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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판소리 <안중근> 창작 초연되다

임진택 집필하고 소리 붙여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서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만났구나 만났구나 원수 놈을 만났구나

너를 한 번 만나고자 수 삼 년을 별렀도다

침략의 원흉 이등 너를 민족의 이름으로 응징한다.”

 

 

무대에서 안중근 역의 강응민 소리꾼이 우렁차게 포효한다. 1909년 10월 26일 아침 9시 30분 무렵, 중국의 하얼빈역에 세 발의 총성이 울린 것이다. 아시아 전체가 치를 떠는 공공의 적을 저격하는 순간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선봉장이자 대한제국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안중근 의사의 총탄에 쓰러져 곧 숨을 거두었다.

 

어제(6월 6일) 저녁 4시 서울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는 창작판소리 <안중근> 창작 초연 공연이 펼쳐졌다.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띄어앉기 죄석의 빈자리가 거의 안 보일 만큼 성황이었다. 호국의 달 6월을 맞이하여 창작판소리연구원의 예술총감독 임진택 명창이 안중근 의사의 옥중 자서전인 《안응칠 역사(安應七歷史)》를 바탕으로 사설을 집필하고 소리를 붙여 작창한 창작판소리 <안중근>이었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 미완성인 채 후대에 남긴 ‘동양평화론’ 속에 담긴 안중근 의사의 선구적인 발상은 오늘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라는 시대적 화두로 다시 이어지고 있다. 침략 가해자였던 일본은 지금도 여전히 사죄와 반성은커녕 역사를 왜곡하고 자기네 평화헌법마저 부정하면서 극도로 우경화하여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군국주의적 경향을 노골적으로 다시금 내비치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사상을 되짚어 생각해야 하는 이때 시의적절한 창작판소리 공연이다.

 

소리를 이끄는 도창으로 직접 실연한 임진택 명창은 말한다. “해방 직후 박동실 명창이 이준ㆍ안중근ㆍ윤봉길 세 분의 의거를 담은 ‘열사가’라는 판소리를 창작한 바 있지만 새로운 안중근 판소리의 필요성과 작금의 급박한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세로 불 때 안중근이 자칫 과거의 인물로만 박제되어서는 안 될 터이며, 따라서 이를 뛰어넘는 창조적 예술정신이 요구된다.”라면서 “창궐하는 일본 군국주의와 열강의 야합에 맞서 싸우는 안중근이라는 대한국인을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의사(義士)로 부활시키는 작업을 시작하고자 한다.”라고 이번 작품을 펼치는 각오를 밝혔다.

 

입체창으로 펼쳐진 창작판소리 <안중근>

 

창작판소리 <안중근> 공연은 일인다역을 하는 한 사람의 광대와 한 사람의 고수가 등장하는 판소리 전통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다수의 소리꾼이 어머니 조마리아, 빌렘 신부, 채가구 역장, 일제 검찰관 등의 여러 배역을 맡아 안중근 의사와 함께 시대의 증인으로 무대에 서는 입체창으로 펼쳐졌다. 이는 전통판소리의 미적 특징을 고수하면서 중립적으로 관찰되어 객관화된 사건의 분위기와 인물의 신분, 성격에 따르는 이면(裏面)의 효과를 높이는 장치란다.

 

물론 이런 방식의 공연이 일부 집중도가 떨어지는 단점도 살짝 엿보였지만, 소리꾼들의 개성과 특징들이 조화롭게 소리판을 이끌어나가는 매력도 선보인다. 특히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 전 지부장 배재정 소리꾼은 여러 명 역을 그때그때 다른 분위기로 소화해 청중들의 큰 손뼉을 받았다.

