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91) “지금의 명나라가 있기 전, 그러니까 당나라보다 더 훨씬 앞선 시기인 초나라에 영왕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 영왕이 사랑했던 여인이 허리가 가늘고 아름다웠다고 하더구나. 그 이후부터 사람들은 허리가 가늘고 아름다운 여인을 가리켜 초요(楚腰)라 불렀단다. …(줄임)… 그래서 나는 마지막 글자는 미녀 갱(妔) 자를 써서 초요갱이라 지었다.” 허리가 가는 초나라의 미녀를 닮은, 조선 전기 한양을 떠들썩하게 한 으뜸 기녀 초요갱은 그렇게 탄생했다. 허구와 사실을 절묘하게 섞어 쓴 이 소설, 박지영이 쓴 《초요갱》에서 주인공 ‘다래’의 첫 정인(情人)인 평원대군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그 이름을 지어 주었다. 실제 역사 속 초요갱은 어마어마한 ‘화제의 인물’이었다. 세종의 세 아들, 평원대군, 계양군, 화의군이 모두 그녀에게 반했다. 드라마에나 나올 만한 ‘조선 왕자 삼각관계’가 실제 역사에 펼쳐진 것이다. 황진이도 한 줄 나오지 않는 《조선왕조실록》에 무려 열여섯 번이나 기록이 실렸으니, 한 시대를 풍미한 으뜸 예인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처음 초요갱의 마음을 얻은 이는 세종의 7남, 평원대군이었다. 소설 전반부에서는 평원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온달 열전이 실려있습니다. 거기에 온달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내용이 나와 있지요. "온달은 고구려 평원왕 때 사람이다. 용모가 못생기고 우스꽝스러웠으나 마음은 순수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늘 밥을 구걸하여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떨어진 옷과 신발을 신고 돌아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바보온달이라고 하였다." 온달은 정말 바보였을까요? 온달이 바보였다는 주장은 우온달(愚溫達)이라는 표현 때문입니다. 나중에 장군이 되어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쓰기엔 쉽지 않은 표현이지요. 가난하여 떨어진 옷을 입고 구걸했다고 해서 바보라고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실제로 발달장애인이나 낮은 지능의 소유자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진짜 지능이 낮다면 학문과 무예를 익혀 고위직에 오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찌 되었거나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것이 온달입니다. 그는 삼국이 치열한 영토 전쟁을 벌였을 때 고구려 장수로 명성을 크게 얻은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 우직함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민주 사회에서 갈등과 대립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심리학자의 말에 따르면 사랑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3년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각종 행복 물질이 쏟아지게 되지요. 도파민, 엔도르핀, 세로토닌이 그런 호르몬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관계가 시들해지고 나면 더 이상 행복 물질이 쏟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럼, 사랑은 끝난 겁니다. 그러니 부부가 2~30년을 함께 살기는 매우 어려운 일임은 틀림없습니다. 인간의 뇌 속에서 행복을 만드는 물질은 엔도르핀입니다. 엔도르핀은 과거의 행복한 추억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닙니다. 지금 내가 즐거워야 엔도르핀이 형성됩니다. 인생을 살면서 오늘, 지금, 이곳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 옳습니다. 지금이 즐거워야 행복 물질이 분비되니까요. 내가 아파트를 나서면 인사성이 바른 경비원을 만납니다. 그는 아무리 봐도 힘든 삶인데 나보다 여유롭습니다. 나보다 늙었고 부양가족이 많아 부담 속에 살 텐데도 행복해 보입니다. 옛날엔 가난했어도 행복 지수가 대체로 높았습니다. 그건 가진 것에 만족했으니까 가능한 일이지요. 절대적인 기준에서 보면 우리나라 사람은 무조건 다 행복해야 옳습니다. 1960년대보다 훨씬 잘살고 있으며, 죽으로 연명하는 사람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봄이 사실상 마감되고 더위가 시작된다고 호들갑 비슷하게 떨던 게 보름 전, 그때 24절기 소만을 지났다고 했는데 다시 보름이 지나니 이젠 소만 다음의 절기인 망종이란다. 망종? 어감상으로는 망둥이 같은 종자... 