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수원의 논개 33인의 꽃 “김향화” 이 윤 옥 하얀 소복 입고 고종의 승하를 슬퍼하며 대한문 앞 엎드려 통곡하던 이들 꽃반지 끼고 가야금 줄에 논다 해도 말할 이 없는 노래하는 꽃 스무 살 순이 아씨 읍내에 불꽃처럼 번진 만세의 물결 눈 감지 아니하고 앞장선 여인이여 춤추고 술 따르던 동료 기생 불러 모아 떨치고 일어난 기백 썩지 않은 돌 비석에 줄줄이 이름 석 자 새겨주는 이 없어도 수원 기생 서른세 명 만고에 자랑스러운 만세운동 앞장섰네 김향화 서도흥 이금희 손산홍 신정희 오산호주 손유색 이추월 김연옥 김명월 한연향 정월색 이산옥 김명화 소매홍 박능파 윤연화 김앵무 이일점홍 홍죽엽 김금홍 정가패 박화연 박연심 황채옥 문롱월 박금란 오채경 김향란 임산월 최진옥 박도화 김채희 오! 그대들 수원의 논개여! 독립의 화신이여! ▲ 청초한 김향화 모습(사진 게옹, 수원박물관 이동근 전문위원) 김향화(金香花, 1897. 7. 16~ 미상) 김향화를 비롯한 수원기생들은 고종 임금이 돌아가셨을 때도 나라 잃은 설움을 토해내었다. 당시 고종 임금의 승하 발표가 나자 기생, 광대, 배우들은 모두 휴업을 하고 근신에 들어갔다. 그리고 덕수궁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개성 31 만세운동을 쥐고 흔든 투사 어윤희 이 윤 옥 동학군 앞장선 남편 신혼 3일 만에 왜놈 칼에 전사한 뒤 나선 독립투사 길 저 앙큼한 년 저년을 발가벗겨라 협박 공갈하는 순사 놈 앞에 서서 스스로 홀라당 옷을 벗은 그 용기 이화학당 어린 유관순 함께 잡혀 먹던 밥 덜어주며 삼월 하늘 우러러 보살핀 마음 만세운동으로 군자금 모집으로 애국계몽운동으로 헐벗은 고아의 어머니로 살아낸 꺼지지 않는 불꽃 여든 해 삶 마치고 돌아가던 날 내리던 희고 고운 눈 순결하여라. ▲ 개성 31 만세운동을 쥐고 흔든 독립투사 어윤희 시화(시 이윤옥, 시회 이무성) * 어윤희(魚允姬, 1877.6.30~1961.11.18 ) 어윤희 애국지사는 당시 만세운동과 연루되어 형사들이 수갑을 채우려 하자, 천하 만방에 여자에게 수갑을 채우는 나라가 일본 말고 또 어디에 있느냐? 당신들이 내 몸을 묶어갈망정 내 마음은 못 묶어 가리라하고는 땅에 동그란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서서 여기 며칠을 서 있으라 해도 그대로 서 있을 나다.라고 오히려 당당히 큰소리를 치며 형사들을 기죽게 하였다. *어윤희 애국지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1권에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중국 대륙 여자 광복군 맏언니 오광심 이윤옥 대륙의 찬바람 속 광복이 무엇이드냐 변절자의 방화로 심한 화상입고 바위굴 숨어들 때 놀란 박쥐들 퍼덕이며 날아갔었지 어제는 유화현 삼원포 민족교육 겨레 혼 심고 오늘은 눈보라 속 독립군 행진에 앞장선 이여 북녕 철로 산해관 넘어 북만주 땅 찾아가는 길 철통같은 일본군 수비대 따돌리고자 중국인 아낙으로 변장이야 했다지만 품속의 비밀문서 들킬까 통째로 외워버린 지략 만주에서 불호령 치던 유격대 출신 높은 기개 안휘성 부양에서 지하공작 선봉장 되어 열대여섯살 어린 독립군 보듬으며 광복군 후예 길러 낸 자상한 맏언니 해방된 조국에서 금의환향 바란 바 없지만 대륙을 호령하던 열혈 독립투사 빛 찾은 고국에서 갈 곳 없어 떠돌다 차디찬 골방에서 숨져갈 줄이야. ▲ 부부 독립운동가 오광심, 김학규 애국지사 오광심(吳光心, 1910.3.15~1976.4.7)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남편 김학규와 함께 부부 독립운동가이다. 특히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막강해진 군사력을 피해 만주벌에서 악전고투하던 한국 독립군들은 활동 근거지를 점차 중국 관내로 이동해야만 했는데이때 김학규와 오광심 애국지사는 독립군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평남도청에 폭탄 던진 당찬 임신부 안경신 이 윤 옥 토지수탈 앞잡이 동양척식회사에 폭탄 던진 나석주 조선인 잡아 가두던 종로경찰서에 폭탄 던진 김상옥 상해 홍구공원 대 쾌거 윤봉길 도쿄 황거 앞에서 폭탄 던진 김지섭 이봉창 의사 제국주의 무모한 만행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여자의 몸 뒤질세라 