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어렸을 때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대통령이었습니다. 로또 확률이 818만분의 1인데…. 대통령은 능력과 실력을 갖추면서도 5000만분의 1이니…. 하늘이 내리지 않고는 오를 수 있는 자리가 결코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19대 대선 때 양구에서 개표 요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전자 개표가 동원되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개표과정이었는데 약 15,000의 투표용지 중에서 2,000표 정도가 무효표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사회에 대한 불만이 무효표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 유형이 상당히 재밌습니다. 첫째는 온정주의로 모든 사람에게 표를 주고 싶은 마음에 13명의 후보에게 일일이 표를 찍어주어 붉은색으로 도배된 투표지도 있고 둘째는 양다리 형으로 두 사람에게 모두 기표한 사례도 있고 셋째는 자기표현형으로 투표지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은 일도 있고 넷째는 자기만족형으로 도장 대신에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그린 예도 있고 다섯째는 여백 존중형으로 기표 장소 이외의 여백에 기표를 하기도하고 여섯째는 결정 장애형으로 세심하게 두 후보 사이에 기표하기도 한 사람도 있고 일곱째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선생님은 어디 사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은평 뉴타운 4단지라고 하면서 꼭 폭포동이란 이름을 빼지 않고 말해준다. 요즘 도로이름 주소로 치면 나올 수 없는, 그렇다고 예전 지번 주소로 쳐봐도 나오지 않는데 버스정류장 이름이 폭포동이다. 속칭이다. 이 동네로 이사 오면서도 ‘아니 무슨 동네 이름이 폭포동이 있나?’, ‘폭포가 동네 한가운데에 있나?’, ‘은평경찰서 앞 다리를 건너다보면 오른쪽에 인공 암벽이 보이던데 그걸 보고 폭포동이라고 하나?’ ... 등등 나 자신 궁금했다. 그런데 폭포동이라고 할 때의 '동'이란 말은 한자로 쓰면 洞인데 그 글자는 요즈음에는 행정구역의 기초단위로 쓰는 것이 보편화되었지만 그것 이전에 '골짜기'라는 뜻이 들어있다. 최근에 종로구 옥인동의 인왕산 자락의 골짜기를 수성동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한자로 쓰면 水聲洞(수성동)이라고 되어 있다. 예전에 이 일대에 비가 좀 오면 그 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가 엄청 크고 멋이 있어 사람들이 '큰 물소리가 들리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그렇게 썼고 겸재 정선이 이 골짜기를 그림으로 남긴 것이 있어 최근에 그 그림에 나오는 돌다리를 중심으로 계곡을 다시 복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학교에 다니던 학생. 농사를 짓던 농부. 절에서 참선하던 승려. 시장에서 물건을 팔던 잡화상. 독립은, 이처럼 ‘평범한’ 이들의 꿈이었다. 대한독립은, 이들의 열망이 이루어낸 거대한 기적이었다. 우리는 독립을 향해 내달렸던 평범한 이들을 쉽게 잊곤 한다. 우리가 수업시간에 배우는, 혹은 대부분의 역사책에서 접하는 위인들은 독립운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비범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독립운동사의 빛나는 주연이다. 그러나 이런 빛 뒤에는, 역사에 이름 한 줄 남기지 못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스러져 간 수많은 평범한 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인생에서는 모두 주인공이었을 이들이, 독립운동사에서는 그 누구도 알아보는 이 없는 초라한 단역으로 아스라이 잊힌 것이다. 양경수 작가는 이들을 다시 무대 위로 불러냈다. 《실어증입니다, 일하기 싫어증》 등 직장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 만화책을 여럿 펴내며 재치 넘치는 그림체로 유명했던 그가 이번에는 ‘웃음기를 싹 빼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든 수감자카드에 기록된 이들 가운데 100인을 말끔한 모습으로 되살려냈다. 이 책 《대한독립, 평범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에서는 무대가 끝나고 각자의 배역으로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더운 여름 날씨가 정점을 치닫고 있다. 말복을 지났으니 이제 더위도 수그러들 것이지만 책상 앞에 앉아있으려면 여전히 덥다. 선풍기를 틀고 있지만, 머리 쪽으로 열이 몰린다. 어쩔 수 없이 꺼내든 부채, 여름 내내 자주 활활 부치던 선면(扇面)에는 네 글자가 써있다. ‘隱惡揚善(은악양선)’이다. 