편에 시가 하나 판에 새겨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이란 시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하면 대충 '별을 헤는 밤'이라던가 '서시(序詩)'를 접해 온 우리에게 "아이구. 윤동주에게 이런 시가 있었나?" 하며 그의 시를 다시 보게 한다. 만주 용정에서 태어난 윤동주가 서울 연희전문을 다니면서 시를 많이 썼고, 이 시도 그때 써서 교지인 문우(文友)에 발표한 것이라는데, 청년 윤동주가 이런 소년 같은 감수성으로 새로운 길을 가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물러갈 것이냐 나아갈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조선의 햄릿으로 살다간 김시습의 생애를 한 마디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한평생 출처(出處), 곧 선비의 나아감과 물러남을 고민한 그는 고뇌하는 지식인이었다. 선비가 세상에 나아가는 것을 ‘출(出)’, 재야에 묻혀 자신을 갈고닦는 것을 ‘처(處)’라고 한다면, 김시습은 초야에 묻혀 세월을 보내던 처사(處士)에 가까웠다. 그러나 한평생 그를 괴롭힌 것은 출사(出仕)에 대한 욕망이었다. 불의한 세조 정권에 맞서 절의를 지키려 처사가 되었건만, 타고난 재능으로 조정에 출사하여 천하를 경륜하고자 했던 젊은 날의 꿈은 한평생 그를 괴롭혔다. 강숙인이 쓴 이 책, 《나는 김시습이다》는 이처럼 절의와 세속적 성공 사이에서 갈등한 김시습의 내면을 1인칭 시점으로 세밀하게 그려냈다. 지은이는 세조 정권에 저항하며 장렬히 목숨을 버린 ‘사육신’의 그늘에 가려진 ‘생육신’이 겪었을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 가늘고 여린 슬픔’에 대해 쓰고자 했다고 밝힌다. 사육신 곧 1456년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잃은 성삼문ㆍ박팽년ㆍ하위지ㆍ이개ㆍ유성원ㆍ유응부 등 6명은 조선 중기 이후 충절의 상징으로 칭송되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나관중은 《삼국지연의》의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도 장강은 유유히 흐른다." 어찌 장강(양쯔강)만 흐르겠습니까? 인생도 흐르고 역사도 흐르고 시간도 흘러갑니다. 흘러야 인생입니다. 흐름이 멈추면 인생 또한 멈추게 됩니다. 강물도 그러하지만, 시간과 마음도 흐르게 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도 흐르게 해야 합니다. 멈추면 썩기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이 나의 곳간에 더 많이 쌓아두려 노력합니다. 그건 흐름을 방해하는 멈춤일 수 있습니다. 파도는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움직임이 매끄러운 조약돌을 만들고 고운 모래를 만듭니다. 옹달샘을 퍼내지 않으면 고인 물이 되어 썩게 마련이고 썩지 않더라도 흐름이 멈추고 나면 쉬 마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흐름을 유지하는 것은 살아있음의 다른 표현입니다. 성인의 몸에는 약 5~6리터의 혈액이 있습니다. 그 혈액은 끊임없이 흘러야 합니다. 몸의 곳곳에 산소와 영양이 공급되어야 살 수 있으니까요. 그 흐름이 멈추면 삶도 끝나게 되겠지요. 맹자 진심장(盡心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의 수양은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養心莫善於寡欲) 욕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아무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도 금방 잊어버린다. 국수 한 그릇에 담긴 이야기도 그런 것 같다. 새 대통령이 취임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집무실 근처에 있던 한 국수집에 들른 일이 있었다. 언론들은 곧 이 국수집이 10년 만에 한 번씩 언론에 주목을 받은 사실을 소환해내었다. 1998년 겨울 이른 오전, 초라한 옷차림의 한 40대 남성이 서울 삼각지에 있는 국숫집에 들어왔다. 가게 주인 배 할머니는 한눈에 그가 노숙자임을 알아차렸지만, 말없이 당시 2,000원 하던 온국수 한 그릇을 말아줬다. 그가 허겁지겁 그릇을 비우자 다시 한 그릇을 더 줬다. 식사를 마친 남성은 '냉수 한 그릇 떠달라'고 했고, 배 할머니가 물을 떠 오기 전 달아났다. 그러자 배 할머니는 가게를 나와 앞만 보고 뛰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외쳤다. 그리고 또 말해주었다. "뛰지 말어. 넘어져 다칠라!" “배고프면 담에 또 와!” 물론 이 이야기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묻혀질 뻔했었다. 