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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명나라로 도망치려는 선조를 보라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23]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본인은 변고를 겪은 뒤 놀람과 걱정이 병이 되어 신하들을 이끌고 변방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할 마음이 없습니다. 부득이 둘째 아들 혼(광해군)에게 국사를 섭정하고 영토를 보존하도록 명했고, 본인은 적에게 쫓겨 저희 땅에는 몸 둘 곳이 없으니 스스로 식구 몇 명을 데리고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즉시 (황제에게) 아뢰어 실행할 수 있게 하기를 바랍니다. 소방은 부모를 따르듯 대국을 받들고 있습니다. 자식이 위기에 처하면 부모를 버리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혹시 황제의 허락이 내려오지 않더라도 적의 예봉이 날로 닥쳐오면, 본인은 (압록)강을 건너 명(命)을 기다리겠습니다. 급히 처리해주기를 바랍니다. (김영진 《임진왜란》에서 재인용)

 

선조가 요동도사에게 보낸 자문(咨文, 조선의 대중국 외교 관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외교문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북상해오자 서울을 버리고 줄행랑을 놓은 선조는 평양도 위험해지자 다시 북으로 올라가 압록강 변 의주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대동강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에 다급해진 선조는 자기가 압록강을 건너 명나라로 들어갈 테니 제발 자신을 받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황제의 허락이 내려오지 않더라도 여차하면 강을 건너겠다고 하나요.

 

자신의 정치 잘못으로 수많은 백성을 사지로 몰아넣은 임금이 자신만은 살겠다고 명나라에 애걸복걸하는 모습, 정말 자문을 읽으면서 분노에 숨이 막힙니다. 이런 선조의 모습이 명나라에는 얼마나 한심하게 비쳤겠습니까? 사실 명나라는 처음에 조선이 왜군을 인도하여 명나라로 오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습니다. 조선이 왜군을 인도한다는 소문이 있었던 데다가, 조선이 아무리 허약한 나라라고 하더라도 왜군이 이렇게 빨리 진격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한 것이지요. 나라를 그렇게 의심받을 정도로 허약하게 만든 임금이 자기 하나 살겠다고 애걸복걸하는 모습, 정말 눈 뜨고는 못 봐주겠습니다.

 

사실 한나라의 지도자라면 자신이 앞장서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야지 자신이 먼저 줄행랑을 놓아야 하겠습니까?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왜 존경받는 겁니까? 먼저 나라 밖으로 도망갈 거라고 예상되던 대통령이 그대로 위험 속에 남아 대국 러시아를 상대로 끈질기게 항전을 벌이기에 존경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유성룡 등의 신하들이 힘껏 말리지 않았다면 선조는 정말 압록강을 건너갔을 것입니다. 이런 선조에게 윤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애초 요동으로 간다는 계책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논의를 들은 뒤부터 백성들은 경악했으나 어디에 호소할 곳이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걱정은 왜란 초기보다 더 심하며, 당황스럽고 불안합니다. 지금 비록 왜적이 가까이 닥치고 있으나 하삼도(충청ㆍ전라ㆍ경상)가 모두 보존되고, 강원도와 함경도도 침략당하지 않았습니다. 전하께서는 많은 백성을 어디에 넘겨주고 필부(匹夫)가 가는 길로 강행하십니까? 상국(명나라)이 그것을 허락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갈 때 비빈(妃嬪)들도 남겨둘 수 없는데 요동 사람들은 대다수가 무식하여 옷 색깔이 차이가 있고 말소리도 전혀 다른 것을 비웃고 업신여기며 무례하면 어떻게 그들을 막을 것입니까? 요동에 도착하더라도 풍토와 음식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김영진 《임진왜란》에서 재인용)

 

윤두수가 정말로 작심하고 선조에게 일침을 놓았군요. 결국 선조는 신하들의 만류로 압록강을 건너지 못했지만, 그 뒤에도 찌질한 모습을 계속 보입니다. 명나라가 정동행성(원-元에 의해 일본 원정을 위한 전방사령부로써 고려에 설치되었던 관서) 비슷한 기구를 조선에 설치하려 한다는 얘기가 있을 때, 신하들은 놀라서 안 된다고 하였지만, 선조는 ‘뭐~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나왔습니다. 명이 그런 기구를 설치하면 자신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그뿐입니까? 오로지 나라를 구하려 한 의병장 김덕령 장군은 죽이고, 이순신 장군도 죽이려다가 신하들의 반대로 미수에 그치고요. 또한 전쟁이 끝나고 공신 책봉을 할 때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신하들보다 자신을 호종한 신하들을 더 우대하였습니다. 조선은 그런 국가적 대환란에서 어리석은 임금이 있었다는 것이 비극입니다. 임진왜란의 선조, 병자호란의 인조, 조선 말기의 고종이 다 그런 어리석은 임금입니다.

 

 

선조는 일본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음에도, 명나라만 믿고 아무 대비도 안 하다가 국가를 사지로 몰아넣었습니다. 인조 또한 균형외교를 펼치던 광해군과 달리 맹목적인 ‘친명외교’만 펼치다가 병자호란을 자초하였습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은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에서 참으로 지혜로운 외교를 펼칠 때입니다. 더구나 한반도 북쪽에는 무식한 깡패 김정은 정권이 핵을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이 험한 국제정세를 이겨 나가야 할까요? 무조건 한쪽에만 붙으며 상대를 자극해야 할까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