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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2권" 음모의 장 9회

[한국문화신문 = 유광남 작가]  임금의 면전이라 말은 그렇게 했어도 좌의정 육두성은 명나라 장수와의 만남을 회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명나라 장수들의 안하무인(眼下無人)격인 태도도 문제였지만 근자에 들어서는 조선의 대신들을 상대로 무례한 폭력을 사용하는 사건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였던 것이다. 전란 당시 군량을 담당했던 지중추부사 김응남이 명군에게 군량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장형에 처해졌고, 의주목사 황진이나 호조참판 민여경, 경상우수사 박진 등도 치욕을 당했다. 명나라 장수들은 조선을 구하기 위해 파견 되었다는 명분으로 횡포를 일삼았지만 조선 조정에서는 감히 반박의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신이 비록 언어가 유창하지는 않지만 약간의 소통은 가능하오니 제독을 접견 하도록 하겠나이다.”

서애 유성룡이 명나라 장수 마귀를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좁혀졌다. 그러나 심기가 남다른 선조는 그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영상과 이순신의 관계는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좌상이 역관을 대동하여 명나라 장수 마귀를 만나도록 하시오.”

좌의정 육두성은 원하지 않는 임무를 맡게 되었으나 불평을 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퇴청 즉시 행장을 수습하여 도원수부로 떠나겠나이다.”

명나라 장수 마귀는 순천에 머물고 있었다.

“도원수 권율장군을 통하여 수군 폐지에 대한 통제사 이순신의 판단을 청취할 예정이요. 도원수부로 교지를 내릴 작정이니 좌상은 도승지를 만나고 떠나도록 하시오.”

선조의 지시를 받으며 좌의정 육두성은 깊숙이 허리를 굽혔다.

“상감마마의 어명을 받들겠나이다.”

 

   
 
이제 육두성도 물러나고 어전에는 선조와 서애 유성룡만이 남아있었다. 질식할 것만 같은 침묵이 잠시 동안 흘렀다.

“영상, 난 두렵소.”

홀로 용상에 파묻혀 있는 선조의 음성은 건조하게 갈라져 나왔다.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고 눈은 십리나 들어간 듯이 음침해 보였다. 마음고생이 심하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역시 원균의 참패는 선조에게 있어서 충격이었다.

“전하는 만백성의 어버이시며 조선의 국왕이십니다. 무엇을, 누구를 두려워하십니까?”

왕의 눈빛이 처량하게 빛났다.

“일본과 명나라 사이의 강화가 깨지고, 이제 다시 일본의 재침이 시작되고 있지 않소.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야심이 태양처럼 활활 높이 타오르고 있는 자가 아니요? 무슨 수로 그 욕망덩어리를 가로 막을 수가 있겠소? 누가 그런 위험을 해소시킬 수가 있겠소?”

“전하, 고정 하소서.”

“이순신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거요? 그가 수군을 맡아서 해상을 완전 장악한다 하여도 과인은 또 불안할 것이요. 민심들은 이순신에게 쏠리고 그를 영웅으로 추대할 것이고, 반면에 과인은 원균을 지지하고 이순신을 감금하여 백의종군 시켰다는 졸렬함으로 원성만을 사게 되어, 끝내는 궁지로 내몰려 몰락할 것이요. 아니라면 이순신은 육지로 물러나게 되어 바다를 온통 일본에게 상납하고 우린 일본의 대병력이 고스란히 조선으로 이동해 오는 광경을 지켜만 봐야 할 것이요. 조선의 멸망을 그렇게!”

선조의 용안이 촉촉하게 적셔지는 느낌이었다. 그 어떤 방책도 선조의 답답함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였다. 유성룡은 내심 혀를 찼다.

“상감마마, 그래서 명나라를 섬겨온 것이 아니 옵니까. 그들이 조선의 안위를 지켜줄 것입니다.”

“오죽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