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이 뜨거운 여름 어제(23일) 내내 일본 열도를 달구는 뉴스가 있었으니 바로 '여름 고시엔'으로 불리는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이야기다. 여기서 최종 우승자는 다름아닌 재일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그 우승컵을 높이 치켜들었다. 교토국제고는 23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린 제106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간토다이이치고를 연장 끝에 2:1로 꺾었다. 제대로 된 야구 구장 하나 없는 재일동포 고등학생들이 올린 쾌거는 그야말로 재일동포는 물론 고교 야구를 사랑하는 일본인들에게도 감동을 주었다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본교는 1947년에 재일 한국인의 자녀를 위한 중학교로 설립되어 1963년에 고등학교를 증설하여 교토에서 재일 동포의 민족교육의 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2004년에 일본 정부가 인정하는 일조교(日朝校, 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의 학교)가 되어, 교명을 교토국제중학교・고등학교로 바꾸었습니다. 건학 이래의 교육목표인 세 가지 정신 '자존', '연마', '공생'은 현재도 변함없이 인권존중과 공생사회의 실현을 짊어질 풍부한 국제성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는 것을 교육의 기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유사 이래 한국과 일본은 깊은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한때 불행한 시기도 있었습니다만, 이웃 나라로서 앞으로 더욱더 우호를 다져 나가야 합니다. 진정한 우호는 상호이해 없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국제 학교가 된 이후 일본 학생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본교에서 일상적인 학교생활에서 학생들은 다른 문화와 접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라는 인생에서 가장 감수성이 뛰어난 이 시기에 겪는 경험들은 향후 국제인으로서 사회에서 활약할 때의 초석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조금 길지만 교토국제고 누리집(https://kyoto-kokusai.ed.jp)에 있는 이융남 이사장의 인사말을 그대로 옮겨본다. 인사말에서 보듯이 교토국제고의 설립 목적이 뚜렷하다. ‘재일동포의 민족교육의 장’으로 설립된 교토국제고의 정식 이름은(京都国際中学高等学校)다. 어제 고시엔 야구 승리를 계기로 교육목표인 <자존, 연마, 공생>을 이룬 것 같아 피땀 흘린 선수들과 이들을 훌륭히 키운 학교에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시설 좋은 현대식 훈련장에서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훈련한 쟁쟁한 상대를 물리친 교토국제고 야구부 학생들이 더욱 칭송을 받는 것은 ‘열악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환경’을 극복한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실제로 학교 측은 “학생들이 타격 연습 시에 보통의 타격을 하면 바로 공이 그라운드 밖으로 나가 주차장에 있는 차에 부딪히기 때문에 낮고 강한 공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 연습경기는 커녕 자유타격이나 내외야 연계 연습조차 할 수 없었다.”라고 했다.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서도 교토국제고 야구부 학생들은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실력을 ‘연마’ 한 덕에 일본 으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것은 학생 자신들은 물론 재일동포 전체의 ‘자존감’을 한 없이 드높인 일이었다. 오로지 정정당당한 실력으로 이룬 우승이기에 일본의 여러 고등학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공생’의 길을 튼 것이기도 했다. 교육목표인 <자존, 연마, 공생>을 실력으로 드러낸 교토국제고 야구부 학생들과 코치와 감독을 비롯한 전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하나된 응원도 빼놓을 수 없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교육목표도 야무지지만 교토국제고가 더욱 주목을 받은 것은 이 학교의 교가다.
“동해 바다 건너 야마토(大和) 땅은 /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 아침 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1절-
“야마토 땅은 고대 한국땅” 이라는 내용의 한국말 교가가 일본의 공영텔레비전인 NHK에서 울려퍼지는 것을 본 일부 일본인들의 ‘혐한 표현’이 서슴없이 나왔다고 일본 언론들은 보도했다. “왜 일본내에 있는 학교에서 일본어로 교가를 부르지 않고 한국어로 교가를 부르냐?”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그런 것은 철없는 투정이다. 국제고등학교란 말 그대로 일본어만 써야 할 이유가 없는 곳이다. 일본어, 한국어, 영어, 중국어...그 어느 말로도 소통이 가능한 국제적인 인재를 육성하는 곳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교가 역시 영어로 부르든 한국어로 부르든 그것은 그 학교(교토국제고)에 맡겨야하는 것이지 트집을 잡을 일은 아니다.
일본의 모든 고교야구선수들이 꿈꾸는 고시엔 승리를 이뤄낸 교토국제고, 1990년대 학생수 급감으로 폐교 위기까지 몰렸던 교토국제고는 1999년 야구부 창단을 계기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야구부원들은 모두 재일동포가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온 일본인 학생들이 많지만 이들은 국적과 상관없이 한국어 교가를 함께 힘차게 부르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앞으로 제2, 제3의 재일 민족학교들도 야구부를 비롯한 스포츠를 통한 ‘공생(共生)’의 길을 열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