치마폭에 거사 이룰 폭탄 몰래 숨겨 들여와 신의주 철도호텔, 의천경찰서, 평남도청에 던진 그 용기 꽃다운 스물세 살 임신부 폭탄 들어 평남도청 향해 힘껏 던지던 날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라고 온 천지가 부들부들 떨었다네 갓 낳은 핏덩이 끌어안고 왜경에 잡혀 철창 속에 갇혀서도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게 무슨 죄냐고 쩌렁쩌렁 호령하던 열사 출옥 후 핏덩이와 간 곳 알 수 없지만 어느 이름 모를 곳에서 또 힘차게 대한독립만세 외치며 그 투지 불태웠을 테다 불태웠을 테다. ▲ 여자폭탄범이란 기사로 대서특필한 1921.5.2 동아일보 안경신(安敬信, 1877~미상) 31 만세운동 때도 참여하였지만 그때는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나는 일제 침략자를 놀라게 해서 그들을 섬나라로 철수시키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곧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독립운동가 3대 지켜 낸 어머니 '김락' 나라의 녹을 먹고도 을미년 변란 때 죽지 못하고 을사년 강제 조약 체결을 막아 내지 못했다며 스무나흘 곡기를 끊고 자결하신 시아버님 아버님 태운 상여 하계마을 당도할 때 마을 아낙 슬피 울며 하루 낮밤 곡기 끊어 가시는 길 위로 했네 사람 천석 글 천석 밥 천석의 삼천 석 댁 친정 큰 오라버니 백하구려 모여든 젊은이들 우국 청년 만들어 빼앗긴 나라 찾아 문전옥답 처분하여 서간도로 떠나던 날 내앞 마을 흐르던 물 멈추어 오열했네 의성 김 씨 김진린의 귀한 딸 시집와서 남편 이중업과 두 아들 동흠 중흠 사위마저 왜놈 칼 맞고 비명에 보낸 세월 쉰일곱 늘그막에 기미년 안동 예안 만세운동 나간 것이 무슨 그리 큰 죄런가 갖은 고문으로 두 눈 찔려 봉사 된 몸 두 번이나 끊으려 한 모진 목숨 11년 세월 그 누가 있어 한 맺힌 양가(兩家)의 한을 풀까 향산 고택 툇마루에 걸터앉아 흘러가는 흰 구름에 말 걸어본다 머무는 하늘가 그 어디에 김락 여사 보거들랑 봉화 재산 바드실 어르신과 기쁜 해후 하시라고 해거름 바삐 가는 구름에게 말 걸어본다. 김락(金洛,1863.1.21~1929. 2.12
[그린경제 = 이윤옥 문화전문기자] 무명지 잘라 혈서 쓴 남자현 이윤옥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어찌 홀로 집에 있으랴 핏덩이 아들 두고 늙으신 노모 앞서 죽음 택한 의병장 남편 왜놈 칼 맞아 선연히 배어든 피 묻은 속적삼 부여잡고 울 수만 없어 빼앗긴 나라 되찾고자 떠난 만주 땅 곳곳에 병들고 상처받은 동포들 삶 보살피고 어루만진 따스한 손 왜적 무토부요시를 응징하고 왼손 무명지 잘라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 혈서 쓰며 부르짖은 조국광복 만리타향 감옥에서 단식으로 숨 거두며 동지에게 남긴 마지막 한마디 말 만일 너의 생전에 독립을 보지 못하거든 너의 자손에게 똑같은 유언을 하라 최후의 한 명까지 남아 조국광복을 기필코 쟁취하라 당부하던 여장부 아! 조선 천지에 이만한 여걸이 어디 또 있으랴! ▲ 무명지를 잘라 혈서를 쓰는 남자현 애국지사 (이무성 한국화가 부채그림) 남자현(南慈賢, 1872.12. 7~1933. 8. 22) 19살 때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동에 사는 의성 김씨 김영주에게 시집 가 단란한 생활을 꾸렸으나 일제의 만행이 점차 극성을 부리자 남편 김 씨는 1896년 여사에게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어찌 집에 홀로 있을 것인가. 지하에서 다시
[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용인의 딸 열네 살 독립군 “오희옥” 이윤옥 류후공원 낡은 로프웨어에 매달려 산마루를 올랐다 저만치 발아래 류쩌우 시내가 육십 년대 사진첩 속 그림처럼 어리고 그 어딘가 열네 살 소녀의 씩씩한 군가가 들려올 듯하다 용인 느리재의 명포수 할아버지 의병장으로 나선 길 뒤이어 만주벌을 쩌렁쩌렁 호령하던 장군 아버지 그 아버지와 나란히 한 열혈 여자 광복군 어머니 그 어머니의 꽃다운 두 딸 희영 희옥 자매 광복진선 청년공작대원되어 항일연극 포스터 붙이러 어봉산 도락암 공원에도 자매는 다녀갔을까? 