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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서산 이임진의 <소리 한마당>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6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방영기 명창의 정례발표 공연 이야기를 하였다. 방 명창은 대통령상 수상 이후,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해마다 발표회를 해 왔다는 이야기, 2021 발표회에서도 ‘산타령’, 경기민요와 좌창, 병창, 유지숙의 서도소리,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 등을 무대에 올렸는데, 집터 다지는 중노동에 장단이나 소리는 노동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충남 서산시에서 오랜 기간, 우리 소리, 특히 경기지방과 서도 지방의 소리들을 중심으로 일반 동호인들을 지도하고 있는 소리꾼 이임진의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이임진은 서산 <경서도 예술원>의 원장으로 충남 인근에는 비교적 널리 알려진 열성파 소리꾼으로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울을 올라다니며 당대 이름을 날리던 유명 소리꾼들에게 소리공부를 해 왔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해 왔는가 하는 점은 우선, 그의 소리에서 깊은 공력이 묻어 나오는 점으로도 알 수 있거니와 각종 경연대회에 나가 여러 차례 수상해 왔다는 점으로도 증명이 된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 원장에게 소리를 지도해 주었던 여러 명창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와 함께 그의 성실함을 칭찬하는 점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민요와 같은 우리소리 부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어렸을 때만 해도 춤을 춘다든지, 소리를 하고 악기를 다루던 예능인들은 천시를 받던 사회 풍조였기에 집안의 반대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예술을 하나의 재주로 치부하던 당시의 사회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집안 어른들의 반대를 설득할 수 있었을까? 자연스럽게 그가 꿈꾸던 소리꾼의 길도 후일을 기다리며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실토한다.

 

 

그러나 다행그러운 것은 그의 마음 한구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소리꾼의 길이 혼인 뒤에 가족들의 이해로 서서히 펼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 그에게 소리를 전해 준 선생은 ‘산염불’을 비롯, 서도소리를 지도해 준 박태여 명창이다. 박 명창은 이북 출신으로 서도소리에 능했고, 1960년대 후반, 벽파 선생이 운영하던 성악학원에서 소리를 익힌 명창으로 70년대 이후, 산타령 전수조교를 지낸 사람이다. 특히 박 명창은 경서도 민요 약 400여 곡의 가사를 정간 속에 넣어 시가(時價)를 구별할 수 있도록 장단보 형식의 《경서도민요집》을 펴내, 주목받기도 했다.

 

박태여 다음으로 경기명창 이호연에게도 ‘금강산타령’을 비롯한 경기민요 전반을 폭넓게 배웠고, 묵계월 명창에게는 6년 이상, 서울 경기지방의 긴소리인 좌창(坐唱)을 배웠다고 한다. 그의 노력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최근까지도 최창남 명창에게 경기 ‘산타령’ 전곡과 경서도 민요 전반, 그리고 ‘한 오백년’ 등, 강원도 소리를 다듬고 있어서 그 단단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는 10여 년 전, <산타령 보존회>의 이수(履修)평가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당일 10여명 가운데 유난히 소리 실력이 돋보이던 사람이 바로 서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 원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앞에서 그를 가르친 명창들을 소개했지만, 그는 30여 년 이상을 충남 서산에서 서울을 올라다니며 명창들의 소리를 배운 열성파 학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서울의 명창들을 찾아다니며 경기의 좌창, 일반민요, 선소리 산타령과 서도소리를 배웠다고 하는 점은 그의 노력이나 집념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릴 때부터 소리를 좋아하고 사랑하던 소리 길의 뜻, 곧 명창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해마다 제자들과 함께, 또는 명창들을 초청하여 경서도소리의 발표 무대를 준비해 오고 있다. 주위에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임진은 목청이 좋다’ 또는 ‘무대 위에서의 발림이 좋다’라는 평가를 하고 있지만, 아마도 이 말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대가 좋다는 뜻보다는, 소리를 갈고 닦으며 얻어낸 공력(功力)이 남다르다는 말일 것이다.

 

요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돌림병의 확산은 문화예술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임진의 경우, 지난 2020년도에 공연 준비를 다 했으나 정작 공연 당일에는 막을 열지 못했다. 만일 2021년도에도 객석의 입장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비대면 영상으로라도 발표회를 열겠다고 열의를 보여 왔는데, 그의 노력은 열매를 맺어 지난해 12월 12일에는 제한적으로 서산 문화회관에서 발표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난 발표회에서 이 원장은 ‘산타령’, ‘회심곡’, 등 쉽게 만나기 어려운 노래들을 비롯하여 경서도 지방의 다양한 노래들을 준비해서 제자들과 함께 멋지게 선을 보였다. 특히 초대 손님으로 박상옥 명창이 무대에 섰는데, 그는 평소 즐겨 부르던 ‘변강쇠타령’을 들려주었다. 이 소리는 “천하 잡놈은 변강쇠, 천하의 잡놈은 변강쇠라. 자라는 호박에 말뚝박기,”로 시작하여 ‘강쇠의 심사를 볼 지경이면,’ ‘어떤 나무는 팔자가 좋아,’어떤 나무는 고목이 되어,’ ‘죽도 사도 못하는 경우’로 이어간다.

 

이 ‘변강쇠타령’은 판소리 ‘흥보가’ 가운데 놀부의 심보를 풍자한 것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토끼화상’과 같이 경기가락인 ‘창부타령’과 흡사한 가락과 장단으로 불리고 있다.

 

이 공연에서 초대 손님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무대 진행자인데, 방영기 명창이 이를 맡아 간단히 경서도 소리의 진수를 토막소리로 들려주는 등 객석을 만족시켜 주었다.

 

남들이 외면하는 비인기 종목의 어려운 민속가(民俗歌)들을 섭렵하고, 그 소리들을 제자들에게 전해 주면서 그간의 공력을 펼쳐 보이는 이 원장과 제자들에게, 그리고 원근에서 참여한 모든 출연진에게 뜨겁게 손뼉을 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