뭐 이런 뜻이 아닐까 싶은데 그것은 한자로 ‘亡種’이고, 지금 이야기하는 절기상의 망종은 ‘芒種’이다. 앞의 ‘亡’은 망할 망이니 별로 전망도 없는 개망나니 같은 종자라는 뜻이라 생각되는데, 뒤의 ‘芒’은 작물의 수염 부분을 뜻하는 글자이니 곧 벼나 보리의 이삭 부분에 나오는 까칠까칠한 까끄라기(난 까시랭이로 들었지만 이게 표준어인듯)를 말함이렸다. 우리들이 도회지에 살다 보면 벼건 보리건 다 껍질을 벗기는 도정작업을 해서 매끈한 속 알곡만 보는데 우리 어릴 때는 시골에서 크다 보니 까끄라기들을 보는 것은 물론 여름에 보리 타작, 가을에 벼 타작한다고 탈곡기나 도리깨로 털어내는 과정에서 끼끄라기들이 공중으로 날아들어 목덜미가 근질근질한 경험이 다 있는데 우리야 그렇지만 우리 애들, 손주들은 이런 경험도, 이런 말도 모를 것이다. 경험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이 세상 식물의 생장에 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우리나라에서 산을 좋아한다는 사람치고 ‘오은선’이라는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예! 세계 여성 처음으로 히말라야 8,000m 고봉 14좌를 전부 오른 분이지요. 그리고 조금 더 아신다는 분이면 국내 여성 처음으로 세계 7대륙의 최고봉을 오른 인물이라는 것도 알 것입니다. 그 오은선 씨가 자신의 등정기를 《오은선의 한 걸음》이라는 책으로 냈습니다. 저는 2011년도에 오은선 씨와 불암산을 함께 산행하면서 나눈 이야기를 월간중앙에 ‘오은선 대장과 불암산을!’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은선 씨가 책을 냈다기에 반가운 마음에 읽어보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14좌를 오르는 오은선 씨의 거친 숨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듯하였습니다. 은선 씨는 너무 힘들어 어떤 때는 그냥 한 걸음만 절벽 쪽으로 내딛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었답니다. 그러면 1,000m 이상을 미끄러지며 그대로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오죽하면 절벽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고 싶었을까? 그 극한적인 상황을 떠올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합니다. 은선 씨가 오른 산 가운데 제일 힘들었던 산은 어떤 산일까요? 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조선의 도읍, 한양. 조선왕조 오백 년 동안 도읍지로 오랜 세월을 품어낸 한양은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보고다. 수많은 이들이 오고가고, 살다간 땅의 역사는 풍부하고 깊을 수밖에 없다. 이 책 《한양 왕의 집 내집처럼 드나들기》의 지은이 이용재는 건축평론가로 한양 땅을 종횡무진 누볐다. 일요일만 되면 딸과 함께 서울 답사를 다니곤 했다. 5년 동안 함께 전국을 세 바퀴 돌았고, 서울 땅에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됐다. 이 책은 한양 도성 안에 있던 조선 시대 건축과 일제 강점기 전의 문화유적 가운데 19곳을 가려 뽑아 우리역사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는 책이다. 서울에 오래 살았어도 무심코 지나쳤거나, 보았더라도 그 뜻은 자세히 몰랐을 문화유적을 쉽고도 재밌게 알려준다. 가령, 창덕궁 연경당이 지어진 내막을 이렇게 설명한다. (p.60) 벼슬을 하면 대부, 벼슬 안 하고 초야에 묻혀 살면 사. 이 둘을 합쳐 사대부라고 하는 거죠. 1827년 순조 기자회견. “건강 때문에 여러 해 정사를 소홀히 하고 지체시켰다. 이제 세자가 총명하고 영리하니 대리청정을 시켜라.” 대리청정을 명할 때 효명세자는 19살, 순조는 38살. 효명세자는 창덕궁에 1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구는 돈다. 세상은 움직인다. 우리들 모두도 움직이며 뭔가가 만들려고 분주하다. 이때 변하지 않고 가는 존재가 있다. 바로 시간이다. 그 시간을 보는 방법은 시간을 세우는 것이다. 아니 시간을 보는 사람을 세우는 것이다. 내가 멈추어야 시간이 가는 것을, 지나온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삶에 있어서 시간의 의미를 다시 씹어보게 된다. 어느 날 오후, 문득 나는 시간을 세우고 바라보는 드문 기회를 맛보았다. 보통 때 늘 고민하는 글쓰기를 이날 오후만큼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서둘러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뜻. 마침 광화문 광장이다. 초여름이라고 분수가 뿜어내는 물줄기의 포말들이 포장된 지표면에서 잠시 더위를 식혀주고 있는 가운데 눈에는 저 멀리 광화문과 그 뒤의 근정전이 들어오는데, 핸드폰(우리 편집장님은 손말틀이란다)은 거기까지는 담아내지 못하지만, 어쨌든 텅빈 광화문은 요즘 바빠진 용산, 대통령실 부근에게 분주함과 시끄러움을 밀어내주고 조용하다.