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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남인수 “무너진 사랑 탑”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48] “어느 곳 하나 흠잡기 어려운 수작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중학생시절 어느 여름날이었다. 하루 종일 불화살을 쏘아대던 태양이 예배당 종탑에 걸리고 종탑 그림자가 슬그머니 우리 집 담장을 넘는 걸 보며 학교에서 돌아왔다. 

물맛 좋기로 소문난 우리 집 ‘뽐뿌’는 더운 날이면 해소병을 앓는다. 그날도 얼마나 기침을 해 댔는지 목구멍에서 쉰 소리가 났다. 목물로 몸에 달라붙은 소금기를 씻어낸 뒤 평상 위에 앉으니 어머니께서 쟁반에 구슬을 가득 담아 가지고 오셨다. 그걸 다 꿰면 푸성귀 몇 단 살 돈이 들어온다. 

품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삯이지만 그거라도 벌어 살림에 보태려고, 일감을 실은 삼륜차로 부녀자들은 삽시간에 몰려들었다. 달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조명 꽃이 곱게 피어나는 산 아래 별천지를 내려다보며 구슬을 꿰었다. 구슬 한 알이 꿰어 질 때 마다 라디오에선 음표 하나씩 흘러 나왔다. 구슬이 꿰어져 목걸이가 되고 음표가 모여 노래가 되었다. 그날은 유난히 ‘무너진 사랑 탑’이 가슴에 와 박혔다. 뻣뻣해진 목을 풀려고 고개를 젖히니 남인수의 낭랑한 목소리가 밤하늘로 퍼지고 있었다. 

   
▲ 남인수의 <무너진 사랑탑> 음반 표지
반짝이는 별빛 아래
소곤소곤 소곤대든 그날 밤
천년을 두고 변치말자고
댕기 풀어 맹서한 님아
사나이 목숨 걸고 바친 순정
모질게도 밟아놓고 그대는
지금 어데 단꿈을 꾸고 있나
야속한 님아 무너진 사랑 탑아
달이 담긴 은물결이
살랑살랑 살랑대든 그날 밤
손가락 걸며 이별 말자고
울며불며 맹서한 님아
사나이 벌판 같은 가슴에다
모닥불을 질러놓고 그대는
지금 어데 행복에 잠겨 있나
야멸찬 님아 깨여진 거문고야
봄바람에 실버들이
하늘하늘 하늘대든 그날 밤
세상 끝까지 같이 가자고
눈을 감고 맹서한 님아
사나이 불을 뿜는 그 순정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그대는
지금 어데 사랑에 취해있나
못 잊을 님아 꺾어진 장미화야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에 가면 무거운 지붕을 떠받들고 있는 나녀상(裸女像)을 볼 수 있다. 건립 당시, 공사를 맡은 도편수가 주막 주모의 거짓사랑에 속아 돈과 마음을 모두 주었으나 결국 주모는 다른 남정네와 줄행랑을 쳤고, 그 도편수는 징벌의 염원을 담아 나녀상을 깎았다한다. ‘무너진 사랑 탑’의 가사를 음미하면 자꾸만 그 주모가 떠오른다. 

이 노래는 우리 가요사상 명곡 가운데 명곡으로 손꼽힐 만한 곡이다. 가사도 가사려니와 작곡이나 편곡 어느 곳 하나 흠잡기 어려운 수작이다. 노래를 부른 남인수 역시 ‘가요 황제’라는 존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우리 가요계가 얻은 최고의 보석이다. 

폭 넓은 음역대와 정확한 발음, 흔들림 없는 음정, 거기에다 애조까지 더해져 가수로서 뺄 건 다 빼고 갖출 건 모두 갖춘 가성(歌聖)이다. 

남인수는 1936년 열 여덟 살 때 ‘눈물의 해협’(2년 뒤 ‘애수의 소야곡’으로 고쳐 불러 히트함) 으로 입문하였다. 본명이 최창수 이지만 어머니가 개가를 하는 바람에 강문수라는 이름을 얻었고, 데뷔 당시에도 강문수라는 이름을 썼으나 다음해부터 남인수로 활동하였다. 무너진 사랑 탑’은 1961년에 나왔으며, 이듬해 우리는 황제를 폐결핵으로 잃는 슬픔을 맛 봐야 했다. 향년 45살이었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