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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11월의 독립운동가, 서상교ㆍ최낙철ㆍ신기철 선생

항일의 불씨를 살려간 학생독립운동가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중일전쟁 이후 학생비밀결사를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이어간, 서상교(1963년 독립장), 최낙철(1963년 독립장), 신기철(1990년 애족장) 선생을〈2023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라고 밝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언론ㆍ집회ㆍ출판ㆍ결사가 금지되었으며, 일제의 감시와 탄압, 수탈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이어가다 모진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때의 대표적인 학생독립운동 인물이 서상교ㆍ최낙철ㆍ신기철 선생이었다.

 

대구 출생의 서상교(1923년) 선생은 대구상업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2년 5월, 김상길ㆍ이상호와 함께 항일비밀결사인 ‘태극단’을 조직, 민족의식을 드높이고 학술 연구, 체력 향상 등의 활동에 나서는 한편, 군사학에도 관심을 두고 관련 서적의 번역, 폭발물 제조에 관해서도 연구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밀고로 단장 이상호가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었으며, 그의 집에서 태극단 관련 문서가 발견되어 서상교 선생을 비롯한 26명의 단원 모두가 체포되면서 태극단은 와해 되었다.

 

선생은 1944년 대구지방법원에서 “일본제국의 국시[國是]를 반역한 국적[國賊]”이라고 분개하는 판사로부터 검사가 구형한 단기 4년 이상 장기 7년보다 높은 단기 5년 이상 장기 7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무주 출생의 최낙철(1921년) 선생은 대구사범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1년 1월, 임병찬 등과 함께 독립에 대비한 학문 연구와 민족의식 드높이고, 교사로 부임한 뒤 조선 학생들을 민족의 지도자로 양성하기 위한 항일비밀결사 ‘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연구회 회원들 모두 졸업을 앞둔 5학년인 관계로 활동에 어려움이 있어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인 문예부와 통합하여 ‘다혁당’을 조직하였다. 이를 통해 조선 역사 서적 등 윤독과 문맹 퇴치와 민족의식 드높이기 위한 야학 개설, 그리고 독립전쟁에 대비한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최낙철 선생은 1941년 3월 졸업한 뒤, 함경북도 나진의 약초공립국민학교에 부임한 후 대구사범학교의 학생비밀결사가 적발되면서 체포되었다. 이후 1943년 11월 30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춘천 출생의 신기철(1922년) 선생은 춘천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8년 2월, 조선의 독립을 준비할 목적으로 결성(1937년 3월)된 항일비밀결사인 ‘상록회’에 가입하였다. 상록회는 ‘조선 민족의 해방과 참된 조선인의 양성, 회원의 단결심의 양성 훈련’을 위해 별도의 독서회를 조직, 농촌계몽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신기철 선생은 1938년 10월, 상록회 회장 겸 서적계 책임을 맡게 되었으며, 기독교 예배당에 모여 학교에서의 일본인과 조선인 차별대우를 비롯해 농촌문제와 관련한 일본 당국의 시정 요구를 위한 회의를 주도하였다. 그러던 중 1938년 가을, 상록회가 경찰에 적발되면서 졸업생을 포함 137명이 체포되고 36명이 검찰에 송치되었으며, 신기철 선생 등 12명은 1939년 12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하였다.

 

1937년 이후 서상교ㆍ최낙철ㆍ신기철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선열이 학생비밀결사를 결성하여 활동하다가 옥고를 치르거나 순국하는 등 자신을 희생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한 덕분에, 독립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역사는 끊어지지 않고 계승될 수 있었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서상교ㆍ최낙철 선생에게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신기철 선생에게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