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섣달그믐 밤 - 강순예 “오늘밤에 온단다, 신 없는 아이. 고샅마다 집집마다 들어가 이 신발 저 신발 죄다 신어보곤 맞갖은 걸 골라, 하무뭇 해낙낙 홀딱 신고 가버리는…….” 깊은 밤 문 앞에 살며시 내다 놓았다. “작아서 안 신는 신발이야. 맘에 들면 가져가렴.” 사흘 뒤면 섣달그믐날이 된다. 또 다른 말로는 ‘까치설날’인 섣달그믐날에 우리 겨레에겐 많은 세시풍속이 있었다. 특히 섣달그믐은 한 해를 정리하고 설을 준비하는 날이다. 그래서 집안청소와 목욕을 하고 설빔도 준비하며, 한 해의 마지막 날이므로 그해의 모든 빚을 청산한다. 곧 빚을 갚고, 또 빚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해 빌린 돈이나 빌려온 연장과 도구들을 꼭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 밖에 남은 밥을 모두 먹고, 바느질 등 그해에 하던 일을 이날 끝내야만 했다. 묵은해의 모든 일을 깨끗이 정리하고, 경건하게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생겨난 풍습이다. 또 재미난 것은 《동국세시기》에 나온 ‘양괭이귀신(야광귀, 夜光鬼) 물리치기’라는 것도 있었다. 섣달그믐 양괭이 귀신은 집에 와서 아이들의 신발을 모두 신어보고 발에 맞는 것을 신고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요즈음 ‘보수’라는 개념이 헷갈립니다. ‘국민의힘’은 자기네가 정통보수당이라 하고, 태극기부대도 소위 ‘아스팔트 보수’라며 보수를 표방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보수’가 뭡니까? 한자로는 ‘保守’이니 뭘 보호하고 지킨다는 것입니다. 뭘 보호하고 지키자는 것일까요? 보통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지키기 위한 최고의 법이 무엇입니까? 헌법 아닙니까? 그러므로 진정한 보수라면 우리나라 헌법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를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대통령이 먼저 이를 파괴하려고 하였습니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나름대로 비상계엄의 당위성을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헌법 제77조는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지금이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입니까? 대통령이 말하는 당위성이 말도 안 되는 억지지만, 좋습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비상계엄 선포 요건이 맞다고 합시다. 그런데 헌법 제77조 4항에는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차별은 참 서럽다. 이렇게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했다면 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일들이 차별에 가로막힌다. 지금이야 양반과 상민의 구분이 없고 성별에 따른 차별도 거의 없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신분계층과 남녀에 따라 이루 말할 수 없는 차별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차별에 가로막히면, 포기한다. ‘그냥 이번 생은 그러려니’하고 다음 생을 기약(?)하기도 한다. 조선시대도 그랬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차별의 벽 앞에서 절망하고 꿈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때도 꿋꿋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차별 때문에 꿈을 이루는 것이 고통스럽고 힘들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않고 꿈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꿈을 이루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김은빈이 쓴 이 책, 《차별을 뛰어넘은 조선 영웅들》에 나오는 여섯 명의 위인이 그 주인공이다. 차별에 허덕이다 귀인을 만나고, 천운을 만나 꿈을 이뤘다. 절대 포기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위기도 기회가 되고, 무심코 지나칠 일도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1480년 무렵, 한양에 반석평이라는 소년이 살았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이 참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동지 팥죽 - 전병윤 동지는 눈보라와 함께 몰아쳐 온다 눈이 쌓여 오도 가도 못한 사람들이 굶어 죽어서 못된 짓 하는 역귀(鬼)가 되었다. 그는 피를 보면 바들바들 떤다. 