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전수희 기자] 우리나라 고전 가운데 흥부놀부전 만큼 사랑을 받아온 것도 없다. 특히 흥부 박타는 대목은 판소리로도 유명한데 흥부네 박타기에서 나온 것인지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뜻하지 않게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랄 때 “대박 나세요” 라는 말을 흔히 쓰고 있다. 그런가 하면 바가지를 긁는다던가 바가지 씌운다는 말도 흔하게 쓰듯이 ‘박’과는 친근한인연을 갖고 있다.
박은 <삼국유사> 원효조에 바가지를 두드려 악기로 썼다는 기록 말고도 고려시대부터 아악의 8음(音)에 속하는 생황(笙簧)의 악기 재료로 썼을뿐더러 조선세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 상원조에 남녀 어린아이들이 겨울부터 파랑, 빨강, 노랑으로 물들인 호리병박을 차고 다니다가 정월 대보름 전날밤에 남몰래 길가에 버리면 액(厄)을 물리칠 수 있다하여 차고 다녔다는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겨레와 함께했다.
그뿐만 아니라 초가지붕 위에 탐스럽게 영근 박 덩어리는 한 폭의 그림일뿐더러 잘 영근 박을 타서 바가지를 만들어 쌀 푸는데 쓰면 쌀바가지요, 장독에서 쓰면 장조랑바가지로 요긴하게 사용해 왔다. 특히 뒤웅박에는 습기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여름철에 밥을 담아두거나 달걀 따위를 담아두기도 했다. 또한 씨앗을 갈무리 한 경우에는 처마 밑이나 방문 밖에 매달아두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탐스런 박 속은 훌륭한 먹거리로 사랑받아 왔다.
▲ 박덜쿨로 만든 굴 속을 지나가며 다양한 박들을 보는 재미에 빠진다.
이러한 쓰임새가 많았던 박은 어느 사이 우리 곁에서 사라져 이제는 농촌에서도 흔히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충남 청양군 정산면 천장리에 가면 우리 겨레가 사랑하던 조롱박이며 동아는 물론이고 긴손잡이국자, 도깨비알, 볼링핀, 배불뚝이, 십손이흰색, 이색칼라스푼, 미니배레모, 앙팡, 파일롯 따위의 앙증맞고도 진귀한 여러 나라의 박을 볼 수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제5회 세계조롱박축제가 열리고 있는 칠갑산 아래 조용한 천장리 마을에는 다양한 박을 구경 할 수 있는 비닐하우스 동을 지어 놓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소원터널, 대박터널, 체험터널, 전시터널, 만지는 박터널, 쭉쭉대박터널 등을 지나면서 크고 작은 희귀한 박을 보노라면 더위도 어느새 잊고 동화의 나라에 들어 선듯 흥미롭다.
▲ 다양한 박 종류들 / 초가지붕박, 황조롱, 볼링핀, 십손이흰색, 오돌이(여주), 미니베레모(왼쪽부터 시계방향)
▲ 다양한 박들의 잔치 / 이색칼라스푼, 배불뚝이, 아레스, 긴손잡이국자, 미니홍, 도깨비알(왼쪽부터 시계방향)
▲ 꼭 뱀들이 주렁주렁 매달린듯 섬찟했던 박 "사두"
▲ 동화나라에 온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박등
▲ 온갖 박등이 전시된 모습
알프스마을운영위원회에서 정성껏 가꾼 박덩쿨 가지마다 탐스럽고 앙증맞은 박을 보는 재미는 한여름의 무더위쯤 잊어버릴 만큼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다. 특히 입장료 7000원을 내면 어린이들이 맘껏 놀 수 있는 수영장이 갖춰져 있으며 마을 입구 계곡의 평상도 맘껏 이용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문공예가들이 만든 다양한 박공예를 볼 수도 있고 조롱박에 그림그리기, 박전등 만들기 등의 체험은 물론이고 마을주민들이 운영하는 박탕수, 박튀김, 박잎전, 박칼국수, 박빙수, 박아이스크림 등도 맛볼 수 있다.
8월 1일부터 23일까지 열리는 세계조롱박축제는 올해로 5회를 맞이하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축제지만 청양고추로 유명한 청양지방의 또 다른 볼거리 축제로 크게 성장 해 갈 것으로 생각된다. 기자가 박축제장을 찾은 어제 낮 최고 온도는 35도를 오르내리는 찜통더위였지만 전세계 희귀한 조롱박 구경에 한동안 더위를 잊을 만큼 흥미로웠다.
*제5회 세계조롱박축제 (8월1일-8월23일)
*청양군 정산면 천장리 74번지, 문의:041-942-0797
▲ 박축제장 안에는 박덩쿨로 뒤덮힌 시원한 계곡도 있어 사람들이 더위를 잊기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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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장에는 소달구지 체험도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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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장에는 수영장도 있어 더위에 지친 아이들이 신나게 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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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종이를 박덩쿨에 매달아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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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제장에는 이런 박덩쿨로된 수십개의 굴이 있어 관람객들의 눈을 붙들어 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