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오는 8월 11일부터 8월 17일까지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29라길 26. ‘알지비큐브’에서는 <숨겨진 이야기들> 전시가 열린다. 삶은 복잡하고, 단면만으로는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맥락’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이해는 절대로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무언가를 제대로 헤아리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때로는, 과연 그럴 만한 값어치가 있을까 싶기도 한다. 더욱이, 이러한 교류를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이어가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이야기가 너무 개인적이거나 평범해서, 혹은 부끄럽거나 이상하게 보일까 봐, 더 나아가서는 혹여 사회적으로 비난 받지는 않을까 두려워 남에게 말하기 꺼리거나 숨겼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런 비밀들은 종종 약점이자 두려움으로 남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이 훌륭한 소통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조금 더 관대해지고, 자유로워지며, 확장되곤 하니까. 단체전 ‘숨겨진 이야기들’에서는 삶에서 표면적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것들에 주목하는 다섯 명의 작가가 각자의 개인적ㆍ사회적 이야기를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말꽃’은 ‘문학’을 뜻하는 토박이말이다. 토박이말이지만 예로부터 써 오던 것이 아니라 요즘 새로 나타난 말이다. ‘문학(文學)’은 본디 ‘글의 학문’이라는 뜻으로 공자님이 처음 썼다고 하는 중국말인데, 우리는 지금 그러한 뜻으로 ‘문학’이란 낱말을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쓰는 ‘문학’은 놀이(희곡), 노래(시), 이야기(소설) 같은 것을 싸잡아 서양 사람들이 ‘리터러처(literature)’라고 하는 그것이다. 이것을 일본 사람들이 ‘문학’이라 뒤쳐 쓰니까 우리가 그대로 가져와서 쓰는 것이다. 그러나 놀이, 노래, 이야기는 이른바 ‘말의 예술’이므로, 중국말이었든 일본말이었든 글의 학문을 뜻하는 ‘문학’이라는 말로는 그것들을 마땅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게다가 말의 예술인 놀이, 노래, 이야기는 입말, 글말, 전자말을 두루 싸잡아야 하는데, 글말만을 뜻하는 ‘문학’이라 부르면 입말과 전자말로 즐기는 예술은 싸잡을 수가 없다. 그렇게 중국 한자말 ‘문학’과 우리가 싸잡아 담으려는 뜻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데, 언제까지 우리가 ‘문학’이라는 남의 말을 빌려다 써야 하는가? 이런 물음을 가슴에 품고 마땅한 낱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