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마침내 설을 지냈다. 요란한 호랑이 해의 설인데 눈이 많이 내려 온통 세상이 하얗게 뒤덮이는, 그야말로 설(雪)의 설이 되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아침이 되어 중부지방, 특히나 내가 사는 북한산 일대를 덮어주니 마음이 그리 포근할 수 없다. 일찍 산에 올라 눈을 밟을 때의 그 소리. 바람에 흩날리는 눈가루들이 얼굴을 때릴 때의 상큼한 느낌, 가지마다 붙은 눈가루들로 해서 나무와 숲과 산이 보여주는 깨끗하고 고결한 자태... 설에 큰 눈이 온 것은 아주 귀하다는 기상당국의 설명 그대로 설에 주는 진정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올겨울은 좀 춥기도 추웠고 눈이 가끔 오곤 해서 겨울다웠다고나 할까, 아침의 쌀쌀함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코로나 속에서도 설이라고 6인 이하로 가족들이 만나고 정을 나누고 하다 보니 어느새 입춘이다. 곧 봄기운이 들어서는 날이란 뜻이리라. 아마도 예년 같았으면 기온이 올라 남녘에서는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가 여기 서울에까지 올라올 것이련만, 올해는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이 역시 올겨울 추위가 제법 매서웠다는 뜻이리라. 그렇더라도 꽃나무에는 새 꽃의 기운이 망울망울 맺히고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한국예술종합대학 직전 총장이었던 김봉렬 교수가 《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 책은 김 교수가 서울신문에 ‘김봉렬과 함께 하는 건축 시간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모은 것입니다. 연재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김 교수가 시간을 거슬러 석기 시대까지 우리를 데리고 가, 고인돌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까지 시간을 따라가며 각 시대의 주요한 건축물을 소개하고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김 교수는 글이나 강단에서만 건축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답사팀을 이끌고 건축물이 있는 현장도 찾아가, 현장에서 생생한 건축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단순히 건축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 건축의 시대적 배경, 그 건축이 나오기까지의 역사, 다른 건축과의 비교 등등을 구수한 이야기로 풀어나가지요. 게다가 유머도 곁들이니, 열심히 듣고 있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기도 합니다. 저는 김 교수의 답사를 여러 번 따라다녔습니다. 처음 김 교수의 답사를 따라갔던 때가 생각납니다. 고교동기인 김 교수의 답사여행 소문을 듣고 2006년 9월에 나도 따라가기로 하였었지요. 당시 여기저기서 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1945년 해방 직후 아시아 최빈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와 1인당 국민소득 33,000달러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성장의 혜택을 골고루 받지는 못하고 빈부격차와 도농격차로 인한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국민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발전 목표를 이제는 국민소득 증가에서 국민행복 증가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도시와 농촌의 격차는 나날이 심각해진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 농림어업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농업인구는 전체 인구의 4.5%인 231만 명에 불과하다. 필자가 사는 평창군의 면적(1464km2)은 서울시 면적의 2.4배에 달하지만, 인구수는 겨우 42,000명에 불과해서 서울이나 부산의 1개 동의 인구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농민 1인당 경작면적은 0.68ha(약 2,000평)에 불과하며 가구당 농가소득은 연 3,300만 원(주: 1인 가구를 포함한 2019년 통계)에 불과하다. 농지의 감소로 식량생산량도 줄어들고 있다. 쌀은 자급한다고 해도, 나머지 곡류와 가축 사료를 수입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서울 종로구의 종로5가와 6가 사이 위쪽에는 효제동이란 곳이 있다. 북쪽으로는 이화동(梨花洞), 동쪽으로는 충신동(忠信洞)ㆍ종로6가, 남쪽으로는 종로5가, 서쪽으로는 연지동(蓮池洞)과 접해 있는 지역인데 지금부터 99년 전인 1923년 1월 22일 이곳에서는 세상을 놀라게 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 동네의 이혜수란 사람의 집에는 열흘 전에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34살의 한 청년이 숨어들어 있었는데, 추적하던 일본 경찰이 새벽에 이 청년의 은신처를 알고는 무장경찰 4백여 명을 동원해 이 씨의 집을 겹겹이 포위하고 포위망을 좁혀오던 상황이었다. 