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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2권" 음모의 장 13회

[한국문화신문 유광남 작가]  이순신은 판옥선을 개조하고 있는 선소(船所)를 찾아가서 밤을 지새우며 몰두하고 있는 정도령과 군관 나대용을 위로하였다. 정도령의 지휘아래 나대용은 판옥선의 노(櫓)와 천자포(天字砲), 지자포(地字砲), 현자포(玄字砲) 등 화력이 강력한 총통(銃筒)에 대하여 대대적인 보강 작업에 돌입 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의 화포는 최강의 무기입니다. 근거리와 장거리에서 적에게 막대한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중률이 낮고 무게가 많이 나가서 판옥선에 부담을 주는 대형화포 천자는 철수 시키고 지자포와 현자포를 집중적으로 배치합니다. 그리고 육상에서 주로 사용하던 신기전(神機箭)을 도입하고자 합니다.”

정도령의 설명에 이순신이 물었다.

“신기전은 총통에 비해서 거리가 문제되지 않겠소?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함포 사격으로 적들을 견제해 왔는데요.”

“그것이 조선 수군의 전략이었고 그동안의 승리 요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미 조선 수군의 전투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고, 결과적으로 칠천량에서 대패를 당하고만 것입니다.”

정도령의 지적에 대해서 이순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란히 동반했던 장수 원균에게 시선을 돌렸다. 원균이야말로 직접 전투에 참여 했던 장본인이 아니었던가.

“일본의 공격대형이 사방으로 에워싸고 조이며, 동시에 공격해 들어오니 화포의 사거리를 유지하기 어렵게 혼란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배를 접근하여 충돌을 유발시키고 도선을 감행하여 백병전(白兵戰)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임진년과는 달리 배의 속도가 빠른 중선과 소선으로 함대를 편성하고 있었습니다.”

원균의 증언이었다.

 

   
 
“사실 임진년의 일본 선박들은 선상 위에 야가따(屋形= 집을 세운 모양의 구조물)의 누각(樓閣)을 올렸으니 그 무게로 인해서 배가 느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 뿐이 아니라 누각과 뱃머리에는 대형 전투 병기를 장착하고, 측면에는 제법 높은 방패 벽을 합판으로 줄 지어 세워 두었습니다. 물론 이 합판들은 적의 공격을 막는 방어용으로도 사용 했지만 상대와의 근접전이 발생할 시에는 바깥쪽으로 넘어가도록 고안되어 적선으로 돌격할 때 다리 역할을 주로 합니다. 하여간 당시 안택선(安宅船아타케부네)에는 배의 속도에 부담이 되는 장착물이 적지 않았습니다만 이번에는 개선이 된 것으로 보여 집니다.”

나대용이 일본 측의 선박에 대해서 나름대로 해박한 지식을 열거하였다. 정도령이 자신의 견해를 더했다.

“이번 재침략에서는 그러한 단점을 일본 수군이 완전 보완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멍청하지 않습니다. 원균장군를 상대로 한 칠천량에서 이미 입증하지 않았습니까.”

원균은 새삼 당시의 패배가 기억 되었던지 가볍게 몸서리를 쳤다.

“그때와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마치 미꾸라지처럼 빠르게 우리의 화포 사정거리를 넘나들었어요.”

정도령이 이순신과 원균 등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서 우리의 판옥선도 주 무기를 소형 화포와 신기전으로 대치한 것입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일본의 선박 대다수는 조선을 공격하기 위해서 급조된 것으로, 본래 쇠붙이를 사용하지 않고 나무와 나무를 끼워 맞춰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그들은 대못을 사용하여 서둘러 제조한 것이지요. 그러니 배와 배가 충돌하는 당파(撞破) 전략 시에는 일본 선박들이 조선 배에 견디지 못했던 것입니다. 일본의 선박 기술은 조선에 비해 열세라고 할 수 있는데다가 부실하게 제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