지난해 여름에 안동 도산면에 사시는 우리 집안의 종손이 갖고 다니시던 것을 내가 빼앗은 것인데,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김병일 이사장이 이근필 퇴계 종손과 함께 퇴계의 친필 중에서 이 글씨를 뽑아 부채로 만들었고 그 가운데 하나를 기념으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악행은 덮어주고 다른 사람의 선행은 드러낸다”라는 뜻의 이 말은 유교의 경전인 《중용(中庸)》 6장에 나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순(舜) 임금은 크게 지혜로운 분이실 것이다. 순 임금은 묻기를 좋아하고, 평범한 말을 살피기를 좋아하시되, 악(惡)을 숨겨주고 선(善)을 드러내시며, 두 끝을 잡고 헤아려 그 중(中)을 취한 뒤에 백성에게 쓰셨으니, 이 때문에 순 임금이 되신 것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인으로 평가받는 순(舜) 임금이 임금이 될 수 있었던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 속 대결에서 패한 자는 왜곡되고, 묵살당하며, 잊혀간다. 지금이야 대권을 잡지 못하거나 정권창출에 실패했다고 해서 목숨이 위태롭진 않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임금이 되지 못하거나 권력 투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 가문 전체가 몰살당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내가 살려면 상대를 죽여야 하는, 살벌한 시절이었다. 그런 냉혹한 시대, 한 인간이 온 힘을 다해 투쟁에 임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자 역사 속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어본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승자와 패자의 길은 나뉘는 법, 결국 역사는 살아남은 자들을 아름답고 정의롭게 묘사했고, 약자는 곧 ‘악한 자’로 폄하되어 갖은 오명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이 책, 《소설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 나쁜 남자편(최문정, 창해)》은 그런 약육강식의 서사구조에 반기를 든다. 과학교사였던 저자는 불합리한 인사 조치에 우울증을 얻어 휴직의 시간을 가졌다. 약자의 설움을 느끼던 그 시절, 평소 관심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보며 시름을 달랬다. 《조선왕조실록》 속 약자들의 모습은 ‘약하다는 이유로 악한 인간으로 몰렸던’ 자신의 모습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지난 7월부터 우리나라는 열대야 현상으로 대도시 시민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폭우로 인한 홍수 피해가 심상치 않다. 환경학자들은 지구온난화가 예상보다 빨리 진행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의 기후위기는 인류에게 코로나보다도 더 심한 충격을 줄 것이며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기후위기는 지구촌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위기의 원인 물질인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일은 이제 모든 나라의 정부와 기업, 개인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우리나라 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하였고,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개발하고 입법을 추진중에 있다. 기업들은 새로운 변화를 빨리 파악하고 적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기후 위기 시대에 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두 가지 운동을 소개한다. 첫째는 RE100운동이다.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를 의미하는 새로운 용어로서 2014년에 다국적 비영리재단 The Climate Group의 주도 아래 시작된 지구 차원의 운동이다. 이 운동에서는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 중종 때 우부승지로 있던 송재(松齋) 이우(李堣)는 1512년 늙으신 모친 봉양을 위해 벼슬을 버리고 고향 안동 도산에 와 있으면서 일찍 부친을 여읜 열두 살의 조카 황(滉, 퇴계)에게 《논어(論語)》를 가르치는 한편 그 이듬해인 1513년 봄에는 황의 여섯 살 위 형인 해(瀣, 온계)를 자신의 두 사위와 함께 청량산에 들어가 공부를 하도록 했다. 이때 이우는 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열한 수의 시를 지어주었는데 첫 시는 이렇다. 讀書人道若遊山 사람들은 말하지, 독서가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아서 深淺優游信往還 깊고 얕은 곳을 여유 있게 마음대로 오간다고. 況是淸凉幽絶處 하물며 청량산 그윽하고 빼어난 그곳은 我曾螢雪十年間 내 일찍이 10년간 형설의 공을 이룬 곳임에랴? ... 