 

또한 판소리 <안중근>은 임진택 명창이 도창으로 안중근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펼쳐줘 안중근 의사를 단순히 이등박문을 저격한 영웅으로만 알고 있을 청중들에게 인간 안중근의 면면은 물론 안중근의 철학까지 상세하게 만날 기회를 만들어준 것은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창작판소리와 그림 영상의 만남

 

그뿐만이 아니다. 이번 공연은 화가 박불똥이 미술감독을 맡아 작화에 나서 판소리 <안중근>을 훨씬 밀도있게 만들어 낸 점도 칭찬할만하다. 일반적으로 판소리 무대의 배경으로 쓰이는 병풍 대신에 사진 조각을 모아 붙인 포토꼴라주 작품이 스크린에 펼쳐졌다.

 

 

‘안응칠 역사’를 자신만의 리얼리즘으로 포착한 시각 이미지들을 분해 조립하고 유기적으로 엮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특히 정지된 하나의 이미지 위에 다른 이미지가 중첩되고 반복과 복제되는 작업은 동영상을 보는 듯한 율동감마저 자아낸 것은 물론 ‘안응칠 역사’가 작은 힘들이 모여 하나의 큰 역사를 이루어 낸 우리 민중들의 삶의 역사임을 역설하고 있었다.

 

판소리 <안중근> 출연진들

 

먼저 이번 공연은 ‘우리시대의 광대’ 임진택 명창이 도창으로 전 공연을 이끌었다. 임진택 명창은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으로 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예능보유자 정권진 명창으로부터 소리를 배운 이른바 ‘비가비광대(일반인 출신 소리꾼)’이며 1970년대 이후 마당극 운동을 주도한 연출가이자 문화운동가다. 특히, 전통판소리의 박제화를 극복한 ‘살아있는 판소리꾼’으로서 새로운 ‘창작판소리12바탕’ 완성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백범 김구>(2010년)를 시작으로 <남한산성>, <다산 정약용>, <오월광주, 윤상원가>, <세계인 장보고>, <전태일>에 이은 <안중근>은 그의 일곱 번째 작품이다.

 

어머니 조마리아 역을 맡은 중견 소리꾼 남궁성례는 정권진 명창과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 김소희 명창에게 배우고 현재 유튜브 ‘풍류당 보라사부’ 채널에서 판소리 남도창을 강의하고 있다. 또 안중근 역의 소리꾼 강응민은 현재 안양국악예술단을 이끌고 있는 청년 국악인으로서 지역의 전통예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지난 2019년 <수궁가>를 완창한 바 있다.

 

 

 

이어서 소리꾼 최민종은 단국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고 소리패 ‘낭만판소리’를 꾸려 판소리의 대중화에 노력하고 있으며 2012년 제12회 인천국악대전 판소리부 일반부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소리꾼 배재정은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장 출신으로 임진택 명창으로부터 창작판소리를 사사하고 있으며 2020년 창작판소리 <전태일>에 출연하며 제2의 인생을 소리꾼으로서 시작했다.

 

북채를 잡는 박명언 고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박봉술 명창의 손자로서 소리와 고법을 모두 익혀 ‘소리할 줄 아는’ 고수로 이름이 높으며 나주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고법 일반부 대상(2008년)과 완도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일반부 최우수상(2010년)을 받은 재원이다.

 

공연의 연출은 이선우, 영상감독은 김창길, 무대감독은 성형진이 맡았다.

 

 

이번 창작판소리 <안중근>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년도 원로예술인공연지원 사업 기금과 기아(주) 노사합동 사회공헌기금을 지원받아 제작되었다. 또한 이번 공연의 산실 창작판소리연구원은 민족문화예술의 전통을 올바르게 잇고 동시대에 맞는 새로운 판소리를 연구, 창작, 실연하여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새로운 소리판을 일구는 작업을 위하여 설립된 단체다.

 

청중 가운데 목동에서 왔다는 성순영(52) 씨는 “임진택 명창의 명성은 익히 듣고 있었지만, 이렇게 안중근 의사를 주제로 창작판소리를 제작하여 공연하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다. 특히 동아시아 평화가 위협받는 이 시대 창작판소리 <안중근>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이란 생각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