그래서 피 대신 팥죽을 쑤어 집안 곳곳에 뿌리면서 악귀를 쫓는다. 집과 나라 안에 재앙이 없도록 해 달라시던 할머니는 "사색당파싸움, 임진왜란, 동학란도 역귀의 작란이다"고 하셨다. 그래 삼팔선의 철조망, 이스라엘이나 이라크의 전쟁도 역귀의 작란이 틀림 없겠다 이제 그만, 역귀 없는 세상을 위해서 한솔 푸지직푸지직 끓어오르는 평화의 팥죽을 쑤어야겠다. 오늘은 24절기의 스물둘째 절기 ‘동지(冬至)’로 명절로 지내기도 했던 날이다. 민간에서는 동지를 흔히 ‘아세(亞歲)’ 곧 ‘작은설’이라 하였는데 하지로부터 차츰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동짓날에 이른 다음 차츰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 때문에 옛사람들은 이날을 해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고 잔치를 벌여 태양신에게 제사를 올렸다. 그래서 동지를 설 다음가는 작은설로 대접했다. 동지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데 원래 팥죽은 붉은색으로 귀신을 쫓는다는 뜻이 들어있다. 동짓날 팥죽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라나라 여성 작가 한강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의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던 (유럽 현지시간) 12월 10일 낮 1시 같은 시각 인접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의 시청에서는 노벨평화상 시상식이 열려 일본의 원폭피해자단체협의회가 평화상을 받았다. 시상식에서 일본피해자단체협의회를 대표해서 92살의 다나카 데루미( 田中熙巳) 대표위원은 수상연설을 통해 "핵 억제론이 아니라 핵병기는 단 한발도 안된다."라고 호소했다. 우크라이나나 중동에서 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세를 언급하면서 "'핵금기'가 허물어져 가고 있는 것에 한없는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다나카 회장은 자신들의 활동이 전쟁을 개시한 나라가 책임을 지고 피해자를 보상하는 '국가보상운동'과 '원자탄ㆍ수소탄을 금지하자는 운동' 등 두 개의 큰 활동을 펴왔음을 소개하면서 이러한 활동이 국제적으로 '핵금기'에 역할을 해왔다고 밝혔다. 1945년 8월9일 나가사키에 있다가 "한 발의 폭탄으로 집안의 식구 5명이 무참한 모습으로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 정부로부터도 외면당해 고독과 병고와 생활고, 편견과 차별을 감내하며 살아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어제 국회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이 시평은 탄핵안 가결 직전에 보내온 것이지만, 이 엄중한 때에 꼭 독자들에게 전달해야만 할 것이란 생각에 실어봅니다.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말) 정신 나간 격노한 선장이 일부 선원들을 동원하여 배 밑창에 구멍을 뚫었고 물이 들어와 배가 침몰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일등 항해사 두 명은 서로 선장이 되고자 혈안이 되어 있고 승객은 물에 빠져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데도 일부 선원들은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의는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를 통해 자신의 유불리에 빠져 정작 중요한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을 봅니다. 저들이 국민의 대표기관이라는 것에 절망을 느낍니다. 국민 위에 당이 존재하고 개인의 양심 위에 당론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배입니다. 물이 없으면 배는 떠다닐 수 없으며, 성난 파도는 배를 뒤엎을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진리를 명심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맹자는 부당한 권위를 타도하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도 둑 - 택당(澤堂) 이식(李植) 姦宄無常産(간귀무상산) 간사한 도적들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 데다가 飢荒又一時(기황우일시) 굶주림과 가뭄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어서 近村聞警急(근촌문경급) 이웃 마을의 위급한 소식 들어보니 相識有創夷(상식유창이) 알고 지내는 이들도 약탈당했다네 自幸囊中淨(자행낭중정) 다행이구나! 주머니 속이 깨끗하니 應無棟上窺(응무동상규) 당연히 대들보 위에서 엿보는 사람 없으리라 穿墉何足磔(천용하족책) 좀도둑들이야 어찌 나를 죽이리 城社有狐狸(성사유호리) 도성과 종묘에 여우와 살쾡이 있으니 이 시는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1628년 충주목사에서 파직되어 택풍당(澤風堂)으로 물러난 여름에 지은 것으로, 당시의 문제점에 대해 노래한 한시다. 