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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좋은 새김무늬질그릇 발견된 요동 간도가 우리 민족의 고향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그릇일 겁니다. 원시사회에서 그릇은 중요한 도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도구로 자리 잡은 것이 바로 그릇입니다.
쇠로 만든 그릇, 나무로 만든 그릇,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 구리 합금으로 만든 그릇, 새로운 금속으로 만든 그릇 등 그릇을 만드는 재료도 무척 다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중에서도 흙으로 만든 그릇을 대부분 쓰고 있고, 가장 아름다운 그릇들 역시 흙으로 빚은 것입니다.
인류가 흙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하던 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간돌시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보다도 더 먼저 썼을 수도 있지만 아직 유물로는 발견된 것이 마땅치 않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기 어렵습니다.
신석기 시대란 돌을 갈아 쓰던 간돌시대를 말합니다. 간돌은 한자로 쓰면 ‘마제석기(磨製石器)’라고 합니다. 쉬운 ‘간돌’을 놔두고 ‘마제석기’라고 어렵게 하니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이도 힘들기는 마찬가집니다.
이 시대에 그릇은 매우 잘 만들어졌습니다. 주로 저장을 위한 그릇들이었지만요. 서울 암사동에 가면 이 시대 사람들이 살던 주거지는 물론 그릇을 보관하던 구덩이들도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그릇들을 설명하면서 일본식 사고방식에 길들여 엉터리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일본에는 애석하게도 한국처럼 다양한 무늬를 새긴 질그릇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중국에도 없는 우리의 고유문화지요. 새김무늬를 일본식 한자로 ‘즐문(櫛文)’이라 하고, 질그릇을 일본식 한자로 ‘토기(土器)’라고 합니다. 즐문은 우리가 잘 아는 ‘빗살무늬’로 해석하곤 하지요. 빗으로 그어 만든 무늬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무늬를 새긴 질그릇들이 많은 곳에서 발견되고 무늬도 다채로워지면서 요즘은 ‘새김무늬그릇’이란 용어를 많이 씁니다. 빗으로 그었는지 쐐기로 그었는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지요. 다만, 간돌시대 사람들은 그릇에 무늬를 새기면서 원하는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무늬를 새긴 원인을 엉뚱한 사람들은 ‘내구성을 강화하기 위하여’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이는 정말로 엉터리 생각입니다. 선을 그릇에 그었다고 그릇이 튼튼해지는 일은 없습니다. 무늬는 당시에 그릇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바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한 것입니다. 당시 사회의 예술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요.
또 남한의 엉뚱한 학자들은 우리의 새김무늬 그릇들이 밑이 뾰족한 것을 두고 구덩이에 심으려고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는 유치한 생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밑이 뾰족한 것은 아직 바닥을 만드는 기술을 익히지 못한 탓입니다.
같은 시대 동북지역 그릇들은 바닥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곳은 고조선의 중심지였고 이전에는 배달국의 중심지였으며, 더 이전에는 한국의 중심지였던 곳이지요. 북쪽에는 이미 바닥이 평평한 그릇들이 나오는 시점에 남한에는 끝이 뾰족한 그릇들이 있는 것이지요. 이는 기술이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릇을 만들 때 바닥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도전해 보세요.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새김무늬 그릇들이 우리나라와 유적학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남북한과 간도 요동지역 몽골 중앙아시아를 거쳐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노르웨이 지역까지 새김무늬 그릇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새김무늬 그릇은 우리 민족의 무역 경로나 문화경로, 이동경로를 말하는 이정표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지역 외에서는 새김무늬그릇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일본식 말인 ‘빗살무늬토기’ ‘즐문토기’란 말보다는 ‘새김무늬질그릇’을 사용해야 합니다. 남한의 새김무늬질그릇만 이야기 하지 말고 북한과 간도지역 더 나아가 요동과 몽골 아무르강 유역의 새김무늬질그릇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고향은 한강도 낙동강도 아닙니다. 요하와 대능하 송화강이 있는 곳이 바로 우리 민족의 고향입니다. 다음에는 고인돌과 고조선의 경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렵니다.
독자 심순기 / 한국체험학습교육협의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