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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사이먼 앤 가펑클 ‘April come she will’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76] 4월이면 그리운 리듬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그 때도 사월이었다. 강가의 조약돌 같이 옹골차게 생긴 그녀가 내게 처음 오던 날이. 세상은 어지러웠다. 철옹성 같던 유신체제가 무너진 자리에 더 단단한 성을 쌓으려는 세력들의 이름이 연일 대중매체를 장식하던 때였다.

나는 그 시절 서울의 한 음악 감상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유채 밭이 노란 물결로 출렁인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날, 근무를 마치고 휴게실에서 쉬고 있는데 솔깃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형, 제가 여자 소개해 드릴까요? 형 하고 잘 통할 것 같은 친구예요.”

나는 그때 그 후배의 소개로 한 여성과 평생 지울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다. 그녀를 처음 볼 때부터 왠지 낯설지가 않았고, 그녀 역시 어디서 나를 많이 본 듯하다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첫 만남부터 마음이 통한 우리는 머잖아 금병산으로 봄맞이 산행에 나섰다. 진달래꽃이 무더기로 피어난 산풍경은 동화책 삽화 같았다. 그녀는 세상에서 봄이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김유정이 이런 곳에서 태어났으니 ‘봄봄’ 같은 가작들이 나오지 않았겠느냐며 환히 웃었다.

그녀는 음악도 많이 알고 있었지만 문학에 대한 식견도 대단했다. 이상(李想)을 논하더니 소월을 논하고 카프카와 랭보 같은 외국 시인에 관해서도 훤히 꿰고 있었다. 나는 기죽기 싫어 이상보다는 소월을 좋아하고 보들레르보다는 아뽈리네르가 더 마음에 든다고 아는 체를 했다.

그 뒤 우리는 급속히 가까워졌고 나는 그녀와의 결혼을 꿈꾸게 되었다. 여름이 지나고 경춘선 철로 변에 코스모스가 피어나던 가을이었다. 청평호 호숫가에서 나는 마음 졸이며 그녀에게 나의 심경을 고백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바람이 머리칼을 흩으려 놓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참의 정적이 흐른 뒤에 나직한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그냥 이대로 지내면 안 돼?”

나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만날 때마다 더욱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그녀가 보낸 것이었다. 편지에는 자신도 나를 사랑하고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 1970년대 전설적인 포크 록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 음반 표지

월이 오면 그녀가 오겠지
봄비로 시냇물이 넘쳐흐를 때
5월이면 내 품에서
편히 쉬겠지
6월이면 벌써 마음이 변하여
밤거리를 배회하겠지
7월이면 훌쩍 떠나 갈 테지
한 마디 말도 없이
8월이면 잊혀 지겠지?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9월이면
나는 기억하겠지

 

이제는 가고 없는 사랑을 하지만 자기는 결혼할 수 없는 몸이라 하였다. 나를 사랑하기에 더더욱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 불치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동안 내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하느라 힘들었다는 말도 덧 붙였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자기를 찾지 말고 좋은 사람 만나 행복 하라며 끝을 맺었다. 편지지 곳곳에는 눈물자국 같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나는 놀라서 그녀의 집에 전화도 해보고 찾아가 보기도 하였으나 그녀는 어디론가 가버린 뒤였다. 사월이 올 때마다 나는 April come she will을 들으며 그녀를 기다렸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