이식(李植)은 이정구ㆍ신흠ㆍ장유와 더불어 한문4대가(漢文四大家)로 꼽히는 뛰어난 학자며, 문장가로 문풍을 주도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이식은 1623년 인조반정 뒤 이조좌랑이 되었고, 1632년까지 대사간을 세 차례 지냈다. 특히 임금의 종실을 사사로이 기리고 관직을 이유 없이 높이는 일이 법도에 어긋남을 논하다가 인조의 노여움을 사 간성현감으로 좌천되기도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려 할 때에 중국의 고사성어나 서양의 속담을 인용하면 더 근사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너무 빤해서 금방 실력이 들통이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그러다 보니 꼭 어디 어디 무슨 고사를 인용해야만 된다고 하는 강박관념이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있다. ‘목종승정(木從繩正)’이란 말이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원래의 뜻은 “나무(木)는 승(繩)에 따라가면 바르게 된다"라는 것인데 승(繩)은 먹줄(나무를 곧게 자르기 위해 먹으로 곧게 치는 줄)이니까 “굽은 나무라 할지라도 먹줄을 친 대로 켜면 곧바른 재목을 얻을 수 있다"라는 뜻이다. 곧 “임금이 신하의 곧은 말을 잘 들으면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다"라는 의미다. 이 말은 당(唐)나라 태종(太宗, 599~649)에게서 나왔다.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은 신하들이 간하는 것을 적극 수용할 뿐 아니라 신하들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한 현군이었다. 태종은 "내가 비록 밝지가 못하지만, 여러분이 바로 잡아 주어야 좋은 정치를 행할 수 있다. 바라건대 직언(直言)과 기개 있는 의론에 의해 천하를 태평하게 하고자 한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간의대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2018년, 향년 82살로 별세한 황병기 명인은 한국 가야금계의 독보적인 장인으로, 대표작 ‘미궁’을 비롯해 신라음악을 되살린 ‘침향무’ 등 많은 실험적인 곡을 작곡해 가야금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이런 그가 가장 아끼던 책이 있었으니, 바로 《논어》다. 여러 가지 번역서를 참고해서 《논어》를 정독하고, 보석처럼 마음에 새길 말씀만 100문장을 모아 그만의 ‘논어 명언집’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외출할 때 품에 지니고 다니며 읽었다. 이 책은 논어 명문장에 이런저런 생각을 곁들여 쓴 수필 모음집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황병기 명인을 만든 철학의 팔 할이 《논어》라는 생각이 든다. 거장에게는 항상 그의 삶과 작품을 추동하는 철학이 있다. 그는 《논어》를 통해 언행을 정제했고, 늘 수양하며 구도하듯 음악을 했다. (p.158) 옛것을 익히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스승이 될 수 있다. -<위정>편 11장-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작정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말고 옛것을 충분히 익힌 후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옛것을 모르고 새로운 것만 좇으면 허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황병기 명인의 여정 또한 그랬다. 1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 김남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 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가운데 줄임)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러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10월 20일 노무현시민센터 지하 2층 공연장에서는 민족작가연합, 한국민족춤협회가 주관하고 평화통일시민연대 등 10여 개 단체가 함께 주최하는 제3회 통일예술제가 열렸다. 또 이날은 고 김남주 시인의 30주기를 기리고, 시 낭송과 노래, 춤, 통일 발언, 정세 해설을 통하여 통일 의지를 공유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특히 고 김남주 시인의 일대기를 장숙자 명창이 판소리로 녹여냈다. 고 김남주(金南柱, 1946년~1994년) 시인은 대한민국의 시인이며, 시민ㆍ사회 운동가다. 유신을 반대하는 언론인 《함성》을 펴냈고 인혁당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