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도란도란하는 말소리가 들릴 정도이니 말이다. 내 발길은 사직터널 쪽으로 향했다. 갈아타야 할 버스를 한 번에 타려면 서대문쪽으로 가면 되기에 그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계절의 여왕 오월이 오늘이면 끝납니다. 오월은 대지를 따라 피어난 봄꽃의 향연이 끝나면서 화려한 장미 축제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그러니 봄은 꽃의 기억을 아름다움으로 소환하는 계절입니다. 길을 걷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꽃들과 만나게 됩니다. 주먹만 한 꽃도 있지만 깨알 같은 작은 꽃들도 있습니다. 꽃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각양각색으로 아름답습니다. 어쩌면 그리도 꽃 하나하나에 다양한 색상이 물들었을까? 꽃은 인간들이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신들의 초자연적인 작품의 정수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장미의 계절입니다. 탐스러운 꽃봉오리가 붉은 다발로 피어난 모습은 현기증 나도록 아름답습니다. 그런 장미도 가시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향화발극목(香花發棘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향기로운 꽃은 가시나무에서 핀다는 의미이고요. 또한 ‘화개병체(花開竝蒂)’라는 말도 있지요. 꽃은 가시와 함께 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예로부터 이쁜 것에는 가시가 있다는 말씀이 있고 보면 세상엔 전적으로 다 좋은 것도 전적으로 다 나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것을 버릴 것인가 선택의 문제가 남을 뿐이지요. 어찌 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286) 평생 이별의 한이 병이 되어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네 이불 속 눈물은 얼음장을 흐르는 물과 같아 밤낮으로 흘려도 그 누가 알아주나 - 여인의 정(閨情) - 이옥봉(李玉峰). 허난설헌이나 신사임당을 들어본 이는 많아도, 이옥봉은 퍽 낯선 이름일 것이다. 조선 천재 여류시인 이옥봉은 승지 조원의 첩실로만 살기에는 아까운 인물이었다. 조선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서녀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훨씬 더 행복했을지도 모를 비운의 인물, 이옥봉. 장정희가 쓴 이 책 《옥봉》은 그녀의 신산했던 삶을 한 폭의 그림처럼, 유려한 문체로 그려낸다. 출생부터 죽음까지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소설적 허구와 사실을 절묘하게 섞어 쓴 작가의 필력이 책장을 술술 넘기게 한다. 이야기는 바야흐로 1630년(인조 8년), 사신단 일행으로 명나라를 찾은 조희일이 명나라 대신의 집에 초대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명나라 대신은 손때로 반질반질해진 책 한 권을 꺼내온다. 바로 《옥봉 시집》이었다. 아버지 조원의 첩실이었던 그녀가 평소 시를 즐겨 쓰는 것을 모르지 않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오래간만에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보았습니다. 신반포교회 호산나 찬양대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김은경 소프라노가(계속 김은경 소프라노라고 하려니까 호칭이 길어 앞으로는 그냥 ‘은경 씨’라고만 하겠습니다.) 여주인공 비올레타로 출연하기 때문에 보러 간 것이지요. 그동안에도 찬양대 광고 시간 때 가끔 은경 씨가 공연한다는 얘기를 듣긴 하였는데, 일정이 안 맞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 한 번도 가보지 못하다가, 이번에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간 것도 제가 올해 찬양대장이 되는 바람에 명색이 찬양대장인데 가지 않으면 도리가 아니라는 의무감도 작용한 것임을 자백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요. 이번 공연은 글로리아 오페라단이 주관하는 공연입니다. 음악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잘 모르는 오페라단이지만, 1991년에 창단하였으니 우리나라로서는 역사가 있는 오페라단이네요. 잘 아시다시피 <라 트라비아타>는 뒤마의 소설 춘희(椿姬, 동백아가씨)를 베르디가 오페라로 작곡한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소설 <춘희>를 오페라로 한 것이기에 <라 트라비아타>도 비슷한 뜻의 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