열네 살 해맑던 독립소녀 팔순 되어 사는 집 수원 대추골 열세 평 복지 아파트 찾아가던 날 웃자란 아파트 정원 은행나무 그늘에 앉아 낯선 나그네 반겨 맞이하던 팔순 애국지사 흑백 사진첩 속 서간도 황량한 땅 개척하며 독립의지 불사르던 오씨 집안 3대 만주벌 무용담 자랑도 하련만은 손사래 절레절레 치는 수줍은 여든여섯 광복군 소녀 그 누구 있어 치열한 3대의 독립운동사를 책으로 쓸까 욕심 없이 아버지 유품을 내보이며 들꽃처럼 미소 짓던 해맑은 영혼 그 눈동자에 비치던 우수 어린 한 점 이슬 아직도 광복의 영광 새기지 않는 조국 전설 같은 독립의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섬섬옥수 무궁화 수를 놓아 삼천리 금수강산 가르치던 스물셋 처녀 선생님 가갸거겨 글 가르쳐 민족혼 일깨우며 밤낮으로 독립의 끈 놓지 않게 타이르신 이여 어느 해 메마른 겨울 장이 꼬이도록 몸을 살피지 않고 열정을 쏟으시더니 끝내는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에 꽃상여 타고 코흘리개 곁을 떠나던 날 넘치던 샘골의 물이 마르고 하늘의 물도 말라 마을 아낙들 마른 울음소리만 가득했네 코흘리개 녀석들 엎어지고 자빠지며 상여 뒤쫓아가는 길 꽃상여 위로 흰 눈송이만 하염없이 내리었다네. -심훈의 상록수 주인공 처녀선생 '최용신'/이윤옥- ▲ 1935년 당시 최용신 관련기사 최용신(崔容信, 1909. 8.12 - 1935. 1.23)은 누구인가? 심훈의 상록수 모델이 된 최용신은 함경남도 덕원(德原) 출신으로 식민지 수탈에 의해 피폐한 농촌사회의 부흥을 위해 농촌계몽운동으로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다. 그의 나라사랑 이야기는 ‘시로 읽는 여성독립운동가’《서간도에 들꽃 피다》2권에 자세히 그려져있다. ▲ 최용신 기념사업회를 이끈 김명옥 회장과 안산 샘골 최용신 애국지사 무덤에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경성감옥 담장이 서로 손잡고 올라가는 여름 요즘 아이들 밀랍인형 고문실에 멈춰서 재잘대지만 차디찬 시멘트 날바닥 거쳐 간 독립투사 그 얼마더냐 지금은 공부보다 나라 위해 일을 하라 아버지 말씀 따라 일본인 방적공장 들어가서 오백 명 종업원 일깨운 항일투쟁의 길 감옥을 안방처럼 드나들 때 고춧가루 코에 넣고 전기로 지져대어 살 태우던 천형(天刑)의 세월 잡혀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만 죽어라 동지를 팔아먹지 마라 결코 팔아먹지 마라 혼절 속에 들려오던 아버님 말씀 새기던 나날 광야의 육사도 그렇게 외롭게 죽어 갔으리 뼈 삭는 아픔 숯 검댕이 영혼 부여잡으면서도 그러나 결코 비굴치 않았으리라 먼데 불빛처럼 들려오는 첫 닭 우는 소리를 어찌 육사 혼자 들었으랴. -이윤옥, '이육사 시신을 거둔 독립의 불꽃 이병희'- 핼쑥한 모습이었지만 요양원 좁은 침대 위에서 글쓴이를 반갑게 맞이해주시던 이병희 애국지사 (李丙禧, 1918.1.14~2012.8.2) 님은 이제 우리 곁에 없습니다. 그러나 제 손을 꼭 잡고 들려주시던 말씀은 지금도 어제 하신 말씀처럼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 요양원에 계실 때 그린 예쁜 꽃 그림 “그날 형무소 간수
남에는 유관순, 북에는 '동풍신' 이윤옥 천안 아우내장터를 피로 물들이던 순사놈들 함경도 화대장터에도 나타나 독립을 외치는 선량한 백성 가슴에 총을 겨눴다 그 총부리 아버지 가슴을 뚫어 관통하던 날 열일곱 꽃다운 청춘 가슴에 불이 붙었다 관순을 죽이고 풍신을 죽인 손 정의의 핏발은 결코 용서치 않아 끓어오르던 핏빛 분노 차디찬 서대문 감옥소 철창을 녹이고 얼어붙은 조선인 가슴을 녹였다 보라 남과 북의 어린 열일곱 두 소녀 목숨 바쳐 지킨 나라 어이타 갈라져 등지고 산단 말인가 남과 북 손을 부여잡고 다시 통일의 노래를 부를 그날까지 님이시여 잠들지 마소서! --------------------------------------------------------------------------------- 동풍신(董豊信, 1904 - 1921) 서대문형무소공원 안 독립관에는 순국선열들의 위패가 모셔져있는데 거기에 동풍신 애국지사의 위패가 있다. 남에는 유관순, 북에는 동풍신이라고 할 정도로 알려졌던 두 열사는 어찌 된 영문인지 한쪽은 만고의 애국지사인데 한쪽은 그 이름 석 자를 아는 사람이 없다. . ▲ 서대문형무소공원 안 독립관에 모셔져 있는 순국선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