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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이건자, 판소리 포기하고 경기입창의 길로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7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판소리를 공부하던 이건자는 자신의 목이 판소리에 적합한 목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면서 윤평화 명창에게 경기소리를 배우기 시작한다.

“내 목에 맞는 경기소리를 연습해서 그런지, 온종일 연습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걸 한다는 자체가 그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의 소리 실력이 조금씩 드러나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 경기 명창들은 서로 그를 자신의 제자로 삼으려 했다고도 한다. 그가 경기소리, 특히 민요창을 열심히 익히고 있었을 무렵이었는데, 충무로에 있는《한국의 집》에서 민요경창대회가 열렸다는 것이다. 지도 선생님의 권유로 참가해서 평소에 좋아하고 즐겨 부르던 <금강산타령>을 불렀다고 한다.

 

“워낙 좋아하는 노래여서 자신감도 있었고, 또 그날따라 목이 잘 나오고, 음악성도 발휘되어 좋은 결과가 나왔지요. 시상식이 끝나고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분이었던 임정란 명창이 윤평화 선생께 이건자를 데리고 가서 제자로 키우고 싶으니 허락해 달라고 해서 선생님도, 저도, 무안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 뒤 또 다른 대회에서는 묵계월 명창께서 심사를 보셨어요. 운 좋게 큰 상을 받았고, 돌아가는 길에 뜻하지 않게 선생님과 같은 차를 타게 되었어요. 선생님은 제 목이 좋다고 칭찬하시면서 고향을 물으셔서 강원도라고 대답하니 ‘한 오백년’을 불러보라고 하시어 불렀어요. 그랬더니 제 소리하는 모습이 맘에 든다고 하시며 당신 학원으로 오라 하셔서 찾아가 뵈었더니, 여기에 와서 12잡가를 배우라고 하시는 거예요. 제가 고마우신 말씀이지만, 저는 이미 선소리산타령 전수생으로 공부하는 중이어서 다시 제자로 들어가는 것은 곤란하다’하고 어렵게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배우고 싶은 소리가 있느냐고 물으셔 <출인가>라고 대답을 하니 이 노래를 한 소절씩 주고, 받으며 배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 밖에 그는 지화자 명창에게도 서도의 긴소리인 <제전>을 배웠고, 또 서도창 배뱅이굿의 이은관 명인도 당신의 제자로 들어오라고 여러 차례 요청하였으며, 안비취 명창도 소리 공부로 성공하려면 참을‘인(忍)’자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격려해 주시는 등, 여러 명인 명창들께서 좋게 봐주시고 격려해 주셔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고 지난날들을 회고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건자는 오로지 경기소리와 첫 인연을 맺게 된 선소리 <산타령>에 애정을 갖고 그 학습에 매진해 왔다고 한다. 그의 주전공 분야인 선소리 <산타령>이란 어떤 음악인가? 여러 차례 이 지면을 통해 언급해 왔지만, 다시 한번 이 음악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 넘어가도록 한다.

 

 

<산타령>이란 산(山)을 노래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 나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산을 노래하는 내용의 가사가 참으로 많다. 산타령 앞에 관용어(慣用語)처럼 붙이는 <선소리>라는 말은 산타령을 노래할 때, 여러 소리꾼이 서서 부르는 소리라는 뜻이다. 경기소리 가운데는 앉아서 부르는 긴잡가나 휘몰이 잡가와 같은 좌창(坐唱)의 형태가 대부분이지만, 산타령처럼 서서 부르는 입창(立唱)의 노래도 있어서 창의 형태가 다르게 대비되는 것이다.

 

산타령이 오늘날 이렇게 널리 퍼질 수 있었던 배경은 벽파(碧波), 이창배(李昌培) 명인의 공로가 크다고 본다. 명인은 1950년대 중반, 서울 종로 3가의 <청구고전 성악학원>을 세우고 그곳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해 오는 한편, 국악고교나 국악예고 등 전문 교육기관에 출강하여 산타령을 지도해 주었기에 오늘의 산타령이 활성화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현존 산타령은 이창배가 전해 준 왕십리패의 노래가락이 중심을 이루면서 전해오는 것이다.

 

이 왕십리패는 이창배의 스승, 이명길을 위시하여 엄태영, 탁복만, 이명산과 같은 소리꾼들이 그 소리 길을 지켜왔기에 그 전승이 가능했다. 참고로, 해방 이전까지 서울, 경기지방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오던 소리패들은 <뚝섬패>를 비롯하여, <왕십리패>, <방아다리패>, <과천패>, <호조다리패>, <자하문밖패>, <성북동패>, <진고개패>, <삼개패>, <애오개패> 등이 있었고, 그 밖에도 마을마다 소규모의 소리패들이 활동해 온 것이다.

 

 

선소리 한마당이란 제1곡 <놀량>, 제2곡 <앞산타령>, 제3곡 <뒷산타령>, 제4곡 <자진 산타령> 등을 차례로 연창하는 것이 통례이다. 여기에 <개고리 타령>이나 기타 몇 곡을 곁들여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현재 <산타령>은 국가가 정한 무형문화재의 단체종목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동 종목의 보존회원들은 정례발표회를 통해 전승 의지나 전승 실태를 확인받고 있다. 그러나 전통음악계의 현 상황은 <산타령>만을 부르며 살 수 있는 음악적 환경이 아니어서 비인기 종목에 전승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보존회원들의 노력이나 열성은 그저 고맙기만 한 것이다.

 

예능보유자 황용주, 최창남을 비롯하여 전수조교 방영기, 이건자, 최숙희, 총무 조효녀 외 많은 보존회 회원들의 노력과 열성, 그리고 산타령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그 음악의 전통을 유지해 오고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