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아래 내용은 장자가 공자를 보는 시각입니다.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제자들은 책을 읽고 있는데 공자는 노래를 부르며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어떤 어부가 배에서 내려 조용히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노래가 끝나자 어부가 물었다.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냐?” 자로(공자의 제자)가 대답하길 “공씨로 노나라의 군자입니다.” “공씨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공씨는 태어나면서 몸소 인의를 실행하며 예악을 지키고 인륜을 갖추어 위로는 임금에게 충의(忠義)를 다하고 아래로는 만백성을 교화하여 장차 천하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 합니다. 객이 또 물었다. “영토를 가지고 있는 군주인가?” “아닙니다.” “그러면 제후나 왕을 돕고 있는 사람인가?” “아닙니다.” 객이 왔던 길을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 어질기는 틀림없이 어질지만, 아마도 그 몸은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마음을 괴롭히고 몸뚱이를 지치게 해서 자신의 참된 본성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사람은 왜 배우는가?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습득한 것의 극히 일부 밖에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런데 왜 사람은 고생해서 배우고 지식을 얻으려하는가? 이제부터 그 이유를 밝히겠다. " 이는 히로나카 헤이스케(広中 平祐, 1931~) 교수가 쓴 《학문의 즐거움》 첫 장에 나오는 글귀다. 생각해보면 그러하다. 초중등학교를 거쳐 대학을 나오고 더러는 석박사 과정까지 마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수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히는 데 숱한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그럼에도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말처럼 ‘극히 일부 밖’에 써먹지 못하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왜일까? 그 이유를 살피기 전에 《학문의 즐거움》을 쓴 히로나카 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벽촌 장사꾼의 열다섯 남매의 일곱 번째 아들. 유년학교 입시에서 보기좋게 물먹고, 한 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곡절 많던 소년. 대학입시 일주일 전까지 밭에서 거름통을 들고, 대학 3학년이 돼서야 수학의 길을 택한 늦깎이 수학자. 끈기 하나를 유일한 밑천으로, 미국 하버드로 건너가 박사를 따내고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드상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소현세자와 강빈. 개화당이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갑오개혁의 기치를 올리기 250여 년 전, 새로운 조선을 꿈꾼 부부가 있었다. 이들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있던 9년 동안 가난하지 않은 조선, 청나라의 말발굽에 짓밟히지 않는 조선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애썼다. 그러나 그 꿈은 조선에 돌아오자마자 사라져버렸다. 조선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현세자 부부의 죽음이다. 부왕인 인조가 소현세자를 독살했다는 정확한 증거는 없지만, 여러 정황상 인조의 묵인 아래 독살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강성한 조선을 꿈꿨던 소현세자 내외는 어찌하여 이렇게 허망하게 가야 했을까. 이들이 인조 사후 조선을 통치했다면 조선은 경술국치를 겪지 않아도 됐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이들의 죽음은 국운의 융성과 쇠퇴를 가른 뼈아픈 이정표였다. 이 책, 《조선궁중잔혹사》를 쓴 김이리 또한 이런 안타까움을 느꼈다. 지은이는 《조선왕조실록》과 《한국역대 궁중비사》에서 민회빈 강씨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찾을 때마다 그녀의 혜안과 열정에 탄복하며,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비사를 역사장편소설로 절절히 그려냈다. 소설은 강빈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서울역사박물관 유물관리과에서는 주요 유물 소개란(https://museum.seoul.go.kr)을 만들어 ‘나무상자에 담긴 일제강점기의 기념품’을 소개하고 있어 독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은 일본인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 가운데 하나였다. 