이에 이 청년은 지붕 위로 올라가 몇 시간 동안 일본 경찰과 지붕을 타고 다니며 권총으로 총격전을 벌여 많은 일본경찰이 죽거나 다쳤지만, 탄환이 다 떨어지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오자 항복하지 않고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쏘아 자결하였다. 열흘 전 청년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것은, 당시 종로경찰서가 일제 식민통치의 골간을 이루었던 경찰력의 대표적인 본산이자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탄압, 압살하여 한국인들의 원한의 상징인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 폭탄으로 일본 경찰이 직접 죽거나 다친 것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수덕여관! 예산 덕숭산 자락에 있는 이 여관의 이름은 어딘가 친근한 데가 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이름난 수덕사 대웅전, 그 대웅전을 품은 수덕사에서 운영하는 공간인 까닭이다. 우리나라 근대 예술가 세 명이 지치고 힘들 때 말없이 품을 내어준,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하다. 《예술가의 여관》 지은이 임수진은 우리나라 근대 예술가들에게 각별한 공간이었던 이 수덕여관을 미래의 예술가들에게 소개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내게 재능이 있기는 한 건지, 꿈을 이룰 수나 있을지 시시각각 불안한 마음이 들 때, 100년 전의 선배 예술가처럼 수덕여관에 머물며 용기를 얻어보라고 말이다. 작가의 목소리에 힘을 얻은 수덕여관이 그들을 한 명 한 명, 차례로 부른다. 나는 초가집이었습니다. 색색이 고운 덕숭산 자락이 내 터전입니다. 본래 비구니 스님들이 쓰시던 절간이었는데 수덕사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손님들의 쉼터가 되었습니다. …(중략) 그래서일까요,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그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잊지 않고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오늘 잊을 수 없는 3명의 손님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는 향년 87살까지 가난한 자의 친구로 평생을 몸 바쳤던 테레사 수녀의 본명입니다. 테레사 수녀가 인도의 한 마을에서 다친 아이들의 상처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웃 마을 주민이 묻지요. "수녀님 당신은 당신보다 더 잘살거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편안하게 사는 것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안 드시나요? 당신은 평생 이렇게 사는 것에 만족하십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가 말합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은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사람의 눈은 앞을 보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사람 대부분은 아래보다는 위를 쳐다보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남들보다 더 가지지 못해서, 남들보다 더 높아지지 못해서 불행을 안고 사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지요. 머리를 숙이면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래만 보고 살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명심보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知足常足 終身不辱 知止常止 終身不恥 지족상족 종신불욕 지지상지 종신무치 "만족함을 알아 늘 만족하면 평생토록 욕됨이 없고 그침을 알아 늘 알맞게 그치면 평생 치욕이 없을 것이다."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아는 삶이 행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빈섬 이상국 아주경제 논설실장이 《저녁의 참사람》이라는 제목의 다석 유영모(1890~1981) 선생 평전을 냈습니다. 제가 10여 년 전에 월간중앙에 <양승국 변호사가 산에서 만난 사람>을 연재할 때, 중앙일보 기자였던 빈섬은 월간중앙에 <미인별곡>을 연재하였지요. 그 당시 김광수 월간중앙 대표를 통해 빈섬을 알게 되어 가끔 식사도 하면서 소식을 이어왔기에, 얼마 전에 빈섬이 낸 다석 평전을 사 보았습니다. 