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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선시대, 장애인도 정승 반열에 올라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94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조선시대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과 복지정책은 오늘날보다 훨씬 선진적이었는데 장애가 있어도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벼슬을 할 수가 있었지요. 예를 들면 조선이 세워진 뒤 예법과 음악을 정비하고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공을 세운 허조(許稠, 1369~1439)는 어려서부터 몸집이 작고 어깨와 등이 구부러진 꼽추였습니다. 하지만 허조는 태종이 선위할 때 '이 사람은 내 주춧돌이다.'라며 적극적으로 추천했고 결국 세종은 그를 좌의정에 올렸지요.

 

허조는 자기관리가 매우 철저했음은 물론 뇌물, 축재, 여색 등 부정부패와는 정말 완전히 담을 쌓은 벼슬아치였습니다. 자타공인 청백리인 맹사성조차 흑역사가 있었을 정도였지만, 허조는 정말 탈탈 털어도 먼지 한 톨 안 나오던 인물이었다. 이런 철저한 청백리 기질 때문에 조말생이 거액의 뇌물로 치부한 사건이 드러났을 때 세종이 파직하는 걸로 사건을 덮으려 들자 가장 강력하게 맞서서 조말생의 처형하라고 했을 정도였지요.

 

 

그 밖에 간질 장애인이었던 권균(權鈞, 1464~1526)은 이조판서와 우의정에 오르고 영창부원군에까지 봉해졌으며, 사팔뜨기였던 번암 채제공(蔡濟恭)은 영의정에까지 올랐는데 조선 사회의 사회분위기는 장애인에게 긍정적이었습니다.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洪大容)은 《담헌서》에서 “소경은 점치도록 하고, 벙어리와 귀머거리, 앉은뱅이까지 모두 일자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장애인을 무조건 집안이나 복지시설에 가둬두고 장애 수당만 지급하면 끝이라는 오늘날에 견줘 조선시대 장애인에겐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