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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이제 정말 봄날이 가네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5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지고, 산벚꽃 철죽이 피고 지고, 아카시아 꽃도 피고 지고, 그다음엔 진한 향기의 찔레꽃이다. 뻐꾸기도 운다. 그 많은 꽃의 습격이 다 지나가고 연두색 봄날은 짙은 녹색으로 변하면서 이제 우리 곁을 떠나려 하는구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사람들, 특히나 중년 이상의 남성들은 봄이 좀 가면 막걸릿잔이라도 앞에 놓고 이 노래를 듣고 가사를 따라 부르곤 한다. 봄이 가는 것이 괜히 서글픈 까닭에서이리라.​

 

가수 백설희 씨가 1953년에 발표한 이 노래는 작사가가 누군지 작곡가가 누군지는 상관도 없이 그저 이미 대한민국의 봄을 맞이하고 보내는 사람들의 심사(心思)를 대신하는 노래로 사람들의 심금을 파고들었다. 당시는 6ㆍ25전쟁으로 사회 전반이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 이런 때에 봄날의 아련한 풍경이 전쟁에 시달린 사람들의 한을 살포시 담아서 풀어주었고 그것이 계속 사람들을 통해 계속 명곡으로 사랑을 받아온 이유라고 분석하던데 그것은 옛날 이야기이고 이제는 중년 이상의 남성들이 겨우내 고생하다가 봄이 되어 살만한데 어느새 봄이 가느냐며 이 노래에 마음을 담는 것 같다. 무려 70년의 인기다.

 

거기에 2009년 계간 《시인세계》에서 현역 시인 100명에게 '시인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을 조사했는데, 압도적인 지지로 1위에 오른 적도 있어 더욱 더 기억되었을 것이다. 특히나 중간 부분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이란 대목에 이르러서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아저씨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에게 '봄날은 간다' 노래의 직접적인 추억은 10여 년 전 인사동에 있던 작은 카페 '평화만들기'에서 비롯되었다. 부산의 직장 앞에 있던 작은 한식집 여주인의 친동생이 서울에서 평화만들기 카페를 한다고 해서 찾아가니 여동생은 어디론가 가고 다른 주인이 있었는데, 그 카페에서 '붐날은 간다'라는 노래가 당시 유명한 가수들의 목소리로 차례로 계속 나왔다. 그것을 듣느라고 시간도 보내고 맥주도 많이 마셨다. 그때 카페 여주인에게 이 CD를 복사해 줄 수 있느냐고 하니까 감사하게도 CD의 복제판을 전달해 주셔서 한참 열심히 듣게 되었다.

 

그 전이라고 안 들은 것은 아니로되 그때부터 가까이에서 자주 들으며 그 정서를 나와 일체화하기 시작한 셈이다. 그때 당대의 가수 12명이 각자 자기식으로 부른 것이었는데, 이제는 유튜브 등에서 보면 그 이상으로 많은 분이 이른바 리메이크로 부른 것으로 나온다. 남녀 불문 모두 이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대한민국 가수가 아닌 것처럼 생각될 정도가 된 것 같다. 그러니 이 무르익은 봄날은 한국 남성들, 아니 여성들도 가히 '봄날은 간다'란 노래로 먹먹한 가슴을 뚫어주는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러다가 며칠 전에 전혀 새로운 풍으로 '봄날은 간다'를 듣게 되었다. 젊은 여성이 부르는 그 노래도 꽤 좋다는 느낌을 받아서 여러 번 찾아 듣게 된다. 바로 김윤아라는 여가수가 2001년 개봉된 이영애, 유지태 주연의 영화 《봄날은 간다》의 엔딩 타이틀곡으로 부른 노래다. 영상에 실린 노래 가사가 아주 가슴을 파고든다. ​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그건 아마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이 노래를 작곡한 사람이 일본의 유명한 여성 싱어송 라이터라는데 노랫말은 자우림의 구성원인 김윤아 씨가 붙였다고 한다. 들어보면 아련한 봄날의 가슴 시린 감정들이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처럼 굽이쳐 흐르며 귀를 파고 든다. 한국인의 노랫말과 일본인의 노래곡이 이렇게 만나서 감동스럽게 나온 것이 많지 않기에 이 노래가 의미가 있다고 하겠는데, 그런 상황보다도 노랫말 하나하나에 담긴 우리네 감성들, 특히나 젊은이들에게 공감되는 아련하고 애절한 부분들이 많으니 아마도 사랑을 받을 것이다.

 

이런 좋은 노래를 왜 나는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듣게 되었을까 하며 알아보니 이 노래가 나와 인기를 끈 것이 2001년이지, 그때는 내가 외국에서 근무하느라 국내에서 벌어진 이런 문화적인 큰 사건(?)을 알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는 말로 스스로 둔감함을 변명해 본다,

 

 

노랫말에서 보면 사람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워서 슬픈 존재라는 부분이 옛날 우리 나이든 남성들이 좋아하던 봄날은 간다의 가사와는 성격이 다른, 현대적인 젊은 어휘를 잘 선택한 것이 더 끌리게 하는 것 같다. 이제 이 노래를 들으며 보내는 봄날은 더 슬프고 애잔하다. 연인이 되든 친구가 되든 좋아하는 사람과의 원하지 않는 이별이라는 것이 깔려 있기에 그 노랫말이 더 강하게 밀려온다고 하겠다.

 

참으로 이 노랫말은 우리 가슴에 잠겨있던 불안한 진실, 곧 사람이나 사랑은 그것이 너무나 아름답기에 흘러갈 것인 것을 정확하게 찝어냈다고 하겠다. 사랑은 흘러갈 것이라는 슬픔을 안고 있기에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노래는 나아가서 소중한 것들을 계절처럼 흘려보내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자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고 짐짓 냉정한 척 말하고 있다.

 

그렇게 20년도 더 된 노래를 이제야 좋다고 듣는 한심한 이 사람은 그래도 눈앞으로 지나가는 봄날을 그냥 허비하지 않고 느끼고 생각하고 털어버리는 원초의 기회를 마련해 주신 작사자 손노원 씨, 작곡가 박시춘 씨, 그리고 이를 아름답게 불러주신 백설희 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처음 노래를 부르신 백설희 씨가 14년 전 5월, 이 좋은 봄에 돌아가셨으니 결국 이분들도 피고 지는 꽃처럼 아름다운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네 삶은 봄처럼 짧은 것이기에 지나면서 늘 슬픈 것인데 예술가들은 그런 것들을 시공간(時空間)에서 잡아내어 예술로 표현해 주니 우리들은 그것을 삶의 동행자로 삼아 그 예술과 대화하며 같이 걸어가는 것이리라. 뒤늦게 배운 김윤아의 노래, 그 아련한 노랫말을 다시 들어본다.

 

 

가만히 눈감으면 잡힐 것 같은

아련히 마음 아픈 추억 같은 것들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피고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이야기

봄날은 가네 무심히도 꽃잎은 지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사람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