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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얼음 먹는 궁궐 잔치, 얼음 뜨던 백성 몰라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84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滿堂歡樂不知暑   왁자지껄 떠드는 이들 더위를 모르니

誰言鑿氷此勞苦   얼음 뜨는 그 고생을 그 누가 알아주리.

君不見                그대는 못 보았나?

道傍갈死民         길가에 더위 먹고 죽어 뒹구는 백성들이

多是江中鑿氷人  지난겨울 강 위에서 얼음 뜨던 자들이란 걸.”

 

 

위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얼음 뜨는 자들을 위한 노래(鑿氷行)”이란 한시 일부입니다. 입추가 지났지만, 말복이 아직 남아 불볕더위가 여전합니다. 예전 냉장고가 없던 조선시대엔 냉장고 대신 얼음으로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한겨울 장빙군(藏氷軍)들이 한강에서 얼음을 떠 동빙고와 서빙고로 날랐는데 이들은 짧은 옷에 맨발인 자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저장된 얼음은 한여름 궁궐의 임금과 높은 벼슬아치들 차지였는데 그들은 얼음을 입에 넣고 찌는 듯한 여름에도 더위를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때 길가에는 굶주리고 병들은 채 죽은 백성들의 주검이 나뒹굽니다. 그리고 그 죽은 백성은 지난겨울 맨발로 얼음을 뜨던 백성이었음을 그들은 알 리도 없고 관심도 없음을 시인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김창협은 숙종 때 대사성 등의 관직을 지냈으나, 기사환국으로 아버지 수항이 사약을 받은 뒤 관직도 사양하고 숨어 살았지요. 그는 문학과 유학의 대가로서 이름이 높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