일본 정부가 내지인(內地人, 일본인)의 자부심을 높이고 제국주의라는 국가적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으로의 여행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조선 토산품으로 인식되었던 근대 공예는 여행의 기념품이나 선물로 주목받게 된다. 일본인들이 ‘고려소(高麗燒)’, ‘미시마테(三島手)’라고 불렀던 재현 고려청자와 분청사기, 조선의 독특한 요리기로 소개되었던 ‘신선로’, 그리고 ‘나전칠기’ 등은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특히 정교한 제작 기법과 화려함, 천하제일 비색을 갖춘 조선을 대표하는 고미술품으로 재인식되었던 고려청자와 나전칠기는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근대적 기술로 그 아름다움을 재현했다는 측면에서 상류층의 고급 소비품으로 향유되는 한편,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게 변용, 절충되어 상품으로 대량생산・유통되었다. 이와 같이 상품으로 제작된 근대 공예품을 판매하였던 상점으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저는 아산병원에 문상갈 때 잠실나루역에서 내려 성내천을 건너갑니다. 성내천변을 따라 걷는 맛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잠실나루역 근처에 있는 헌책방을 둘러보는 맛도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책보고’라고 서울시가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www.seoulbookbogo.kr)인데, 여기에 30개 가까운 헌책방이 입주하여, 저마다 서가를 차지하고 각자 소장한 책들을 보여줍니다. 책들이 주제 별로 꽂혀있지 않고 헌책방별로 꽂혀있는 것이 조금 흠이긴 하나, 각자의 헌책방 서가마다 돌아보는 맛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문상가면서 ‘서울책보고’를 들렀는데, 여기서 《탐라문견록》이란 책을 발견하였습니다. 《탐라문견록》이란 1731년 9월 정운경(1699~1753)이 제주에서 듣고 본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정운경은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아버지 정필녕을 따라 제주에 와서 《탐라문견록》을 남긴 것이지요. 《탐라문견록》에는 정운경이 제주 전역을 여행하고 쓴 여행기와 제주의 특산물인 귤을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한 글도 있지만,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풍랑을 맞아 이국으로 표류한 제주도민의 이야기를 기록한 표류기입니다. 바다를 소홀히 하여 공도(空島)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나가는 개미를 밟아 죽이는 일을 어떻게 볼 것인가? 법적인 측면에서, 도덕적인 측면에서, 또는 윤리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개미를 죽이는 일을 비난할 수 있겠는가? 비난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에게 사람과 같은 생존권을 인정하자는 것이 동물보호론자들의 주장이다.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서 세계동물권리선언이 발표된 것은 1978년 10월 15일이다. 동물권리선언의 제1조는 다음과 같다. 제1조 모든 동물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한 생명권과 존재할 권리를 가진다. 여기에서 동물의 정의와 범위가 문제가 될 것이다. 동물의 정의에 이의 없이 포유류(고양이, 개, 소, 말, 염소 등등)는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돌고래도 포유류이니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닷가재는 어떨까? 개미는? 꿀벌은? 질문이 확대되면 복잡해지지만, 이러한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가 환경윤리다. 환경윤리는 생태계의 모든 생명체를 인간 생명과 대등한 존재로 인정하고, 생명체의 생존권을 인정하자는 윤리다. 모든 생명체에 환경윤리를 적용하면 개미를 밟아 죽이는 일은 나쁜 일, 비윤리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논에 농약을 뿌려 간접적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코로나19’로 지난 2년 동안 중단되었던 교토의 기온마츠리(祇園祭)가 올해 재개된다. 교토의 3대 마츠리라고 하면 5월 15일의 아오이마츠리(葵祭), 7월 17일의 기온마츠리(祇園祭), 10월 22일의 지다이마츠리(時代祭)를 꼽는다. 오래된 순서를 꼽으라면 올해(2022)를 기준으로 아오이마츠리(570년), 기온마츠리(866년), 지다이마츠리(127년) 순이지만 가장 화려하고 볼만하다는 평을 듣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기온마츠리(祇園祭)다. 기온마츠리가 진행되는 천년 고도(古都) 교토는 7월 1일부터 한 달 내내 축제 분위기다. 