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2007년 일본에서 펴낸 《伊藤博文文書(이등박문문서)》에는 ‘대원군 음모에 관한 시말’이라는 제목으로 대원군과 김옥균이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던 내막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제출한 문서인데 김옥균의 뜻과 행동 나아가 당시의 정세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정보로 보인다. 그 개요는 다음과 같다.(참고: 김흥수 홍익대 교수의 2020 논고 <김옥균의 최후>) 1887년경 박영효는 일본인 오가와 미노루(小川實, 1887년 이래 조선에 제분-製粉 교사로 고용되었는데 주로 무기 구매를 중개함) 편에 대원군에게 서한을 보내 국사를 도모할 것을 타진한다. 이어 1891년 2월 신화폐 주조를 일본 정부와 협의하기 도쿄에 온 안경수에게 대원군 앞 편지 전달을 부탁하였다. 편지에서 대원군에게 세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대원군이 임금에 상주하여 온건한 방법으로 국정을 개량. 둘째,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민씨 세력을 제거하여 국정을 개혁. 셋째, 둘 다 불가능하면 수단을 다해 일본으로 건너오실 것. 귀국한 안경수는 이 편지를 오가와에게 주고 오가와가 대원군에게 전한다. 이에 대원군은 “온 조정이 놀라서 들썩거릴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일찍이 김옥균이 우의정 박규수를 방문했을 때, 박규수는 그의 벽장에서 지구의 하나를 꺼내어 김옥균에게 보였다. 박규수가 지구의를 돌리면서 김옥균을 돌아보며 말했다. ‘오늘날 가운데 나라(중국)가 어디에 있는가? 이리 돌리면 조선이 중국이 되니, 어떤 나라도 가운데로 오면 중국이 된다. 자 오늘날 이디에 따로 중국이 있는가.’ 김옥균은 당시 개화를 주장하고 신서적도 얻어 보았지만,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온 사상, 곧 대지의 가운데에 있는 나라가 중국이며, 동서남북에 있는 나라들은 사의(四夷, 네 방면의 오랑캐)이며, 사의(四夷)는 중국을 숭상한다고 하는 사상에 얽매여서, 국가 독립을 부르짖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박규수의 말에 크게 깨달은 바 있어 무릎을 치며 앉아 있었다. 후일 그는 결국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것이다.”(신채호, 《지동설의 효력》에서) 서울의 북촌에서도 재동(齋洞)에 박규수(연암 박지원의 손자)의 집이 있었다. 오늘날 헌법재판소의 뜰 안에 600년 된 백송이 한 그루 서 있는데 그곳이 박규수의 집터라고 한다. 그의 사랑방에는 인근의 명민한 양반자제들이 드나들며 박규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곳이 개화의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