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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하사와 병장 ‘목화밭’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50] ‘목화밭의 낭만’ 공감 불러

[한국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며칠 전, 구름이 성난 태양열을 양산처럼 가려주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에 오랜만에 산행에 나섰다. 비 오리 떼가 자맥질하는 시내를 건너서 조붓한 산길로 접어드니 벌써 풀잎이며 나뭇잎들의 엽록소가 검은빛을 띠기 시작했다. “저것들이나 내 인생이나 한풀 꺾인 건 마찬가지구나….” 

반백의 청승을 읊조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멀리 목화밭에서 비단 같은 꽃잎들이 솔바람에 파르르 떨고 있었다. 하도 오랜만인지라 한걸음에 달려가 보니 일찍 꽃을 떠나보낸 가지에는 제법 꽈리만큼 자란 열매가 달려있었다. 군것질거리가 귀하던 시절, 어른들 몰래 따먹는 몇 알 풋 목화는 낮잠보다도 맛있었다. 어린 시절 기억에 콧잔등 시큰둥해지며 풋 목화 한 알을 입으로 가져갔다. 

     
 
   
▲ '하사와 병장' 음반 표지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이라네
우리 처음 사랑한 곳도 목화밭이라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사랑을 약속 하던 곳
그 옛날 목화밭 목화밭 

우리 처음 헤어진 곳도 목화밭이라네
기약도 없이 헤어진 곳도 목화밭이라네
서로멀리 헤어져도 서로가 잊지 못한 곳
조그만 목화밭 목화밭
 

나 이제사 찾아온 곳도 목화밭이라네
그리워서 찾아온 곳도 목화밭이라네
그 소녀는 어디가고 나만 홀로 외로운
그 옛날 목화밭 목화밭
 

목화는 고려 때 문익점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목화씨 10알을 가져온 것이 그 시작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 고조선 때에도 이 땅에 목화가 존재했다고 한다. 물론 문익점의 목화와 고조선의 목화는 품종이 다른 것이지만 말이다. 명심보감 염의(廉義)편에도 신라사람 인관과 서조의 이야기 속에 솜에 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고조선 목화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그나저나 목화밭이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청춘남녀들의 밀회 장소로 사랑받았는지는 과문의 탓으로 알 수 없으나 노래 가사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걸 보면 그 나름대로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된다. 

한편 서양에서는 포도밭이 가장 각광받는 밀회장소였던 것 같다. grapevine(포도넝쿨)이 풍문이란 뜻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왜 그럴까? 그 이유를 곱씹으며 재미있는 추측을 해 보았다. 우선 포도밭은 포도넝쿨은 무성하지만 넝쿨 밑은 잡초도 없이 깨끗하여 모기도 별로 없다. 또한 서서보면 아래가 안 보이지만 넝쿨 아래에선 누가 다가오는지 다 보인다. 거기에다 목이 마르거나 출출할 때 손만 뻗으면 일거에 해결이 가능하니 이만한 밀애 장소가 또 어디 있겠는가? 

사족 같은 생각을 하다 보니 풋 목화 몇 알로 갈증과 허기를 달래며 밀어를 나누는 소곤거림과, 포도밭으로부터 연인들의 싱그러운 웃음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오는 듯하다. 

하사와 병장은 이경우(하사)와 이동근(병장)으로 이루어진 남성듀엣으로 두 사람은 군복무 시절에 만나 군예대 활동을 통해 음악적 교감을 나누었다 한다. 제대 후 통기타 살롱을 전전하며 명성을 얻은 뒤 1975년에 공식 데뷔하였다. 오늘 소개한 ‘목화밭’은 1976년에 발표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목화밭’ 후속작인 ‘해남 아가씨’의 대성공으로 전성기를 누리다 1983년에 해산하였다. 속초를 유난히 사랑한 이경우는 속초에서 ‘목화밭’이란 카페를 열기도 하였고 요즘은 블루스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