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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2권" 음모의 장 22회

[한국문화신문=유광남 작가]  하다부족의 두더지 은서가 고개를 저었다.

“우린, 둘이 왔소.”

“족장의 명령으로 날 죽이려고 온 것이 아니고?”

“그냥 둘이 하다부족을 지키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고. 우린 마을을 떠날 수가 없어서...온 것이다.”

일패공주가 재촉했다.

“더 이상 들어야 할 이유 같은 것은 없어요. 하다부족을 쓸어버리면 되는 거니까. 감히 우리에게 선전포고(宣戰布告)를 했다는 말이지?”

김충선은 만류했다.

“하다부족의 전체 뜻이 아니라면 공연한 희생이 늘어날 뿐이요. 하다부족은 부족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하지 않았소?”

“그 때문에 우리의 혼사가 늦어지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나요?”

김충선과의 사이에서 이견이 일어나자 일패공주는 불쑥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진심을 발설하고 말았다. 여인으로서는 먼저 말을 꺼내기가 부끄러운 고백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김충선은 그녀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난 이 자를 좀 더 심문 하는 게 좋다고 생각되오.”

일패공주는 화가 치솟았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럽시다.”

김충선은 일패의 반응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두더지 인간 은서에게 물었다.

“부족의 명령이 아니라 그대들 둘이서만 공모(共謀)한 암습이었단 말인가?”

은서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왜? 무슨 이유로? 단지 마을을 지켜야 할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

하다부족의 두더지 인간 은서가 비수에 찔린 곳의 고통을 호소하며 중얼거렸다.

“아프...다. 근데 아란의 가...슴은 나보다도 더 아프다. 아란은 오래 전에 마을을 떠난......오빠를 기다리고 있다. 마을이 혹여 없어지면......오빠가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생각한다.”

“집을 떠난 오빠를 기다리기 위해서 날 노렸단 말이냐?”

“그렇다. 조선 장수가 죽으면......하다부족은 항복하지 않을 테니까.”

김충선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누구도 전혀 예상 못한 결과였다. 온 몸을 던져, 죽음으로 지키고자 했던 이유치고는 너무 소박하였다. 김충선은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아란에게 확인하고 싶어졌다. 김충선은 일패공주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그녀를 내게 심문하도록 해주시오.”

일패공주는 화가 점점 더 치솟았다. 김충선을 이해하려고 많이도 노력 했으나 그는 쉽사리 자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강철 같은 심장을 가진 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그리도 자신을 억제하는 힘이 강한 것인가? 조국을 배신한 자들은 누구나 그런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이번의 경우도 그러했다. 김충선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사안이지 않는가. 그 계집이 오빠를 기다리든, 엄마를 가다리든,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든지 무슨 상관이랴! 그러다가 문득 뇌리를 스쳐가는 여인이 한 명 있었다. 혹시 그가 아직도 장예지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어디선가 장예지도 김충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연민(憐憫)으로 그가 방황하는 것은 아닐까.

“절대로 안돼요!”

일패공주의 뾰족한 외침이 새벽하늘을 갈랐다. 김충선은 예상외로 강경한 일패공주의 반응에 몹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평소의 그녀와는 달리 매우 예민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패륵왕자가 슬며시 분위기를 반전 시켰다.

“사부님이 원하시면 누나의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부는 건주여진의 장수잖아요. 흐흣.”

김충선은 그래도 일패공주를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한다고 믿었다.

“일패, 그렇게 하고 싶소.”

일패공주는 김충선의 요구에 입술을 자신의 입술을 가볍게 깨물면서 대답했다.

“좋아요. 그러나 이번 만 이예요. 나의 양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