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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그런 금강산을 잊고 살았구나

우주를 품는 안목을 기르는 곳, 금강산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2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 후기의 문인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 1673)은 금강산에 대해 다섯 수의 시를 지었는데 그 첫수에서 다음과 같이 금강산을 묘사한다.​

 

金剛雄六合  금강산이 천하에서 으뜸이니

造化此偏鍾  조화를 여기에 쏟아 놓았구나

海有東南地  바다에는 동남의 땅이 있고

山開一萬峯  산은 일만이천봉을 열었다

門前琪樹出  문전엔 구슬 같은 나무 빼어나고

洞口羽人逢  동구에선 신선을 만난다

絶壁通河漢  절벽은 은하수를 통하였고

淵中帝賜龍​  연못 속엔 옥황상제가 용을 하사하였다

 

과연 신선들이 사는, 하늘의 만들어준 경치란 뜻일 게다. 굳이 옛 문인들의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금강산이 아름다운 것은 우리가 10여 년 전에는 익히 보아왔다. 그런데 금강산이 왜 우리에게 있는지를 알려주는 글은 별반 없다.

 

 

 

이럴 때 조선 후기 인문정신의 으뜸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년~1836년)이 소환된다. 다산은 금강산을 유람하러 떠나는 친구들을 전송하면서 글을 한 편 썼는데​

 

귀는 어찌하여 밝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달려가고, 꾸짖는 소리를 듣고 중지하고, 포효(咆哮)하는 소리를 듣고 해를 피하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금석사죽(金石絲竹, 예전에 쓰던 네 가지의 주요 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 종ㆍ경쇠ㆍ현악기류ㆍ관악기류를 이른다.)과 유창한 상성(商聲, 중국 5성(聲)의 둘째 소리), 심각한 우성(羽聲, 국악의 오음 가운데 다섯째 음률의 이름)을 듣고 즐기려는 것이다.

눈은 어찌하여 밝은가?

평탄하고 험함을 분변하며 마르고 젖은 것을 구별하여, 취하고 버리며 나아가고 물러나게 하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기화이초(奇花異草, 진귀한 꽃과 풀)와 서화(書畫)나 옛 물건들을 보고 즐기려는 것이다.

산은 어찌하여 거대한가?

바람을 막고 물을 저축하며, 금은동철(金銀銅鐵)과 미재보석(美材寶石)을 생산하여 이용후생(利用厚生, 편리한 기구를 잘 사용하여 먹고 입는 것을 풍부하게 하며, 생계에 부족함이 없도록 함)을 하려는 것이다.

 

                                ...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하러 가는 교리(校理) 심규로(沈奎魯)와 한림(翰林) 이중련(李重蓮)을 전송하는 서(序)/ 《다산시문집》 제13권

 

그런데 다산은 여기서 그렇게 바람을 막아주고 물을 저축하며 인간에게 유익한 광물질이 나는 것도 아닌데 으뜸으로 치는 산이 있으니, 산에 관해서는 그 존재 이유가 쉽게 따질 수 없다며 금강산을 물고 들어간다.​

 

금강산은 오곡(五穀)이 생산되지 않고 삼금(三金, 금ㆍ은ㆍ동)ㆍ팔석(八石: 도교에서 도를 닦으면서 먹는 8가지 광물질, 곧 주사-朱砂ㆍ웅황-雄黃ㆍ공청-空靑ㆍ유황-硫黃ㆍ운모-雲母ㆍ융염-戎鹽ㆍ초석-硝石ㆍ자황-雌黃)과 편나무ㆍ매화나무ㆍ예장나무[豫樟]ㆍ상아(象牙)ㆍ서피(犀皮)ㆍ날짐승의 깃ㆍ길짐승의 털 등속의 자원은 하나도 얻을 것이 없다. 만물에 뛰어나 사람을 놀라게 하며 천하에 이름나게 된 것은, 가파른 봉우리, 우뚝 솟은 돌들의 기괴하고 이상한 형태와 깊은 웅덩이며 폭포가 쏟아지고 출렁거리는 물 그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도 사람이 시냇물과 언덕을 건너 양식을 싸서 거친 풀을 헤치고 가파른 바위를 지나며 등에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거리면서까지 반드시 한번 보는 것으로 시원하게 여기는 것은 또한 무엇 때문인가?

현악기(絃樂器)ㆍ관악기(管樂器)나 치성(徵聲, 오음 가운데 넷째음)ㆍ우성(羽聲)의 가락을 듣는 것으로는 부족하기에 쏟아지는 폭포 소리를 들음으로써 기뻐하고, 화초나 나무, 옛 물건을 보는 것으로는 부족하기에 가파른 봉우리, 괴이한 돌을 봄으로써 즐거워하는 것이니, 이목(耳目)의 욕심을 탐하는 것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요컨대 금강산에 가면 돌로 된 봉우리와 물이 흘러 내는 폭포 외에는 없기에,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실 욕심이 엄청 많은 사람인데도, 오히려 세상에 물욕이 없고 이상이 높은 사람으로 칭송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현실에서 재물에 욕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금강산은 입으로 떠들고 먹으러 싸우고, 혹 입에 들어가는 어떤 것들, 귀로 듣는 온갖 세상의 이익... 이런 것들(다산은 이를 구체-口體라고 했다)을 탐하는 곳이 아니라 높은 정신적인 세계, 세상을 부는 분, 우주를 품는 안목을 기르는 곳이라는 뜻이다.​

 

나는 그러한 까닭을 알겠다. 귀나 눈의 기능으로서 부르는 소리, 꾸짖는 소리를 분변하고 평탄하고 험함을 구별하는 모든 것은 다 그 구체(口體)를 기르는 것이고, 현악기ㆍ관악기나 화초ㆍ나무 같은 것은 심신(心神)을 기르는 것이다. 산이 보화 등의 온갖 물건을 산출하여 용도에 이롭게 하는 것은 다 사람의 구체(口體)를 기르는 것이고, 그 가파른 봉우리, 괴이한 돌, 쏟아지는 폭포가 되어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심신(心神)을 기르는 것이다. 무릇, 구체(口體)를 기르는 것은 아무리 작더라도 탐하면 사욕(私慾)이 되고, 심신을 기르는 것은 비록 탐하여 돌이킬 줄 모르더라도 군자는 탐한다고 하지 않는다.​

 

다산은 직접 금강산을 가본 것은 아니고 다들 금강산 하면 구경하러 간다고 하니, 기왕에 거기에 가면 정신이 확 높아지고, 심신이 건강해진다고 하니 그렇게 하고 오라는 당부를 이 글에서 담아 친구에게 준 것이다.​

 

아무튼 금강산은 우리 입에 좋은 그 어떤 것도 나오지 않지만, 거기를 다녀오면 정신이 높아지고 마음도 몸도 가벼워지고, 세상 물욕을 벗어난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어떻게 하나? 그런 금강산을 올해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