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어떤 나라일까요? 많은 사람들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생각들이 존재하겠지만 대체로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던 나라’라는 생각하는 분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런 고구려를 ‘창조 고구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다들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고구려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창의성이 매우 활발해 ‘창조 고구려’라고 불러야 되는 그런 나라입니다. 무엇이 고구려를 창조 고구려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몇 가지 예만 들겠습니다. 가장 먼저 고구려의 창의적 생산품은 무엇일까요? 떠 올려 보세요. 고구려성의 옹성이나 치는 이미 고조선 시절부터 있었던 것이니 그것은 예외로 치겠습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등자가 있습니다. 바로 말 발고리이며, 현대 기마문명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품이기도 합니다. 이 등자를 한 때는 한나라 유물이다 몽골유물
고조선에 천신신앙(하느님을 숭배하는 신앙)이 있었다. 유목족이나 유럽, 아랍(이스라엘)과는 달리 격식을 갖춘 제물로 천제를 지냈는데, 산 높은 곳에 제단을 쌓고 제례의식을 거행했다. 중국의 문헌에는 “혈구 가운데 제단을 쌓고 천제를 봉행했다”고 나타난다. 특이한 것은 제단의 형태다. 천제를 지내는 곳은 네모나게 만들고, 사람들이 모인 곳의 담장은 둥글게 만들었다.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지는 이러한 천신교를 이어받은 대종교에는 원방각이란 개념이 존재하는 데 바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고 사람은 세모나다”란 것이며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고조선이란 이름이 사라진 뒤 그 땅에는 수많은 나라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그 당시의 역사를 기록한 문헌을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고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이어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들은 중국
단기 2225년(서양 기원전 108년) 대한민국과 중국의 한판 전쟁이 막을 내렸다. 무려 1년에 걸친 긴 싸움은 조선의 패배였다. 조선이 문을 닫고 여러 개의 나라로 갈라졌으니 겉으로만 본다면 분명한 패배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땅에서 치러진 전쟁이 아니라서 한나라의 직접 피해는 없었던 대신 전쟁의 결과는 그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무엇보다도 중국인들에게 이 전쟁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어찌해 보기 어렵다는 자괴감을 심어준 결과를 낳았다. 조한전쟁은 당시 한나라가 북방을 다시는 침략하지 못하게 한 전쟁이었다. 아마 중국인들에게 그처럼 참혹한 전쟁은 치우와의 탁록대전 이후 처음이었을 것이다. 조한전쟁의 시작은 무역에서 시작됐다. 자본주의 경제 관점이 발달한 조선에서는 중계무역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이러한 조선의 발달을 시기한 일본이나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한나라는 조선을 침입할 명분으로 ‘무역의 방해’를 들고 나섰다. 한나라는 먼저 사신 섭하를 보내 조선과의 중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섭하는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배웅하던 조선 ‘비왕’을 살해
누구나 알다시피 단군이 세운 나라가 고조선입니다. 4345년 전 단군은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건국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록이 삼국유사에만 전해지고 있어 한때 우리 국민은 이를 날조된 신화로 치부하고 부정했지요. 고조선은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이 만들어지고 세계의 히트상품도 만들어낸 그런 나라입니다. 고조선 최대의 히트상품은 재미있게도 고인돌입니다. 무덤이죠. 독특하게도 이 고인돌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무덤양식이 됐습니다. 고조선 시대에 유행하던 무덤 고인돌은 특이하게도 모두 잘 만들어진 고인돌들이라는 것입니다. 네모 반듯하게 만들어진 것은 물론 별자리가 새겨지고, 그림이 그려진 것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네모 반듯한 고인돌은 오로지 요동 부근에만 있습니다. 요동에서 멀어질수록 고인돌의 형태도 달라집니다. 부여 전통문화학교 교장이었던 김병모 선생의 주장처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
질 좋은 새김무늬질그릇 발견된 요동 간도가 우리 민족의 고향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그릇일 겁니다. 원시사회에서 그릇은 중요한 도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도구로 자리 잡은 것이 바로 그릇입니다. 쇠로 만든 그릇, 나무로 만든 그릇,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 구리 합금으로 만든 그릇, 새로운 금속으로 만든 그릇 등 그릇을 만드는 재료도 무척 다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중에서도 흙으로 만든 그릇을 대부분 쓰고 있고, 가장 아름다운 그릇들 역시 흙으로 빚은 것입니다. 인류가 흙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하던 시기는 분명치 않지만 간돌시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보다도 더 먼저 썼을 수도 있지만 아직 유물로는 발견된 것이 마땅치 않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기 어렵습니다. 신석기 시대란 돌을 갈아 쓰던 간돌시대를 말합니다. 간돌은 한자로 쓰면 ‘마제석기(磨製石
역사문화 체험학습을 하다 보면 부딪치는 문제가 바로 역사의 영역에 대한 것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역사 영역과 실효영토가 다른 나라입니다. 그래서 국민도 많이 혼동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서 유아시절부터 수많은 책을 통해 만나고 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교과서 국사로 다시 역사를 배웁니다. 수능에서 필수가 아니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많은 역사교육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국민은 한국의 역사에 대해 잘 모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크게 3가지의 역사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과연 어떤 역사를 대한민국의 역사로 생각하나요? 1. 휴전선 이남의 역사(임진강 이남) / 신라의 역사 휴전선 이남은 현재 대한민국이 지배하는 실효 영토입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 나라의 역사와 영토는 같은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주된 역사와 다르면 변방사나 소수민족의 역사로 규정합니다. 현재 중국의 행태가 그런 것이지요. 대한민국에서도 그러한 역사관이 점차 뿌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