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선 후기 최고의 천재 화가라 불리는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風俗圖帖)>은 당시 백성들의 일상과 삶의 애환을 가장 생생하고 유머러스하게 담아낸 보물 같은 작품집입니다.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모두 25점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이 풍속도첩이 한국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까닭은 그림을 잘 그려서만이 아니고, 힘든 노동의 현장이나 일상의 평범한 순간도 김홍도의 붓끝에서는 유쾌하고 따뜻하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화첩 가운데 ‘논갈이’는 풍속도첩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작품으로,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역동적인 노동의 현장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그림은 새봄을 맞아 소가 땅을 갈고 농사를 준비하는 장면이지만, 그런 장면을 넘어, 조선 시대 농촌의 활기찬 움직임을 잘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이 그림의 가장 큰 특징은 화면을 가로지르는 사선 구도입니다. 두 마리의 소와 농부들이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비스듬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평면적인 그림에 깊이감과 전진하는 힘을 부여합니다. 또 앞쪽에는 두 마리의 소가 끄는 '겨리쟁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옥션은 오는 26일 목요일 저녁 4시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제190회 미술품 경매>를 연다. 이번 경매에는 근현대미술, 고미술, 럭셔리 섹션을 아우르는 작품 모두 143랏(Lot)이 출품되며, 낮은 추정가 총액은 약 84억 원이다. 특히 이번 경매의 고미술마당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이방운(1761–?)의 <장양우렵도>다. 광활한 산세와 수목이 어우러진 평원을 배경으로 사슴ㆍ멧돼지ㆍ호랑이, 그리고 표범 등을 추격하며 활시위를 당기는 사냥꾼들의 움직임이 긴박하게 묘사되어 있다. 화폭 한편에는 의장(儀仗)을 갖춘 대규모 행렬과 의식 장면이 상세히 기록되어, 단순한 사냥 장면이 아닌 꽤 성대하게 거행되었던 궁중 행사임을 짐작게 한다. 이를 뒷받침해 주듯 왼쪽 윗부분의 ’장양우렵도(長楊羽獵圖)’라고 적힌 화제를 통해 중국 한나라 황제의 별궁이었던 장양궁(長楊宮) 일대에서 거행된 대규모 군사 수렵행사를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한나라의 학자 양웅(揚雄)이 황제를 따라 장양궁에서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이를 찬양한 우렵부(羽獵賦)를 지어 바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실재했던 행사의 권위와 생동감을 이방운의 필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안산은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남쪽도시로 현재 인구 70여만명이다. 안산(安山)이란 평야가 넓어 사람이 편안하게 살수 있는 좋은 땅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옛부터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 그런 안산에는 조선말 실학의 선구자로 성호 이익선생(《성호사설》 지음)이 있었고, 조선 후기 정조시절 활약했던 풍속화가로 이름높은 단원 김홍도가 있었으며, 일제강점기 어려운 시절 농촌계몽가로 짧은 생을 살고간 독립운동가 최용신 등이 있다. 심훈이 지은 상록수란 소설은 최용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안산시는 시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단원구와 상록구로 나뉘게 되었는데, 단원구는 김홍도를 상록구는 독립운동가 최용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산은 1970년대 한국이 공업화를 하면서 반월공단이 들어서면서 공업지대가 형성되었고, 그 이후 인구가 급속팽창하는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들이 모여들어 한국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가 되었다. 안산에는 시흥시 오이도에서 대부도까지 시화방조제가 설치되어 매우 넓은 인공 호수가 생겨났는데,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자 주변에서 배출한 생활폐수가 모여들어 한때 호수의 물이 썪어 환경오염이 심각하여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임금이 말하기를, "승지가 술을 즐기므로 원례(院隷, 조선시대, 승정원에 딸려 있던 하인)도 취하여 액속(掖屬, 궁중의 궂은일을 맡아하던 사람)에게 모욕을 주기까지 하는데, 나라의 기강과 관계가 되므로 엄히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이에 더욱 행실이 나빠 뉘우침이 없는 사람은 볼기를 치고고 유배(流配)하였다. (가운데 줄임) 이후 형조(刑曹)로 하여금 술을 많이 빚은 자에게 볼기를 치고, 또 주등(酒燈, 술집임을 알리려고 문간에 다는 등) 키는 것을 금하였으나, 끝내 금할 수가 없었다.