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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유비가 제갈량 얻은 것은 물고기가 물 만난 격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3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는 판소리 <적벽가> 가운데 화용도 좁은 길에서 만난 조조와 관우의 “살려 달라.”와 “칼 받으라.”의 싸움이 처절하게 펼쳐졌다는 이야기, 조조와 그의 모든 장졸들이 모두 다 꿇어 엎어져, 앙천(仰天) 통곡을 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니 관공의 어진 마음, 조조를 쾌히 놓아주고, 돌아와 공명께 법대로 처벌하기를 요청한다는 이야기, 그런데 공명이 내려와 관우의 손을 잡고 회답하기를 “조조는 죽일 사람이 아닌 고로 장군을 보냈으니 그 일을 뉘 알리요.”라고 답을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판소리 <적벽가>의 주요 대목은 이제까지 소개한 바와 같이 조조와 관우가 만나게 된 화용도 대목을 비롯하여 ‘삼고초려’ ‘장판교 싸움’, ‘군사 설움타령’, 적벽강 싸움‘ 등으로 구분이 되는데, 유파에 따라서는 조금씩 들쑥날쑥하여 일정하지 않다.

 

’삼고초려(三顧草廬)‘ 대목은 글자 그대로 풀밭 속의 오두막집을 세 번째 돌아본다는 뜻으로 숨어 사는 현명한 사람을 임금이 세 번씩이나 찾아가서 만난다는 말이다. 임금을 도와 세상을 이롭게 만들 위인을 얻는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하는 말이다.

 

이 대목은 당대 이름난 유비, 관우, 장비 등 3인이 의형제를 맺고 제갈양의 초려를 찾아가는 대목인데, 장수들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소리꾼의 소리가 웅장하게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에 견주어 장판교 싸움이나 적벽강 싸움 대목에서는 목숨을 건 긴박한 장면이 빠른 자진모리장단으로 그려져 있어서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군사설음‘ 대목이나 ’화용도‘ 대목은 슬픔을 나타내는 계면조 소리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간간히 재담 소리가 들어가 있어서 슬픔 일색의 무거운 분위기를 극적으로 변환시켜 주고 있다.

 

전해오는 말로는 예전부터 사대부들은 <적벽가>를 즐겨왔다고 한다. 이 말은 아마도 다른 소리제와는 달리, 소리꾼이 호령하듯 높게, 그리고 크게 질러내는 소리가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남성들이 좋아했던 소리로 보인다.

 

 

유비가 제갈 양의 초가집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는 ’삼고초려(三顧草廬)‘ 대목은 느린 진양조장단으로 다음의 사설을 위엄 있게 부른다.

 

<진양조> “당당한 유현주는 신장은 칠척 오촌이요, 면여관옥하고, 자고기이허여 수수과슬이라. 오모 흉포의 쌍고검 비켜차고, 적추마 상에 뚜렷이 앉은 거동, 태조의 기상이요,”

 

이상, 유비의 모습을 그리는 대목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서 한자를 병기해 가며 이해를 구해 보기로 한다.

 

면여(面如)관옥(冠玉)은 ’얼굴이 잘 생기고‘, 자고기이(自顧其耳)는 ’두 귀가 어깨까지 닿아‘, 수수(垂手)과슬(過膝)이라.(팔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다는 표현). 오모 흉포(검은 두견)의 쌍고검 비켜차고, 척추 마(온몸이 붉고 검은 말)상에 뚜렷이--( 아래 줄임).

 

관공 위엄 보거드면, 홍안(紅顔)봉목(鳳目)(불그레한 얼굴과 봉황처럼 총명한 눈), 삼각수(三角鬚)(두빰과 턱에 난 수염이 삼각형을 이룸) 쌍봉 투구(봉황 한 쌍을 조각한 투구), 몸에 난 녹포(푸른 도포) 은갑이라, 청룡도 비껴들고, 적토마(조조가 관우에게 준 붉은 빛깔의 날랜말) 상에 앉은 거동, 위풍이 늠름하고,

 

장비 위엄 보거드면, 곰의 등, 표범머리, 먹강(먹을 갈아부은 듯 검은 얼굴), 쌍고리눈, 제비텍(턱), 따박 수염, 몸에 난 앵무 전포(앵무새 같은 노란 전포), 머리에는 녹건(푸른 비단으로 만든 건)이라. 장팔 사모장창(蛇矛長愴),(창끝이 세모로 된 긴 창), 눈 우으 솟겨 들고 흑총마 상에 앉은 거동, 명장일시 분명쿠나.

 

<아니리> 동자가 나오거늘, “선생이 계옵시냐?”

동자 대왈, “이제야 도산하야 서책을 보시다 초당 춘수(春睡, 봄에 춘곤증으로 인해 오는 느른한 잠) 깊었사오니 기침(起寢)키 어렵사옵니다.” “오 그러면 고(告)치 말라.” 현덕이 팔짱끼고 제하에 서 있을 제,

<잦은 중몰이> 익덕의 성질은 급한지라, 고리눈 부릅뜨고 검은 팔을 뒤걷으며 고성대갈 왈, “아, 우리 가가(형)는 금지옥엽(金枝玉葉)이라. 저만한 사람을 보랴 허고 삼고초려 지극커늘, 저렇게 거만을 부려? 저놈의 초당을 패여 무찌르고, 한 끄럼지(꾸러미의 방언) 불을 쌓아 바싹 지르면, 공명의 재주가 있다니, 참말인가? 가수(假睡)(거짓으로 자는 체 함)인가? 자나 깨나, 죽나 사나, 보리라!”

누구보다 성질 급한 장비를 화나게 만든 사람, 손님들을 세워놓고 낮잠을 즐기고 있는 초려의 젊은 주인은 누구인가?,

 

그가 바로 제갈량(諸葛亮)이다. 자는 공명(孔明)으로 낭야군 양도현에서 태어난 호족 출신이었으나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형주(荊州)에서 숙부의 손에서 자랐다. 융중이란 마을에서 학문(學文)과 농사로 소일했다고 하는데, 형주라는 지역은 전란을 피해서 몰려든 문인(文人)들이 많아 이들과 교류하면서 점차 20대 중반의 나이에 재야의 현인(賢人)으로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와룡선생으로 일컬어졌다.

 

당시 유비는 여남에서 조조에게 패한 뒤, 유표(劉表)에게 의탁하고 있다가 제갈량의 명성을 듣고, 직접 찾아와 제갈량을 자신의 모사로 두게 되었는데, 이때 만들어진 고사(古事)가 그 유명한 삼고초려(三顧草廬)인 것이다. 유비는 제갈량을 얻은 것을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水魚之交]에 비유하였다고 한다.

 

공명은 유비의 참모로 출사하게 되는데, “선제께서 신(臣)을 비루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세 번이나 초려를 찾아주시고, 신에게 친히 형세의 일을 물으시니 신은 감격하여 몸을 바치리라 결심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는 유비(劉備)를 도와 오(吳)나라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曹操)의 대군을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대파하였다.(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