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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사장님은 K 교수만 바라보고 있는데요

이뭐꼬의 장편소설 <꿈속에서 미녀와> 3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레이브 할아버지가 바둑을 배운 뒤에 체스를 그만둔 까닭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바둑판은 가로세로 19줄이니까 모두 361개의 교차점이 만들어진다. 체스는 가로세로 8줄, 그러니까 모두 64개의 교차점이 만들어진다. 당연히 바둑이 체스보다 훨씬 변화가 많고 재미있다. 바둑 모임 회장인 브라운 씨는 논리학 교수답게 바둑과 체스를 비교하는 흥미로운 글을 시러큐스 대학 학생회에서 발행하는 일간 신문(The Daily Orange)에 기고한 적이 있다. K 교수는 그 글을 우연히 읽어 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첫째, 바둑은 시간이 갈수록 판이 채워지는데 체스는 시간이 갈수록 판이 비워진다. 알다시피 체스는 상대방 말을 하나씩 잡으면 판에서 내려놓는다. 물론 바둑에서도 무리진 돌들을 포위하여 잡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바둑판에는 돌이 많아지고 공간이 적어진다.

 

둘째로, 바둑에서 죽은 돌은 게임이 끝나면서 상대방 집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곧 죽은 돌 하나가 한 집과 맞먹는 역할을 한다. 체스에서 죽은 돌은 임무가 끝난다. 그러나 간혹 졸(pawn)이 상대방 진지 끝줄까지 전진하면 죽은 말 하나를 다시 살려서 쓸 수가 있다.

 

셋째로, 바둑은 돌을 배치하여 진지를 구축하는 게임이고 체스는 말을 전략적으로 이동시키는 게임이다. 우리말로는 뜻이 모호한데, 영어로 표현하면 ‘game of positioning’과 ‘game of strategy’라고 표현을 했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바둑은 정착 생활을 하는 농경민족의 게임이고 체스는 이동 생활을 하는 유목민족의 경기다.

 

넷째로 바둑에서는 하수와 고수의 실력 차이를 살펴 하수가 돌을 몇 개 먼저 놓고서 접바둑을 둔다. 체스에서는 고수가 말(기물이라고 한다)을 몇 개 떼고서 하수와 게임을 한다.

 

1997년에 체스 세계 챔피언인 러시아의 카스파로프는 IBM에서 만든 ‘딥 블루(Deep Blue)’라는 이름을 가진 컴퓨터와 시합을 벌였으나 패배했다. 그 뒤로도 인간 체스 챔피언은 연거푸 컴퓨터에게 지고 말았다. 그러나 바둑에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바둑이 더 복잡하고, 논리적인 판단보다는 직관적인 판단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체스에서 카스파로프를 패배시킨 컴퓨터 연구자들은 그 뒤 20년 동안 꾸준히 바둑 프로그램을 발전시켰다. 2016년 3월에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는 당시 세계 최고의 실력자인 이세돌 9단과 5번기 대국을 벌였다. 놀랍게도, 이세돌은 알파고에게 1:4로 패했다. 다음 해인 2017년 5월에 중국의 바둑 천재 커제 9단이 알파고에게 도전하였지만 3:0으로 완패했다. 이제는 바둑계에서 인공지능을 이길 수 있는 인간 기사는 아무도 없다. 앞으로도 인간 기사는 인공지능을 영원히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바둑 이야기를 하다가 언뜻 고개를 들어보니 미스 K가 카운터에 서 있다. 미스 K를 먼저 발견한 K 교수가 눈으로 미소를 던지자 미스 K가 거울처럼 반사한다. 미스 K가 교수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사뿐사뿐 걸어왔다.

 

미스 K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언제 오셨어요?”

“아이고, 하마터면 미녀를 보지도 못하고 갈 뻔했네요.” K 교수가 말했다.

“그래서 제가 달려왔잖아요.”

“누구를 보려고요?” ㅍ 교수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세 분 교수님을 보려고요.” 미스 K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닌 것 같은데요. 사장님은 K 교수만 바라보고 있는데요.” ㅎ 교수가 이의를 제기했다.

“어떻게 아셨죠?” 미스 K가 부정하지 않고 물었다.

“감정은 숨길 수가 없지요.” ㅎ 교수가 노골적으로 발언했다.

“그게 아닌데... ” K 교수는 약간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부인을 했다.

“아니, K 교수가 얼굴 빨개졌네.” ㅍ 교수가 놀렸다.

“그럴 리가 있나!” K 교수가 서둘러 변명했다.

 

그러다가 다른 손님이 들어오자 미스 K는 주문을 받으러 이동했다. 조금 뒤에 강의시간에 늦지 않기 위하여 일행은 일어섰다. 세 사람이 일어서는 것을 본 미스 K는 경쾌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더니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손님이 많아서 대접이 소홀했습니다. 다음에 꼭 오세요.”

“네, 그러지요.”

 

미스 K는 아쉬운 듯 문밖에까지 나와서 세 교수를 배웅했다. K 교수는 두어 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미스 K가 문 앞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K 교수는 손을 흔들었다. 미스 K도 따라서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오고 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