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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서울대공원, 초가을의 편지

작은 정성이나마 이웃을 위해 내놓는 것이면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67]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달'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달이 바뀌었다고 카톡에 날아오는 계절 축하카드를 뒤로 하고 우리, 곧 나와 집사람은 김밥이랑 물이랑 과일을 배낭에 넣어지고는 버스와 전철을 바꿔타고 멀리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10시 대공원 입구에는 어린아이들 손을 잡은 젊은 부모들로 벌써 인산인해입니다. 사흘 연휴인 데다가 날씨가 너무 좋고 공기도 깨끗해 마치 5월 초 느낌입니다.

 

이들을 따라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근 40년 만에 다시 보는 대공원은 수목이 울창하고 곳곳에 그늘과 쉼터가 있는 아주 좋은 공원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1980년대 초 몇 년 동안 과천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 때 어린이였던 두 아들을 데리고 몇 번 온 적이 있는데 근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다시 보니 서울대공원은 막 개장했던 당시의 썰렁한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풍성한 수목원 같았습니다. 그리고 느티나무 등 몇몇 나무의 잎들은 벌써 가을을 맞는 기쁨을 뺨에 내보이고 있었고요.

 

 

 

동물원 한 가운데를 빙 도는 큰길 바깥쪽으로는 식탁 겸용 야외용 의자들이 많이 마련돼 있어서 어린이들을 동반한 젊은 부부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소풍을 즐기는 광경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공원 입구에서 만난 둘째 아들네 식구들과 함께 이런 의자를 하나 찾아서 자리 잡고, 아침을 거른 아이들과 함께 준비해 온 김밥 등으로 야외소풍의 본맛인 도시락 까먹는 재미를 즐겼습니다.

 

 

입구에서부터 플라밍고랑 기린의 인사를 받으며 들어와 여러 동물을 볼 수 있었지만 부부 모두 입장료 내지 않고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연세를 갖춘(?) 처지라 저는 일일이 동물들을 예전처럼 열심히 보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건너뛰는 편이었는데, 손자 아이들은 모처럼 공원에 나온 할머니와 함께 곤충사를 들어가서는 연신 "여기 있다!"라며 소리를 지르고는, 금방 찾지 못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목을 끌어당겨 그 곤충의 눈높이로 만들어서 확인시켜주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곤충들 집이 어린이들 눈높이에 맞춰 만들어져 있었고요,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눈이 살아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 덕에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진귀한 동물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몸집이 큰 동물들은 마침 잠을 자는 시간인 듯 편하게 사육사 바닥이나 나무그늘에 숨어서 평안한 낮잠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서울대공원의 또 하나의 자랑은 우리들이 짐짓 지나치는 식물원이더군요. 엄청난 면적과 높이에 사람 키의 몇 배가 넘은 거대한 열대식물들이 잘 자라고 있었고, 사막 식물인 선인장류는 색깔이나 형태가 가지각색으로, 정말 색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시서스라는 이름의 식물은 몸에서 가는 국수빨 같은 것을 많이 만들어 늘어트리고 있어서 그 사이를 지나가는 것은 마치 붉은 휘장 사이를 지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많은 식물이 자리잡은 것은 2006년 남산에 있던 식물원이 이쪽으로 완전히 이전하면서 넓고 튼튼하게 집을 지은 데 따른 것인데 이 건물이 옮겨진 이후 이곳을 방문할 기회가 없었으니 이처럼 식물원이 놀라움으로 다가온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제가 손주들과 이곳을 찾은 이유는 좀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어느새 남들이 이야기하는 칠순이 되었습니다만 위로 부모 두 분이 모두 계시는데, 비싼 식당을 찾아서 요란스레 큰 잔치를 받을 수 없어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이 기회에 그동안 같이 놀아주지 못하던 손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자고 했더니 부인과 아들 내외도 대찬성이었습니다.

 

김밥이랑 먹을 것은 우리가 준비했는데 둘째네는 70이란 숫자를 팥고물 가루로 만든 장미꽃 장식의 떡케이크를 준비해 와 그것으로 촛불 없이, 축하노래 없이, 칠순 축하를 받았습니다. 촛불 끄고 생일축하노래를 잘 부르던 손자들은 일부러 중간에 "생일 축하~"라는 멜로디를 부르는 척하면서 어른들을 놀리기도 했습니다. 아쉬운 것은 제가 서양의 생일 축하 노래를 싫어해서 만든 우리 말 우리 멜로디의 생일축하 노래를 같이 부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만. 이렇게 간소하게 축하를 받는 것으로 마음이 편하고 충분했습니다.

 

그동안 이 나이까지 오면서 정말 잘 지내고 잘 먹고 생일축하도 많이 받았는데 이제 칠십이라는, 칠학년이라는 연령층으로 들어가면서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식사비용을 아껴서 만든 작은 봉투를 아들 부부에게 주면서 손자들 이름으로 어디 적당한 데에 기부하라고 했고 이에 아들 부부도 선뜻 좋은 데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가을은 아름답지요. 모든 게 풍요로워 보이고요. 그런데 사실은 이런 겉으로의 화려한 아름다움 뒤에는 여전히 힘든 삶을 사는 분들이 많지요. 갖가지 사연으로 범죄자가 되거나 삶을 등지는 사례도 있고요. 그동안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지만, 사실은 자기나 식구들 입 하나 챙기기에 바빴지, 다른 사람을 위해 제대로 한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고 패션업체 파타고니아 회장처럼 자신의 가진 것을 다 내놓을 수도 없고 하니 그저 생활에서 필요 이상의 사치나 호사를 이제는 그만두고 작은 정성이나마 이웃을 위해 내놓은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구나 하는 각성이 이제야 생긴 듯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해서 이번 가을에 나름대로 사철의 변화로 인생의 길을 알려주는 대자연에게 괜찮은 답장 편지를 한 통 쓴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온 손주들과 그 부모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구절벽이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보고 흐뭇해졌습니다. 애들 보느라 젊은 부모들이 힘들어하면서도 그들 얼굴에 행복한 표정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 보이기도 했고요.

 

여기 이 공원의 풍경에서처럼 우리의 아들딸들은 또 그들의 아들과 딸을 낳아 이 아름다운 나라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으면 하는데, 뭐가 그리 힘든지 다들 혼인도 안 하고 애도 안 낳고 하는군요. 그런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식물원 안에 활짝 핀 극락조 꽃이 우리가 가족을 통해 얻는 기쁨과 즐거움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가을 이런 아름다운 계절을 건강한 가족들과 함께 맞게 된 것을 거듭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