이우, '청량산으로 독서하러 가는 조씨 오씨 두 사위와 조카 해를 보내며' 여기에서 독서가 곧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는 유명한 화두(話頭)가 하나 생겼다. 퇴계는 숙부, 중형을 따라 청량산에 들어가 길게 공부를 했거니와, 자신에게 공부를 가르치신 숙부의 은공을 생각하며 뒤에 독서하는 것이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는 숙부의 화두를 산을 유람하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박노해 시인이 《걷는 독서》라는 책을 냈습니다. 걷는 독서라니? 걸으면서 책을 읽는다는 것인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꼭 책을 들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요. 걸으면서 묵상하고, 주위 자연과 교감하며 깨달음을 얻는 것도 걷는 독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박 시인은 어린 날 마을 언덕길이나 바닷가 방죽에서 풀 뜯는 소의 고삐를 쥐고 책을 읽었고, 학교가 끝나면 진달래꽃, 조팝꽃, 산수국꽃 핀 산길을 걸으며 책을 읽었답니다. 그러다보면 책 속의 활자와 길의 풍경들 사이로 어떤 전언(傳言)이 들려오곤 했답니다. 감옥 독방에 있을 때에도 박 시인은 ‘걷는 독서’를 계속합니다. 비록 세상 맨 밑바닥 끝자리에 놓인 두 걸음 반짜리 길의 반복이었으나, ‘걷는 독서’를 하는 동안은 박시인의 정신 공간은 그 어떤 탐험가나 정복자보다 광활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을 박시인은 감탄조로 이렇게 말합니다. “철저히 고립되고 감시받는 감옥 독방의 그 짧고도 기나긴 길에서 아, 나는 얼마나 많은 인물과 사상을 마주하고 얼마나 깊은 시간과 차원의 신비를 여행했던가!” 자유의 몸이 된 뒤, 박 시인의 걷는 독서는 국경 너머 눈물 흐르는 지구의 골목길에서도 계속 되었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안동에 가면, 누가 봐도 이상한 집 한 채가 있다. 분명 양반가의 기품이 서린 유서 깊은 고택이건만, 앞마당에 웬 철길이 가로지르고 있다. 석주 이상룡 선생이 살았던 고성 이씨 종택 임청각(臨淸閣) 얘기다. 걸출한 독립운동가를 주인으로 둔 탓에 아흔아홉 칸 종택이었던 임청각도 갖은 수모를 겪었다. 일제에 순종하지 않는 불량한 조선인, 곧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집으로 낙인찍혀 절반가량이 헐리고 마당을 가로질러 철길이 놓였다. 일제는 부러 먼 길을 돌아가면서까지 임청각 앞마당에 철길을 내어 독립운동의 도도한 기상을 꺾으려 했다. 그러나 그 기상이 쉬 꺾일 것이던가. 정종영 작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은 바로 임청각의 주인, 석주 이상룡(石洲 李相龍)에 관한 책이다. 초등학생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였으나 어른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안동의 존경받는 유림이었던 이상룡 선생, 그가 경술국치 이후 어떤 삶을 택했는지 따라가다 보면 상류층의 책임을 실천한 또 하나의 훌륭한 사례를 만나게 된다. 그는 본디 안동의 존경받는 유림으로, 성리학을 공부한 유학자이자 고성 이씨 종파를 이끄는 대지주였다. 1519년 임청각을 지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철은 피서철이라고 해서 사람들은 시원한 계곡이나 바다를 찾아 몸을 식힌다. 그런데 이런 때에 인간의 참된 삶은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종교적인 구도를 찾는 사람들도 절이나 교회의 휴양공간 등을 찾는다. 거기서 자신이 믿고 의지하는 대상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거기서 자신의 삶을 재설정하곤 한다. 불교도 기독교도 천주교 가톨릭도 이 점은 공통인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이 믿고 따라는 가르침은 서로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1994년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존 메인 세미나에 주인공으로 초청됐다. 베네딕토 수도회의 존 메인 신부를 기리기 위해 해마다 국제적으로 열리는 이 세미나를 준비한 신부들은 자신들이 가려 뽑은 성경 사복음서의 대표적인 구절들을 미리 달라이라마에게 건네주고 그것에 대해 강의해줄 것을 제의했다.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이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인 달라이 라마는 북런던에 있는 미들섹스 대학의 강의실에서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 강의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종종 어떤 종교를 믿으면서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자신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