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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부리나케’와 ‘불현듯이’

[우리말은 서럽다 31]

[우리문화신문=김수업 명예교수]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 덕분(?)으로 요즘 우리 겨레의 옛 삶이 뚜렷이 드러나면서 중국 사람뿐만 아니라 온 천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고조선의 중심이었던 요하 가장자리에서 일어난 문명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로 손꼽혀 온 중국 황하 문명보다 오백 년에서 천 년이나 앞선 사실이 환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을 일으켜서 먹거리를 익히고, 그릇을 굽고, 청동기를 만들어 사냥과 농사를 바꾸는 일을 황하 언저리의 중원 사람들에게 가르쳤다는 사실 또한 드러났다. 이는 동이족인 염제 신농씨가 중국으로 불을 가져가 농사를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한갓 신화가 아님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겨레가 불을 쓰며 살아온 세월이 오래라 그런지, 우리말에는 불에 말미암은 낱말이 여럿이다. ‘부리나케’와 ‘불현듯이’도 그런 낱말들 가운데 하나다. 

‘부리나케’는 [불+이+나+게]가 본디 모습이다. 그러니까 ‘불이 나게’가 하나의 낱말로 붙어 버린 것인데, 오늘날 맞춤법이 본디 모습을 밝혀서 적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기로 해서 ‘부리나케’가 되었다. ‘나게’가 ‘나케’로 바뀐 것은 느낌을 거세게 하려는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나게’가 ‘낳게’와 서로 헷갈려서 비롯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불이 나게’ 곧 ‘불이 나도록’이라는 말이 어째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풀이한 것처럼 “서둘러서 아주 급하게”라는 뜻을 드러내는가? 이 물음은 라이터는 물론이고 성냥도 생겨나기 훨씬 이전으로 올라가서 ‘불을 나게 하던 일’을 떠올려야 풀린다. 성냥이나 당황조차 생겨나기 이전에는 불을 나게 하려면 흔히 ‘부싯돌’을 썼고, 부싯돌보다 더욱 이전으로 올라가면 ‘마른 나무 막대기’를 썼다. 

 

   
▲ "부리나케" - 나무를 비비고, 부싯돌을 부딪혀서 불을 내는 것처럼 매우 빠르게 해야 한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부싯돌이든 나무 막대기든 그것들을 서로 부딪치고 비벼서 불이 나도록 하는 것인데, 서로 부딪쳐 비비는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불이 잘 난다. 이처럼 부싯돌이나 나무 막대기를 있는 힘을 다해 ‘빠르게’ 부딪치고 비벼야 불이 나는 데서 ‘부리나케’를 “서둘러서 아주 급하게”와 같이 풀이한 것이다. 그러나 ‘아주 빠르게’, ‘매우 빨리’, 또는 ‘몹시 서둘러’라고 풀이하면 더욱 쉽고 올바르다. 

‘불현듯이’는 글자 그대로 [불+현+듯이]로 나누어지는 어찌씨 낱말이다. 세 낱말의 어구가 붙어서 하나의 낱말이 된 것이다. 여기서 ‘현’은 움직씨 ‘혀다’의 줄기 ‘혀’에 매김꼴 씨끝 ‘ㄴ’이 붙은 것인데, ‘혀다’를 요즘은 쓰지 않아서 조금은 낯설지만, ‘혀다’가 ‘켜다’로 바뀌었다면 쉽게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그러니까 ‘불현듯이’는 요즘 말로 ‘불 켠 듯이’인 셈이다. 

그래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불을 켜서 불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갑자기 어떠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된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적잖이 잘못 짚은 풀이다. 불을 켜는 것은 등이나 초에 불을 붙이는 것이므로, ‘불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불을 켜면 어둠이 물러가고 ‘갑자기 환해지는 것’에 뜻의 눈이 있다. 캄캄한 곳에서 불을 켜면 갑자기 어둠이 사라지고 환히 밝아지는 것에 말미암아, ‘불현듯이’는 ‘갑자기’와 같은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