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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조선에서 교사를 한 일본인의 황민화교육 반성

평생 반성하며 산 100살 할머니의 증언책 《식민지 조선에 살면서》 나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날은 조선이 광복을 맞이한 뒤였다. 때마침 방학 중이었는데 학교로부터 교직원들을 긴급 소집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학교로 달려가니 운동장 한편에 큰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학교측에서는 나를 포함한 교사들에게 수업용으로 쓰던 각종 교재와 서적류, 공문서 등을 닥치는 대로 가지고 나와서 구덩이에 던져 넣으라고 했다. 경황없이 주섬주섬 가져가 구덩이에 넣자 이내 불을 붙였다. 종이 서류들이 파지직 소리를 내며 타기 시작했다. 구덩이에 던져진 물건 중에는 나무로 만든 가미다나(神棚: 일본의 가정이나 관공서, 상점 등에 꾸며 놓고 날마다 참배하는 작은 제단)도 있었다.”                   - 스기야마 도미 씨의 《식민지 조선에 살면서(植民地朝鮮に生きて)》 가운데서-

 

조선에서 태어나 19살부터 대구달성공립국민학교 교사로 5년을 근무한 일본인 스기야마 도미(杉山とみ, 100살) 선생은 1945년 8월 15일, 한국인이 맞이한 광복의 기쁨과는 정반대의 상황과 맞닥트렸다. 승승장구할 것 같은 조국, 일본의 패전을 조선땅에서 맞은 것이다.

 

스기야마 도미 선생의 아버지는 일찌감치 조선에 건너와 처음에는 전라도 영광에서 넓은 땅을 소유하고 과수원을 경영했으며 어느 정도 자본을 모은 다음에는 경상도 대구로 옮겨 도미야(富屋)라는 모자점을 차렸다. 모자점은 호황을 맞아 밀려드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조선 청년 두 명을 고용할 정도였다. 그런 부모님은 조선어를 익히지 않았고 조선에서 태어난 스기야마 도미 선생역시 조선어와는 담을 쌓은 채 일본의 패전을 조선땅에서 맞았다.

 

 

조선어는 자신이 재직하고 있던 대구달성공립국민학교에서도 ‘금기어’였다. 스기야마 도미 선생은 증언한다. “당시 학생들은 교실에서 일본어로만 말을 해야 했고 이를 어기고 조선어를 쓸 때는 체벌을 가했습니다. 또한 이름도 조선이름이 아닌 창씨개명된 이름이 의무화되었으며 신입생의 경우 이름표를 달아 줄 때 창씨개명하지 않은 학생은 집으로 돌려보내서 부모님에게 일본식 이름을 지어 받아 오도록 조치했습니다.”

 

스기야마 도미 선생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부를 일군 부모덕에 어려움이란 손톱만큼도 모르고 자랐을 뿐 아니라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침략했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교사 노릇을 했다고 뒷날 자책했다. 그런 그는 태평양전쟁 말기 국가총동원 체제 아래서 조선인 아이들이 훌륭한 황국신민(일본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 역량을 키우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학교(대구달성공립국민학교)에서 학생들은 매일 아침 황국신민서사를 맹세하고 봉안전(奉安殿: 봉안전에는 일왕부부의 사진과 교육칙어가 액자 속에 걸려있었으며 이곳은 매우 신성한 장소였음) 참배했습니다. 

 

-우리는 대일본제국 신민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모아 천황폐하에 충성을 다합니다.

-우리는 인고단련하여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됩니다.

 