“ 위는 《영조실록》 114권, 영조 46년(1770년) 1월 26일 자 기록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금주령을 내리고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왕명을 내리곤 하였지만 희생당하는 건 양반이 아닌 일반 백성이었습니다.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 하는 백성은 술을 빚어 팔았다고 잡혀가고, 몰래 술 마셨다고 잡혀가지만 금주령이 내려진 대낮에도 양반들은 거리낌 없이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특히 이름을 날렸던 조선의 많은 유명 화가가 술에 취해야만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외눈의 자화상을 그린 호생관 최북은 눈밭에서 술에 취해 얼어 죽었다고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재홍)은 서화실 8월 전시 교체에서 조선시대 그림과 글씨 30건 50점을 새로 전시한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두 화가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이후)와 이인문(李寅文, 1745~1824 이후)의 대표작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지난 6월 세상을 뜬 고 손창근 선생 기증 조선시대 회화 여섯 점이 함께 전시되어 선생의 숭고한 문화재 사랑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수 있다. 김홍도가 34살 때 그린 <서원아집도>, 문인 예술가들이 꿈꾸었던 모임 그림 김홍도가 1784년에 그린 <서원아집도>(도1)는 북송 신종(神宗, 재위 1067~1085)의 부마 왕선(王詵, 1036-1104)이 소식(蘇軾, 1036~1101)을 비롯한 문인묵객 15명을 초청한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서원아집’은 빼어난 문인들이 한자리에 어울린 기념비적인 모임으로 후대에도 오랫동안 글과 그림의 주제로 사랑받았다. 김홍도는 북송의 화가 미불(米芾, 1051-1107)이 쓴 「서원아집도기(西園雅集圖記)」의 내용을 충실하게 재현하였다. 조화로운 구도, 개성이 뚜렷한 인물, 변화가 넘치는 필선 등 김홍도의 뛰어난 기량이
[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한 명의 선비가 공손하게 서 있습니다. 형형한 눈빛과 당당한 표정이 시선을 끕니다. 머리에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평소 집안에서 즐겨 쓴 동파관을 썼습니다. 조선의 선비를 머릿속에 그릴 때마다 이 초상화를 떠올리게 됩니다. 문학과 예술을 즐긴 선비, 서직수 무엇보다 눈이 인상적입니다. 눈의 윤곽에 고동색 선을 덧그려 그윽한 깊이감을 주었으며 눈동자 주위에는 주황색을 넣어 눈빛이 생생합니다. 입고 있는 크림색 도포가 풍성합니다. 소매의 통은 아주 넓고 길이는 손을 완전히 덮을 정도로 깁니다. 지체 높은 양반들의 도포일수록 이처럼 넉넉한 품세를 갖췄습니다. 동정 없이 폭이 넓은 목의 깃, 얌전하게 묶은 가슴의 세조대, 부드러우면서도 형체감을 잘 드러내는 옷의 윤곽선과 주름들, 발목까지 내려오는 전체 옷 길이, 이 모든 것들이 선비의 점잖은 풍모와 잘 어울립니다. 도포 자락 아래로 하얀 버선발을 드러낸 채 고운 돗자리 위에 올라서 있습니다. 눈길이 비켜가기 쉬운 발, 그 하얀 색채가 눈부십니다. 조선의 초상화 가운데 이처럼 신발을 벗고 있는 예는 드뭅니다. 인물이 내뿜는 기백이 화면의 주조를 형성하는 가운데 동파관과 세조대가 이루는 검정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기와이기, 주막, 새참, 무동, 씨름, 쟁기질, 서당, 대장간, 점보기, 윷놀이, 그림 감상, 타작, 편자 박기, 활쏘기, 담배 썰기, 자리 짜기, 신행, 행상, 나룻배, 우물가, 길쌈, 고기잡이, 노상풍정(路上風情), 장터길, 빨래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단원 김홍도(1745~ ?)가 그린 《단원풍속도첩》 속 스물다섯 점의 그림들입니다. 이 그림들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이미지 가운데서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으로, 서민들의 노동, 놀이, 남녀 사이에 오고 가는 은근한 감정 등 삶의 여러 모습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조금 더 상세하게 보자면, 그림의 소재는 농업, 상업, 어업 등 일상에서의 노동부터 노동 뒤의 휴식, 서민들의 놀이와 선비들의 고상한 취미생활까지, 그 주인공은 젖먹이 아기부터 노인까지, 서민부터 양반까지입니다. 그려진 소재와 대상이 다채롭고 생생하여 조선시대의 한 때, 어떤 곳에 다녀온 기분인데, 이렇게 다양한 삶의 모습을 하나의 화첩에 모아 그린 예는 풍속화가 유행했던 조선 후기에서도 많지 않습니다. 스케치풍의 그림 : 최소화된 묘사와 채색 가로, 세로 30여 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