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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25현금 창작음악 발표회 하는 이민영과 제자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7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앞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선소리 <산타령>의 전승교육사, 이건자 명창의 제9회 발표회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경서도 소리 전반을 섭렵한 명창으로 진실과 겸손으로 이웃을 섬긴다는 이야기, 검정고시로 대학과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을 수료하였으며 현재 성북구 내 자기 연구소에서 강습과 강의, 공연을 통해 국악보급에 힘쓰고 있는 모범적인 소리꾼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남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야금 연주자, 이민영과 그의 제자들이 꾸미는 25현금 연주회 이야기로 이어간다.

 

코로나19 돌림병이 다소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권장하는 상황이고, 정치권은 해당 지방의 일꾼을 뽑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 서로 상대를 질타하는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들을 뒤로 하고, 음색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가야금, 그것도 12현이 아닌, 음역을 확대한 25현 가야금을 통해서 지역과 체제를 달리하는 북한 동포들의 작품을 선정, 한 무대에 올린다고 하니 벌써 그 연주회가 흥미롭고 기다려진다.

 

 

이처럼 남과 북에서, 서로 흩어져 사는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싶어 했던 그의 패기(覇氣)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이는 분명, 누구나 쉽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보편적인 값어치가 아니라, 오직 용기 있는 젊은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권리 같아 크게 손뼉 쳐주고 싶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김창조로부터 시작된 남도제 가야금 산조는 여러 유파(流波)로 확산하여 오늘에 전승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남원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민영은 유대봉-백인영으로 이어지는 유파를 연주해 오고 있는 젊은 연주자다. 내가 이민영 양을 처음 만나게 된 시기는 그가 백인영 명인에게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한 고등학교 1학년 무렵으로 기억한다. 당시 백인영은 가야금과 아쟁의 명인으로 연주활동과 방송, 음반 작업 등등으로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이민영은 국악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갔고, 여기서 백인영 명인을 만나게 되면서 이민영의 가야금 인생은 꽃을 피기 시작했다. 이민영이 더욱 열심히 익힌 음악의 중심은 가야금 산조였다. 그러다가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중국의 가야금 명인 김계옥 교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통해 그 누구도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25현금을 연마하기 시작하였으며, 여러 무대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무렵, 연주회장에서 김계옥 교수를 만나게 되면, 그는 동행하고 있는 제자, 이민영의 연주능력이 일취월장하여 다른 학생들보다 우뚝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꼭 김 교수의 평가를 빌리지 않는다고 해도, 나 역시 충분히 공감되는 이야기였고, 경험이었다.

 

 

왜냐하면 나라 안팎 무대나 특별 국악강좌에 25현으로 <아리랑>을 연주하는 이민영 양을 초대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객석의 반응이나 그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이민영처럼 맛깔스럽게 25현금을 타는 연주자가 흔치 않다는 평가는 꽤나 설득력이 있을 만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옛이야기가 되겠다. 글쓴이는 1991년 이후, 30여 회 이상, 중국의 연변예술대학을 방문하면서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통음악인들과 학술 및 실연의 교류활동을 해 왔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 가운데 하나를 떠 올린다면 그것은 1991년 당시, 연변(延邊)예술대학에서 만난 가야금 연주가, 김진(金震) 교수가 타는 12현 가야금 산조였다.

 

그는 당시, 평양 음대에 가서 안기옥(安基玉)으로부터 가야금 산조를 배우고 돌아왔는데, 때마침 그곳을 방문하게 된, 나와 우리 일행을 위해 그 음악을 연주해주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음악을 제일 먼저 짰다고 알려진 사람이 바로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김창조(金昌祖)이고, 김창조는 이 음악을 안기옥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에게 전해 주었으며, 안기옥은 월북하여 평양 음대에서 학생들에게 가야금 산조와 판소리를 가르쳤다. 그에게 배운 여러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김진이었다.

 

30년 전 당시, 김진 교수의 연주실황을 보면, 그는 별도의 연주복 없이 흰 와이셔츠를 입고 소매를 걷어 올린 채, 연주하였다. 김진 교수는 그다음 해(1992), 한국과 중국의 수교가 이루어진 해에 한국에 초청되어 서울에서 가야금 연주로 갈채를 받기도 했다. 역시 앞에서 소개한 김창조-안기옥으로 전해진 산조였다.

 

김진 교수는 연변예술대학으로 돌아와서 안기옥에게 배운 산조를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쳤는데, 그의 많은 제자 가운데는 가야금 음악으로 중국 예능보유자가 된 김성삼(金聖三) 교수가 있고, 국가 2급 연주자로 활약하다가 한국의 중앙대학에 초청되어 후진을 양성해 온 김계옥(金桂玉) 교수도 있다. 이 김계옥이 바로 이민영의 지도교수로 이민영에게 25현 가야금의 새로운 기법을 전수해 준 스승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