이 내용을 학생들은 큰 소리로 암송하고 이어서 군가인 ‘바다에 가면(海ゆかば, 우미유카바)’을 힘차게 불렀지요. 당시에는 공부도, 체력도 모두 자기 자신이 아니라 일왕폐하를 위한 것이라고 저 자신이 사범학교 시절 배웠고, 그 이념을 아이들에게 전수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스기야마 도미 선생은 제국주의에 충량한 국민을 만들기 위한 기초 단계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신명을 다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조국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하여 이른바 패전국이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패전을 맞아, 부랴부랴 본국으로 퇴각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맞닥트린 일련의 일들은 스기야마 도미 선생의 인생관을 송두리째 흔들게 했다. 광복 이튿날인 8월 16 아침, 스기야마 도미 선생은 대구 외곽으로 소개(疏開:적의 공습이나 화재 따위에 대비해 다른 곳으로 대피해 있는 것)해 있는 부모님에게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때였다. 조선인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어이, 아가씨, 일본인 아니요? 이제 이곳은 일본이 아니라 조선이니까 아가씨는 줄을 서지 말고 비키세요. 라고 하며 제 앞으로 끼어드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안 보여서 하는 수 없이 버스를 기다리던 줄에서 나와 무작정 부모님이 계신 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제가 가르친 제자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저를 발견하여 태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스기야마 도미 선생은 제자의 자전거 뒤에 타고 부모님께 가면서 제자에게 물었다. “김 군, 그런데 조선인들이 무언가를 외치는 소리가 무슨 뜻이지?” 그 소리란 다름 아닌 조선인들이 외치는 ‘대한독립만세’ 소리였다. 그러나 스기야마 도미 선생은 조선어를 익히지 않은 탓에 광복의 기쁨을 맞아 외치는 조선인의 만세 함성을 알아듣지 못한 것이었다. 참고로, 그때 김군은 김정섭 씨로 1972년, 홋카이도 한국 영사로 부임하여 스승인 스기야마 도미 선생과 재회했고 이후 스승과 제자는 훈훈한 정을 나눴다.

 

스기야마 도미 선생은 또 물었다. ‘그런데 김 군, 왜 조선인들은 일본어를 쓰지 않고 조선어로 말을 하는 거니?”라고 말이다. 철이 없어도 한참 없었던 일제국주의의 충실한 교사 스기야마 도미 선생! 그런 그가 올해 100살을 맞았다. 그리고 식민지시대, 조선 아이들을 충량한 일본인을 만들기 위해 개념 없이 날뛰던 자신을 뒤돌아보고, 상처 입었을 조선 아이들을 위한 반성의 책 《식민지 조선에 살면서(植民地朝鮮に生きて)》(2021.7.일본)을 펴냈다.

 

이 책은 스기야마 도미 선생이 직접 쓴 것이 아닌 구술서다. 이 책을 쓴 사람은 나카노 하키라(中野晃, 50) 씨로 그는 서울 특파원을 한 신문기자다. 나카노 아키라 기자는 2004년, 한국어 연수를 시작으로 2011년부터 14년까지 서울 주재 기자였다. 기자의 눈으로 본 올해 100살 할머니의 ‘조선에서의 삶과 그 이후’는 간결하면서도, 다른 책에서 얻을 수 없는 현장 체험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소중한 역사적 자료들이 담겨 있다. 

 

이 책은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머리말 '뒤틀린 (한일)관계를 풀기 위해서', 제1장 '도미야 모자점 추억', 제2장 '경성 기숙사에서 보낸 청춘', 제3장 '식민지 조선의 교단에 서다', 제4장 '태어난 고향과의 이별', 제5장 '가는 말이 고와야' 등으로 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각 장 끝마다 나카노 아키라 기자가 쓴 당시 역사적 정황을 적어 둔 <역사 BOX> 부분인데 편협되지 않은 시각으로 기술되어 있다.

 

“조선에서의 교사 시절, 황민화교육을 무리하게 조선 어린이들에게 강요한 점을 사죄합니다. 순수하고 맑은 조선 어린이들에게 제가 무엇을 가르쳤는지에 대한 자책감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올해 100살의 스기야마 도미 선생은 지금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식민지시절 조선의 교사로서 ‘황민화교육에 앞장 선 사실’을 반성하는 뜻에서 이후 그는 30여 차례 한국을 찾아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얼마 전까지도 기회 있을 때마다 신문 등에 독자 투고를 쓰고 있으며 한국인 제자들과의 풋풋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 소소한 이야기들이 이 책의 행간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다만, 일본어판이라 한국 독자를 위한 한글판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은 지난 7월에 나온 뒤 <아사히신문>(7월 15일)에서 ‘백수(百壽)로부터의 전언 : 식민지 조선의 교단’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2회에 걸쳐 크게 보도한 바 있다.

 

참고로, 기자에게 《식민지 조선에 살면서(植民地朝鮮に生きて)》 책을 보내온 사람은 야나기하라 야스코 (楊原泰子) 씨로 그는 오랫동안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을 이끌며 윤동주 시인 알리기에 앞장서 있는 분이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 책 안내: 《식민지 조선에 살면서(植民地朝鮮に生きて)》, 스기야마 도미 증언, 나마노 아키라 지음, 일본 草土社 펴냄, 2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