2008년에 제22회 세계철학자대회가 한국에서 열렸습니다. 빈섬의 말에 따르면 당시 우리 철학계에서는 조선 시대의 이황, 이이, 송시열, 정약용과 현대의 류영모, 함석헌을 한국의 철학자로 내세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세계에 내놓을 만한 독창적인 사상적 심화를 이뤄낸 사람으로 꼽힐 사람은 다석 류영모뿐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다석이 그렇게 뛰어난 철학자였단 말인가?’ 하며 놀라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 다석 자체에 대해서도 ‘그런 철학자가 있었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다석은 그의 심오한 사상체계에 견줘 우리에게 덜 알려진 인물이지요. 사실 다석이 1981년 2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집사람이 당혹해하며 "그게 떨어져 나가 아무것도 없네요"라고 한다. 며칠 전 눈이 많이 왔을 때 해를 넘긴 기념으로 절에 갔다가 거기서 받은 작은 진언 쪽지를 다른 책자 사이에 끼고 산길을 돌아서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그 가운데 하나가 어느새 빠져나가 없어졌다. 집사람이 은근히 힐난하는 눈초리다. 그 종이라는 게 스프링 사이에서는 빠질 수 있으니 잘 들고 가라고 일껏 당부했건만 그걸 놓쳤냐는 것이겠지. 그래서 그다음 날 어제 온 산길을 다시 돌아가 보니 그게 산길 옆에 그냥 떨어져 있기에 바로 주워서 돌아왔다. 없었으면 절에까지 다시 가서 받아와야 할 판이었다. 그래도 이건 천만다행이다. 다시 돌아가서 주워올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네 사는 것은 그게 안 될 때가 많다. 지나온 길에 뭔가 소중한 것을 빠트리고 왔어도, 그것을 다시 돌아가서 챙길 수가 없기 때문이리라. 우리가 아마도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웠을 것 같은데, '가지 않은 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시 'The road not taken'는 우리에게 꽤 사랑받는 시이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어 어느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돌을 뜻하는 우리말로 《백범일지》에 쓰였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김구는 일제 순사로부터 “지주가 전답에서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상례”라며 고문과 함께 자백을 강요받는다. 그 말을 외려 영광으로 여긴 김구가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 다짐한 데서 제목을 빌렸다." - 머리말 중에서 - 《백범일지》에 이어, 오랜만에 독립운동 관련 책으로는 전국민적 사랑과 관심을 받은 책 《뭉우리돌의 바다》이 나왔다. tvN 인기예능 <유퀴즈온더블럭>에 소개된 것도 한몫했지만, 이 책이 가진 가치와 매력을 알아본 눈이 그만큼 많았던 덕분이다. 이 책은 사진작가인 한 청년이 2017년부터 2018년까지, 2년여 동안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한 곳 한 곳, 발품을 팔며 셔터를 누른 기록이다. 작가 스스로 뭉우리돌 정신을 가지고 비범한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책이다. 한국 독립운동의 흔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고, 후손들도 만났다. 중국,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그의 눈에 띄일 때가 됐지 나도 죽음을 볼 수 있는 나이가 됐거든 어머니 주위에는 늘 있어 어느 때는 등 굽고 조그마해진 어머니를 업고 있어 나를 본 그가 네가 먼저 가고 싶니 농담인 게지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 마치 마저 써야 할 시가 좀 더 있다는 듯 장석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에 나오는 시 ‘죽음에 관한 농담’입니다. 장 시인은 제 고교 동기로, 고등학교 때도 화동문학상을 탄 문재(文材)였습니다. 고교 졸업 뒤에도 서울대 국문과를 나와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지요. 그렇지만 본격적인 문인의 길을 걷지 않고, 가업을 이어받아 경남 통영에서 오랫동안 바다의 시어(詩語)를 차곡차곡 가슴에 쌓아두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2020년에 오랜 침묵을 깨고 시집 《사랑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니》와 《우리 별의 봄》을 연달아 냈었지요. 그리고 세 번째 시집을 작년 11월에 냈고요. 40년 동안 장 시인의 가슴 속에 익을 대로 익은 시어가 쏟아져나오기 시작하니, 2년 사이에 3권의 시집을 냈네요. 이번 시집에서 저에게는 이 시가 먼저 제 눈에 들어옵니다. 저도 이제는 노년층에 들어섰으니,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