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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두 눈 잃었지만 빛나는 가수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52] 이용복 <그 얼굴에 햇살을>

[한국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는 작품의 영감이 떠오르지 않거나 정신적 위기가 찾아오면 일부러 눈을 가리고 생활을 했다 한다. 한 일주일쯤 그렇게 하다보면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살아나고 마음의 눈이 띄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는 것이다. ‘데미안’이나 ‘유리알 유희’같은 걸작들이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물들이다. 

필자도 그것을 흉내 내어 봤으나 일주일은커녕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고 안대를 벗어던지고 말았다. 헤르만 헤세는 네 살 때 이미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의지력을 지닌 아이”라는 평을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나와는 그릇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내가 함부로 흉내 낼 일이 아니었으나 그 잠깐 동안의 경험에서 그나마 건져진 것은 있다. 

헤세의 정신력에도 탄복했지만 평생을 앞을 못 보고 살아가는 시각장애인들의 의지력에 경탄과 함께 존경심이 인 것이다. 시력상실은 삶의 90%를 잃은 것이라 한다. 일반인들은 모르고 살지만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 그만큼 비중이 큰 것이다. 그 절대적 비중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시각장애인들은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성공이라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흔히 “세상은 공평하다”는 말을 자주하고 자주 듣는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이 있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시각장애인들은 겉눈을 잃은 대신 속눈을 얻었다. 시각을 내어주고 청각과 촉각, 육감을 얻었다.  

   
▲ 이용복 "그 얼굴에 햇살을" 음반 표지



헤세가 구하려던 바로 그것이다.

눈을 감으면 저 멀리서
다가오는 다정한 그림자
옛 얘기도 잊었다 하자
약속의 말씀도 잊었다하자
그러나 눈감으면 잊지 못할
그 사람은 저 멀리 저 멀리서
무지개 타고 오네

 

이 세상에는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성공을 거둔 장애인들이 많이 있다. 음악분야에는 특히 시각장애인들이 많은데 고도의 감각이 요구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리라. 오늘은 뛰어난 연주솜씨와 애처로운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을 회고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은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는 두 눈 다 정상이었으나 세 살 때 마루에서 떨어져 왼쪽 눈을 잃었다. 하지만 이용복은 한 쪽 시력만으로도 명랑하게 잘 자랐다. 그러나 눈(眼)과의 지독한 악연은 그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곱 살 때 동무의 썰매송곳에 남은 한 쪽마저 실명하게 된다. 

그로인해 그는 서울맹학교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기타를 비롯한 모든 악기의 연주법을 익혔다. 중학생이 되자 선배 윤용균과 함께 ‘켁터스’라는 교내 밴드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윤용균은 훗날 이용복의 뒤를 이어 가수가 되었다. 1970년 고교생 신분으로 데뷔한 이용복은 시각장애인은 물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며 성장해 나갔다. 

1972년과 1973년에는 2회 연속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며 기염을 토했다. 

“어제는 일요일이라 극장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날씨가 좋아 창경원에서 밤 벚꽃놀이를 했습니다.” 어제 뭐하고 지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렇게 능청을 떨던 이용복. 언제까지나 그의 얼굴에 햇살이 가득하기를….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