그러다가 10년쯤 지난 뒤에 한 방송사에 제보편지가 왔다. 국수를 먹고 달아난 남성은 남미에 이민 가서 살고 있었는데 10년 뒤에 마침 이 국숫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요즘 산엔 산나리가 한창입니다. 보통 산나리라고 하지만 하늘나리, 중나리, 솔나리, 금나리, 애기나리…. 모두 저마다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오월의 장미가 향기를 뿌리고 난 빈자리에 여름 과일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이미 오디와 딸기는 세월에 묻혀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사과와 복숭아가 아기 주먹만 하게 열매를 키워내고 있으며 텃밭의 고추도 가지가 부러지도록 실하게 열려 풍요로움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그저 어린 싹을 땅에 묻어놓았을 뿐인데 그 강인한 생명력이 놀라울 뿐입니다. 어찌 보면 사람이 심고 물주고 김매고 가꾸었을지라도 그 삶의 본질은 따사로운 햇볕이고 자비로운 대지이며, 은혜로운 비와 바람임을 압니다. 어쩌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인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주변의 여건과 환경 또한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자연재해 앞에 나약한 것 또한 인간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거대한 것도 그러하지만 아주 작은 것에도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비 갠 뒤 인도와 차도 사이의 아주 작은 틈 척박한 환경, 작은 모래 흙더미 속에서 앙증맞게 핀 민들레의 노란 꽃망울을 하염없이 내려다볼 때 우린 자기 삶에 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공부의 신’. 흔히 수능 만점자나 고시 합격자가 나오면 세인들은 그들을 ‘공부의 신’, 약칭 ‘공신’이라 칭하며 앞다투어 공부 비결을 묻는다. 그러면 대개 “교과서 위주로 정독했다”라거나 “참고서 여러 권을 한꺼번에 읽으며 폭넓게 공부했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런 공부법은 너무 평범한 듯해서 오히려 ‘그냥 하는 말이려니’하고 지나치기 쉽지만, 뜻밖에 평범한 공부법 속에 진리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 이 책, 《공부도사-한국사 인물 10인의 공부 비법》에 소개된 우리 역사 속 공부 천재 10인의 공부 비결을 들여다보면 오늘날 ‘공신’들의 공부법과 크게 다를 바가 없으니 말이다. 지은이는 우리 역사상 공부로 이름을 날린 10명을 가려 뽑아 이들의 핵심 공부법을 짚어낸다. 세종의 ‘깊이 읽기’, 이황의 ‘사색’, 이이의 ‘궁리’, 이익의 ‘몰아치기’, 안정복의 ‘메모’, 박지원의 ‘창의력과 진솔함’, 정약용의 ‘질문하기’, 이규경의 ‘분류와 정리’, 안창호의 ‘연설과 토론’, 신채호의 ‘속독’이 그것이다. 옛 선현들의 공부법은 오늘날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훨씬 더 집요한 데가 있었다. 오늘날처럼 다양한 책과 온라인 강의, 학습 보조자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시선사에서 한국 대표 서정시 100인선을 내며 61번째로 박수중 시인의 시집 《규격론(規格論)》을 펴냈습니다. 시선사에서는 기획 의도를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의 현대시는 독자와의 소통에서 벗어나는 모험을 감행하면서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시인만 남아 있고 독자는 멀어져간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는 좋은 작품을 향유하고 감상해야 할 문학의 기능적 측면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시선사는 이를 바로잡고 시인과 독자와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한국 대표 서정시 100인선을 기획하였다.” 공감합니다. 저는 10여 년 전에 월간중앙에 글을 연재한 인연으로, 그 후 월간중앙을 구독하고 있는데, 월간중앙에서는 잡지의 처음에 매번 시 한 편을 싣습니다. 그런데 제가 워낙 시심(詩心)이 메말라서인지, 공감되는 시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시는 왜 이리 어렵지?’ 하며 툴툴댄 적이 있었는데, 시선사에서 저 같은 독자들을 생각하여 이런 기획을 하였군요. 박수증 시인은 제 고교, 대학 선배입니다. 광복 전 해인 1944년에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나셨으니까, 저보다 한참 선배이시지요. 