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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변화를 두려워하는가?

공자가 칭찬한 노나라의 대부 거백옥(蘧伯玉)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30]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천지(天地) 사이에 있는 존재하는 것 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누구나 아는 것 같은 이 말은, 그러나 보통 일상에서는 보이지 않고, 어느 순간 가는 길을 멈추고 시간이 지나가는 것, 변화하는 것을 볼 때 눈에 들어오고 가슴에 느껴진다. 그때가 바로 해가 바뀌는 연초, 또는 설이다.

 

 

한겨울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나뭇가지에 아무것도 없을 때 여기에 잎이 나오는 것을 생각해내게 되고, 이 나무에서 잎이 처음 나와 싹을 틔웠다가 줄기와 가지로 바뀌고 다시 꽃과 열매로 바뀌며 또 누렇게 낙엽이 지고 마는, 이러한 변화의 이치를 보게 된다.​

 

어찌 만물만 그러하겠는가. 천지(天地) 또한 그러하다. 낮에 밝았다가 밤에 어두워지는 것은 1일(日)의 변화요, 봄에 내놓고 여름에 키우며 가을에 죽이고 겨울에 마감하는 것은 1년(年)의 변화다. 사람의 형체도 마찬가지이다. 처음 태어나 갓난아기가 되었다가 조금 자라서는 방긋 웃을 줄도 알고 말할 줄도 알고 걸어 다닐 줄도 알며 소년기를 지나 청년이 되었다가 장년기를 거치면서 쇠해지고 쇠해진 뒤에 노년을 맞아 마침내는 죽고 마는데, 이 과정의 어느 것 하나 변화 아닌 것이 없다. 그런 자연현상을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때가 바로 요즘 같은 연말연초다.

 

 

조선시대 인조 효종 때의 문신인 계곡 장유(1587~1638)는 친구인 평산(平山) 신민일(申敏一 1576~ 1650)이 임금에게 올린 말이 오해를 받아 편벽한 곳에 유배를 당했으면서도 60이 되는 해에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변하는 집’이란 뜻의 ‘화당(化堂)’이란 호를 새로 마련했다는 소식에 옛사람들이 인생을 마감하는 나이라고 생각하는 60에도 스스로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 기왕에 변하려면 제대로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의 성정(性情)의 경우 또한 어찌 유독 그러하지 않겠는가. 대저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해 준 것으로 말하면 환히 밝아 지극히 신령스럽고 티 없이 맑아 지극히 선한 것으로서 잘나거나 못나거나 간에 모두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기질(氣質)에 구애받고 습관이 잘못 형성되면서 충동이 일어나고 감정이 앞서게 된 나머지 신령스러운 체성(體性)이 미혹스럽게 변화하고 선한 성품이 악하게 바뀌게 되고 마니, 이것이 바로 선하지 않게 변화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아, 만물이 변화하는 것이나 사람의 생사(生死)와 장로(壯老) 같은 것은 천명(天命)과 관계된 것이니 이는 사람들이 정말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정(性情)이 왜곡되는 것이나 학문을 통해 변화되는 것으로 말하면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일 뿐 천명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하루도 그 방면에 힘을 쓰려하지 않고서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감수하고 있으니, 겉모습만 사람일 따름이지 그 속마음은 이미 금수(禽獸)로 화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어찌 너무나도 슬픈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올바른 변화의 방향은 무엇일까? 나이가 얼마가 되든 학문에 뜻을 두고 마음을 다잡고 인격을 도야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인께서 이를 걱정하시어 사람들을 위해 가르침을 베풀고 학문을 익히게 하면서 쇠를 녹여 틀을 조형하고 도구를 사용해 나무를 재단하듯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신 것이다. 그 결과 어리석은 사람도 명철해지고 나약한 사람도 소신있게 행동하고 번잡스러운 사람도 평정을 되찾고 오염되었던 사람도 깨끗해지고 한쪽에 치우쳤던 사람도 바른 위치에 서게 되고 이것저것 뒤섞였던 사람도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니, 그렇게 보면 이 세상 사람으로서 변화될 수 없는 자가 또한 있지 않다고 할 것이다. 학문에 뜻을 두는 것[志學]으로부터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되는 경지[從心所欲不踰矩]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되어 보았으면 하는 선인[可欲之善]으로부터 성스러워 알 수 없는 신인[聖而不可知之神]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가 학문을 계속 탐구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공효(功效)요 그 덕성이 단계적으로 성취되는 것들이라 할 것이니, 교화하는 그 도가 그야말로 지극하다고 할 것이다.”

 

 

우리 삶이 계속 이어지지만, 사람들은 대개 10년의 단위로 자신의 나이를 돌아보고 새로운 결심도 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람이 공자가 칭찬한 거백옥(蘧伯玉)이란 노나라의 대부(大夫)다. 그는 50세에도 49세 때까지의 잘못을 깨달았던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60세가 될 때까지 계속 자신을 변화시켜 나갔고 다시 60에도 변화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끊임없이 스스로 변화시켜 나간 것으로 해서, 공자(孔子)뿐 아니라 세속의 일을 우습게 보는 장자(莊子)까지도 그를 극구 칭찬했다고 한다.​

 

신민일이 자신을 변화시키겠다고 호를 화당(化堂)으로 바꾼 시점은 그의 나이 60을 맞을 때였다. 거백옥이 50에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변화를 다짐한 것도 당시에는 놀라운 것이었는데 60에도 멈추지 않고 또 변화하려고 노력한 것을 교과서로 삼아서 자신도 60에 변화의 결심을 공표한 것이다. 그런 변화, 변신의 다짐이 평균 수명이 60도 되기 전인 아득한 고대에 있었던 일이기에 박수를 받았다면, 수명이 많이 연장돼 70이 아니라 80도 많아진 요즈음에는 60이 넘었다고 변화를 포기하고 정체에 머물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올해로 70을 맞는다. 이미 20년 전 50을 시작할 때 거백옥의 이야기를 듣고 변화를 다짐했다가 어느새 10년을 보내고 다시 60에도 10년을 보내고 어언 70을 맞은 것이다. 누가 보면 정말로 나이가 들었고 그동안 새로워진다고 하면서 무얼 했느냐고 꾸중을 들을 나이로 접어드는데, 그동안 헛되이 보낸 것을 인정하면서, 그러니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저 나이 탓을 하며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 지금이라도 공부를 더 하고 좋은 성품을 길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어 거백옥의 변화를 거론하며 친구에게 써 준 장유의 글 ‘화당설’을 다시 읽으며 새해 새 마음으로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변화의 마음을 다시 일깨우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