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자> 2021년 3월 11일 (목) 오후 1:45~5:45 <참가자> 이상훈, 이규석, 우명길, 원영환 <답사기 작성 날자> 2021년 3월 21일 평창강 제1구간을 걸은 것이 작년 11월이었는데, 해가 바뀌어 2021년 3월 11일에 제2구간을 걷게 되었다. 무려 4달이나 답사를 중단한 것은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서 모임을 자제하라는 방역당국의 당부 때문이었다고 핑계를 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평창의 겨울은 몹시 추워서 아무래도 걷기가 꺼려졌다는 것이 정확한 이유였다. 4달의 동면을 끝내고 평창강 따라 걷기를 다시 시작하였다. 이 해가 가기 전에 평창강 답사를 끝내려면 이제부터는 한 달에 두 번은 걸어야 한다. 석주(원영환)는 전날 봉평 우리집에 와서 잤고, 시인마뇽(우명길)은 당일에 군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장평터미날에 12시 10분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답사 전날 나는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평창군 방림면에 사는 이규석(호가 ‘은곡-隱谷’이므로 이하 그렇게 호칭함)이라는 분이 제2구간을 함께 걷겠다고 자원한 것이다. 그분은 며칠 전에 우연히 만나 점심을 같이 먹은 적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금당길을 따라 조금 더 걷자 시멘트 포장길이 끝나면서 흙길이 나타난다. 흙길이 시작되는 지점의 왼쪽에는 조림한 것으로 보이는 자작나무 숲이 보인다. 잎은 모두 떨어졌지만, 자작나무는 나무껍질이 하얗고 갈라져서 종이처럼 벗겨지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자작나무는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해서 자작나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흙길은 포장된 도로에 견주어 딱딱하지 않고 탄력이 있어서 걷기에 편하다. 길 양쪽으로는 이미 추수가 끝난 밭이 텅 비어있어 허허롭기만 하다. 흙길은 곧게 1km쯤 계속되었다. 흙길이 끝나자 오른쪽에 금당교 다리가 나타난다. 금당교 건너편에는 등매초교 폐교가 있다. 금당교 건너편 왼쪽에 보이는 다리는 등매교인데 그 아래로 면온천이 흘러 평창강에 합류한다. 그러니까 면온천은 평창강의 제1 지류가 된다. 금당계곡에서는 여름에 급류타기(래프팅)를 하는데, 나는 4~5년 전에 면온천 합류 지점에서 출발하는 급류타기를 난생처음으로 해본 경험이 있다. 약간 오르막인 금당길을 계속 걸어가니 거문ㆍ금당산 등산안내도가 나온다. 금당산 등산로는 모두 3개가 그려져 있는데, 2개는 금당산 서쪽에 있는 금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나는 그동안 삼형제라는 이름이 세 사람의 형제를 나타내는 줄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 2020년 5월 16일 나는 서울에서 내려온 양승국 변호사님 일행을 안내하여 이곳에 다녀간 적이 있다. 나중에 양변호사님이 쓴 답사기를 읽어보니 장군 이름이 ‘삼형제(森炯濟)’이었다. 아이고, 지금까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은 항상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저지른 실수는 당연하다고 믿던 지식이 잘못될 수가 있음을 증명해주는 매우 적절한 예라고 생각된다. 비석이 서 있는 시점에서 속사천 쪽으로 100m쯤 떨어진 곳에 기와지붕을 한 단정한 성황당이 보인다. 옆에 세워진 안내판의 글을 읽어보니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본 성황당의 지나온 유래는 약 백수십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마을에 수호신으로 성황제는 정월과 칠월로 일년에 두 번씩 부락 주민들의 생기(生氣)에 맞추어 유사를 정하여 성황제를 올리며 마을에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사람들의 상호간의 화합을 다졌고 그동안 풍수해로 수차례 보수를 하였으나 여의치 않이하여 새마을사업 당시 함석지붕으로 개량하였고 2002년 마을동회에서 성황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평창강 따라 걷기 – 제1구간] <답사 날자> 2020년 11월 11일 (수), 오전 10:10~ 오후 4:00 <참가자> 이상훈, 우명길, 원영환 <답사기 작성 날자> 2020년 12월 5일 2015년 8월에 25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면온리에 작은 집을 짓고 귀촌한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꿈도 많고 가슴이 뜨거웠던 청년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대머리 양쪽에 하얀 서리가 내린 칠십 노인이 되었다. 요즘 사람들은 옛날 사람에 견줘 힘든 일을 안 하고 잘 먹고, 또 건강 관리도 잘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주민증 나이로는 70이라고 해도 남이 나더러 노인이라고 부르면 때때로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나 착각하기도 한다. 내 나이를 말하면서 고희(古稀: 人生七十古來稀를 줄인 말)라는 단어를 사용하기가 꺼려진다. 인구 통계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2018년 기준으로 80세라고 하니, 남만큼만 산다고 해도 아직은 10년이라는 세월이 남았다. 내가 산을 좋아해서 그런지, 내 벗 가운데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사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