서울법대를 나왔다는 것은 처음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민족의 비극인 6.25 발발 72주년을 맞은 지난주 토요일 아침 우리 시대의 어른으로 존경받던 조순 씨를 멀리 보내드렸다. 이제 ‘앞으로는 포청천, 혹은 무라야마 전 일본 총리의 휘날리는 흰 눈썹과,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강릉 말씨의 고인 육성을 더는 들을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아침 일찍 집 주위의 둘레길 산책에 나선 필자는 그제 내린 비로 골짜기를 콸콸 소리 내며 흘러내려 가는 물에 고인과 얽힌 이런저런 인연을 실어 보내며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6월 2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조순 전 경제부총리의 발인식이 엄수되었다. 한국 경제학계 '거목'으로 불리는 조 전 총리는 지난 1988년 노태우 정부 당시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에 취임했으며, 경제부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그날 아침 뉴스는 요약하면 이런 식으로 나왔다. 물론 그 전에 이미 고인의 생애와 많은 업적에 대해서는 보도가 되었고, 고인의 일생은 한 마디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했다. 그러나 필자에게 조순 씨는 경제학자로서보다는 시멘트로 뒤덮여 있던 여의도광장을 갈아엎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장자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도척(盜跖, 도둑놈)의 부하가 도척에게 물었습니다. “도둑질하는 데도 도(道)가 있습니까?” 도척이 대답합니다. “어디에든 도가 없는 곳이 있겠느냐. 방안에 감춰진 것을 짐작으로 아는 것이 성(聖)이고, 훔치러 들어갈 때 먼저 들어가는 것이 용(勇)이며, 훔친 다음 맨 뒤에 나오는 것이 의(義)고, 훔치게 될지 안 될지를 아는 것이 지(知)며, 훔친 것을 골고루 나누는 것이 인(仁)이다.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않은 채 큰 도둑이 된 자는 아직 없었다." 장자의 전편을 흐르고 있는 기본 사상은 제물론(齊物論)입니다. 제물은 모든 것이 차별 없이 하나라는 것이지요. 일종의 ‘차별 폐지법’인 셈입니다. 곧 도의 관점에서는 선과 악, 미와 추, 나와 너의 차별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길고 짧음을 이야기하지만 같은 길이라도 긴 것 옆에 가면 짧은 것이 되고 짧은 것 옆에 서면 긴 것이 됩니다. 왜 장자는 도둑 이야기를 하며 도둑질하는 것에도 도가 있음을 강조한 것일까요? 이는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의 도리를 강조한 이야기입니다. 성(聖)과 인(仁)은 고사하고 의(義)나 용(勇), 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대통령. 우리가 5년마다 선출하는 행정부 최고 수반이자, 한 나라를 이끄는 국정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권한은 실로 막강하다. 막중한 책임이 동반되는 자리인 만큼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은 자의든 타의든 오랜 기간 고된 리더십 훈련을 거친다. 이 기간을 잘 견뎌낸 사람만이 마침내 국민의 마음을 얻고, 능력을 인정받아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점에 오른다. 이렇듯 나라를 이끄는 최고지도자가 된 이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었을까? 이 책, 《대통령의 독서법》의 지은이 최진은 그것이 바로 ‘독서’라고 말한다. 대통령 리더십 전문가인 그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2010년 책 펴냄 당시 재임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 8명의 독서 습관을 자세히 분석하며 독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이들은 모두 책을 열심히 읽었다. 이 명제는 역대 대통령 8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통령마다 공과는 분명히 있지만, 적어도 독서로 다져진 철학과 처세술, 통찰력이 없었더라면 대통령까지 오르는 일은 요원했을 것이다. 지은이가 소개하는 대통령 독서법 10계명을 길잡이 삼아 각 대통령의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