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문익점은 중국에서 목면(木綿)을 몰래 가져와 사람들에게 직조(織造)를 가르쳤으니, 백성들에게 이롭게 한 사실이 이와 같았습니다. 공정대왕(恭靖大王, 정종)께서 그가 백성들에게 옷을 입힌 큰 공을 생각하여 강성군(江城君)을 추봉(追封)하였으며 태종조(太宗朝)에서 서원(書院)을 세우라 명하였고, 세조조(世祖朝)에서는 부민후(富民候)를 추봉하였으며, 충선(忠宣)이라 시호를 내렸습니다.“ 이는 《정조실록》 20권, 정조 9년(1785년) 9월 5일 문익점에 관한 기록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붓두껍에 목화씨를 훔쳐 왔다고 배웠습니다. 물론 위 기록에서 ‘문익점이 목면을 몰래 가져왔다’라고 돼 있는데 다른 기록을 보면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태조실록》 7년(1398년) 6월 13일 기록에는 “문익점이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원(元)나라 조정에 갔다가, 장차 돌아오려고 할 때에 길가의 목면(木緜) 나무를 보고 그 씨 10여 개를 따서 주머니에 넣어 가져왔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어지는 《태조실록》 기록에는 중국 승려가 조선에서 목면을 보고는 기뻐 울기까지 했다는 내용이 있어 당시 목화가 금수 품목이 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92) 김덕형은 늘 화원으로 날쌔게 달려간다. 꽃만 바라보고는 하루 종일 꿈쩍도 하지 않는다. 꽃 아래 자리를 마련해 그대로 누워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손님이 와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김덕형이 미쳤거나, 멍청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손가락질하고 비웃는다. - 《백화보》 서문 중에서 꽃은 참 아름답다. 보기에도 좋고, 쓰기에도 좋다. 식물이 생명의 절정에서 피워 올린 꽃은 때로는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고, 때로는 따뜻한 옷감이 되어준다. 옛사람들도 꽃을 예사로 보아 넘기지 않았다. 꽃을 심고, 관찰하고, 애지중지했다. 설흔이 쓴 이 책, 《따뜻하고 신비로운 역사 속 꽃 이야기》에는 꽃에 심취한 이들이 여럿 나온다. 꽃을 너무 좋아해 ‘꽃에 미쳤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김덕형과 목화씨를 가져와 목화를 대량으로 재배한 문익점이 대표적이다. 김덕형은 실학자이자 《북학의》로 유명한 박제가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다. 김덕형은 꽃 그림을 잘 그리기로 소문난 화가였다. 당대의 이름난 화가였던 표암 강세황도 인정한 실력이었으니 과연 출중했던 듯싶다.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꽃만 보며 꽃 그림을 그렸다. 굉장히 세밀하게 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