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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이야기할머니를 찾는대요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 듣는 추억을 소환한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82]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며칠 있으면 설이구나. 어릴 때 설을 마냥 기다리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다들 먹는 것이 부실할 때여서 설이나 한가위 등 명절이 되면 큰 집이건 외갓집이건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 인사를 드리고는 곧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어 그날이 기다려졌다. 그런데 그런 달콤한 기억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 듣는 것이었다. 특히 설에는 대부분 날씨가 추우니 미리 초저녁에 군불을 때어 뜨끈뜨끈해진 안방 아랫목에 넓은 이불을 펴고 그 안에 발을 집어넣어 무릎을 맞대고는 할머니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대충 간식도 먹고 나면 우리는 할머니 팔을 붙잡고 흔들며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른다. 곶감을 좋아하던 호랑이, 달순이 별순이 이야기 등 몇 번씩이나 들어서 줄거리를 다 알지만 들을 때마다 재미있었다. 친구들 만나보면 이야기 솜씨가 좋은 할머니들은 별별 이야기를 다 해주신다고 한다. 요즘 우리 손자 손녀가 딱 그때 내가 이야기를 들을 때 나이여서 손주들이 명절에 집에 오면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고 조른다. 할아버지인 나는 말솜씨가 없어 할머니한테 미루면 집사람은 어떻게든 애들을 무릎 앞에 앉히고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그런 명절의 기억이 좋은 추억이 되고, 우리들의 생각이 자연스레 아들 손주들에게 내려가고 이어지는 것이리라. 우리네 집 구조도 바뀌고 생활환경과 습관도 바뀌면서 그런 이야기할머니들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대신 어린이들은 만화책이나 만화영화에 빠지곤 하는데, 그래도 유치원생 때까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이 천성일 텐데, 우리 할머니들도 손주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하지 못하니 이야기 솜씨도 줄고 이야깃거리도 없어진다. 그러다가 이야기할머니를 키우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경북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이 그곳이다.

 

 

자꾸 옛날이야기가 사라지는 현실에서 자상하고 이야기도 잘 해주는 여성 어르신이 유아들에게 우리 옛이야기를 들려주자는 취지로 2009년에 시작되었단다. 이름하여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 국학진흥원은 안동시에서 퇴계의 고향인 도산면 쪽으로 가는 길에 세워져 있는데 처음 30명을 뽑아 이야기하는 자세, 방법, 유아들의 특성 교육 등을 같이 배우고 이를 나누는 식으로 추진한 것이었는데 점차 호응이 좋아서 인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2019년 국회에서 이 사업이 예산감축대상으로 평가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해마다 활동 인원과 수혜 유아 수가 늘어나고 정책수혜자인 이야기할머니와 교사,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은데도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평가방법에 따른 것이었다.

 

예산이 줄어들면 새로운 이야기할머니 뽑는 것과 양성이 어려워지고 활동도 줄어들 수밖에 없음은 불문가지. 그러자 사업을 담당하는 문체부 주무관이 국회의 해당 위원회에 찾아가 위원들을 설득하는 등 적극적인 대처로 예산감축대상 144개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은 물론 다음 해 예산을 오히려 증액받게 됐다는 것이다. 그제야 이 사업의 의미와 당위성을 알게 된 것이리라.

 

 

이야기할머니도 그냥 되는 것이 아니므로 일종의 교육 과정을 거친다. 이야기할머니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과 자원봉사자로서의 마음가짐 교육이 안동의 한국 국학진흥원에서 2박 3일 동안 합숙교육으로 진행되고 이어서 권역별로 한 달에 한 번씩 반년 정도 교육받아 수료해야 한단다. 그런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설이 지난 다음 주부터 이야기 할머니 뽑기 위한 지원을 받는다는 고지를 보았기에 기왕이면 많은 분이 알고 참여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번에 모집하는 이야기 할머니는 15기다. 만 56∼74살의 대한민국 국적 여성 어르신으로 아이를 사랑하고 자원봉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이야기 할머니 사업단 누리집(www.storymama.kr)에서 선발 공고문을 확인한 뒤 2월 24일까지 약 한 달 동안에 지원서를 작성해 우편 또는 온라인으로 제출하면 된다.

 

올해 뽑는 규모는 천 명이다. 지원연령도 그전까지는 56살에서 70살까지였으나 2020년부터 56살에서 74살까지로 지원할 수 있는 나이가 확대되었고 약간의 활동비도 받을 수 있다. 문화소외지역에 파견되는 곳도 대폭 늘어남으로써, 옛이야기를 통해 조손 세대 간의 전통문화를 전하고 정을 나누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이 기존의 유아교육기관 말고도 도서 벽지의 병설유치원, 장애아동시설, 다문화시설, 소아병동 등으로 활동영역이 넓어졌다.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고 유아들이 좋아한다는 이야기이다. 유아들의 인성 함양에는 할머니들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좋은 것이 있을까?

 

나는 어차피 말재주가 없어서 소용도 없고 또 할아버지를 뽑지는 않으니 “나이 든 할아버지는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한탄이나 하며 지낼 수밖에 없지만, 할머니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 하늘은 왜 남자들에겐 말 잘하는 능력을 주지 않았단 말인가?

 

이야기를 잘하시는 할머니들이여 꼭 이야기 할머니 사업단 누리집(www.storymama.kr)에 들려보시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