기온마츠리의 유래는 돌림병(전염병)이 퍼지지 않도록 신에게 기도하는 의례에서 생겨났다. 지금부터 1,100여 년 전 교토에 돌림병이 크게 퍼져 죽는 사람이 속출했는데 오늘날과 같은 돌림병 대책이 없던 당시에는 돌림병 발생을 신(神) 곧 우두천왕(牛頭天王, 일명 스사노미코토)의 노여움으로 알았다. 그 노여움을 풀어주려고 기온사(祇園社, 현 야사카신사)에서 병마 퇴치를 위한 제사를 지냈는데 당시 66개의 행정구역을 상징하는 가마 66개를 만들어 역병(疫病)을 달래는 “어령회(御靈會)”를 지낸 데서부터 기온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물러갈 것이냐 나아갈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조선의 햄릿으로 살다간 김시습의 생애를 한 마디로 보여주는 문장이다. 한평생 출처(出處), 곧 선비의 나아감과 물러남을 고민한 그는 고뇌하는 지식인이었다. 선비가 세상에 나아가는 것을 ‘출(出)’, 재야에 묻혀 자신을 갈고닦는 것을 ‘처(處)’라고 한다면, 김시습은 초야에 묻혀 세월을 보내던 처사(處士)에 가까웠다. 그러나 한평생 그를 괴롭힌 것은 출사(出仕)에 대한 욕망이었다. 불의한 세조 정권에 맞서 절의를 지키려 처사가 되었건만, 타고난 재능으로 조정에 출사하여 천하를 경륜하고자 했던 젊은 날의 꿈은 한평생 그를 괴롭혔다. 강숙인이 쓴 이 책, 《나는 김시습이다》는 이처럼 절의와 세속적 성공 사이에서 갈등한 김시습의 내면을 1인칭 시점으로 세밀하게 그려냈다. 지은이는 세조 정권에 저항하며 장렬히 목숨을 버린 ‘사육신’의 그늘에 가려진 ‘생육신’이 겪었을 ‘살아남은 자의 슬픔, 그 가늘고 여린 슬픔’에 대해 쓰고자 했다고 밝힌다. 사육신 곧 1456년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잃은 성삼문ㆍ박팽년ㆍ하위지ㆍ이개ㆍ유성원ㆍ유응부 등 6명은 조선 중기 이후 충절의 상징으로 칭송되었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나관중은 《삼국지연의》의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오늘도 장강은 유유히 흐른다." 어찌 장강(양쯔강)만 흐르겠습니까? 인생도 흐르고 역사도 흐르고 시간도 흘러갑니다. 흘러야 인생입니다. 흐름이 멈추면 인생 또한 멈추게 됩니다. 강물도 그러하지만, 시간과 마음도 흐르게 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도 흐르게 해야 합니다. 멈추면 썩기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이 나의 곳간에 더 많이 쌓아두려 노력합니다. 그건 흐름을 방해하는 멈춤일 수 있습니다. 파도는 흔적을 남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움직임이 매끄러운 조약돌을 만들고 고운 모래를 만듭니다. 옹달샘을 퍼내지 않으면 고인 물이 되어 썩게 마련이고 썩지 않더라도 흐름이 멈추고 나면 쉬 마르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흐름을 유지하는 것은 살아있음의 다른 표현입니다. 성인의 몸에는 약 5~6리터의 혈액이 있습니다. 그 혈액은 끊임없이 흘러야 합니다. 몸의 곳곳에 산소와 영양이 공급되어야 살 수 있으니까요. 그 흐름이 멈추면 삶도 끝나게 되겠지요. 맹자 진심장(盡心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의 수양은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養心莫善於寡欲) 욕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필즈상(영어: Fields Medal)이란 상(賞)이 있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상이지만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 필즈상을 탄 한국인이 있어 화제다. 국제수학연맹(IMU)은 지난 5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2022 세계수학자대회(ICM)'를 열어 재미동포인 허준이 교수를 필즈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미국 국적이지만 한국계 수학자로서는 최초 수상으로 이전까지 한국계나 한국인이 이 상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필즈 메달은 국제 수학 연맹(IMU)이 4년마다 개최하는 세계 수학자 대회(ICM)에서 수상 당시 40살 미만의 수학자들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수학자들로서는 큰 영예의 상으로 알려져 있다. 필즈상은 캐나다의 수학자 존 찰스 필즈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산을 기금으로 만들어진 상으로 1936년에 처음 시상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14년간 시상이 중단되었다가 1950년부터 다시 시상이 이어졌다. “상의 수여는 이미 이루어진 업적을 기리면서 동시에 앞으로 연구를 지속하도록 격려하고 다른 수학자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뜻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 필즈상을 만든 존 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