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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2225년(서양 기원전 108년) 대한민국과 중국의 한판 전쟁이 막을 내렸다. 무려 1년에 걸친 긴 싸움은 조선의 패배였다. 조선이 문을 닫고 여러 개의 나라로 갈라졌으니 겉으로만 본다면 분명한 패배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땅에서 치러진 전쟁이 아니라서 한나라의 직접 피해는 없었던 대신 전쟁의 결과는 그들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무엇보다도 중국인들에게 이 전쟁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어찌해 보기 어렵다는 자괴감을 심어준 결과를 낳았다. 조한전쟁은 당시 한나라가 북방을 다시는 침략하지 못하게 한 전쟁이었다. 아마 중국인들에게 그처럼 참혹한 전쟁은 치우와의 탁록대전 이후 처음이었을 것이다.
조한전쟁의 시작은 무역에서 시작됐다. 자본주의 경제 관점이 발달한 조선에서는 중계무역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있었다. 이러한 조선의 발달을 시기한 일본이나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한나라는 조선을 침입할 명분으로 ‘무역의 방해’를 들고 나섰다.
한나라는 먼저 사신 섭하를 보내 조선과의 중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섭하는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배웅하던 조선 ‘비왕’을 살해했다. 한무제는 이런 섭하를 요동 동부도위로 임명하자 조선은 곧바로 섭하를 죽인다. 그러자 한나라는 2226년 전(서양 기원 109년)에 1차로 죄수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보내 조선을 공격한다. 그러나 열과 성을 다하지 않는 죄수군은 패하고 그들의 운명은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다.
1차 공격에 실패한 한의 무왕은 1년 뒤 5만 7천 명의 군사로 2차 공격을 감행한다. 수군과 육군으로 나뉜 대부대는 조선의 수도인 왕검성을 둘러싸고 무려 1년을 싸운다. 하지만, 그들은 성을 포위만 하고 있었을 뿐 단 한 차례도 공격하고 승리한 적이 없었다.
한나라의 수군을 지휘한 누선장군 양복은 후속부대 순체의 육군을 기다리지 않고 상륙하여 단독으로 조선을 상대하다 크게 패해 산 속으로 달아났다. 순체도 5만 군을 이끌고 패수를 공격하다 크게 패하고 왕검성 인근에서 양복을 만나 원인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다. 한 무왕은 이들을 단합시키기 위해 제남태수 공손수를 파견한다.
그러나 공손수는 단합보다는 좌장군 순체의 말만 들어 양복을 체포하여 죽이려 한다. 이 사건은 한 무왕이 공손수를 잡아들여 사형에 처한 다음에야 진정된다. 하지만, 순체나 양복은 더 큰 문제, 조선을 무너뜨려야 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아무리 공격해도 함락되지 않는 왕검성도 문제지만 여러 차례 전쟁에서 패한 그들은 사실상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였다. 그런 그들에게 구세주는 바로 조선 내부에서 일어난 배신이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조선의 노인, 한도, 니계상 삼, 왕협, 왕자 장 등이 배신을 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의 배신으로 조선은 멸망하고 만다.
한나라의 승리로 끝난 것처럼 보인 전쟁의 결과는 매우 특이하다. 승장인 순체는 능지처참 형을 받아 죽고 사지가 장안성 4대문에 걸렸다. 양복은 모든 재산을 바친 뒤 노비로 강등됐다. 순체가 능지처참당하고 양복이 노예가 된 것은 ‘공을 다투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세계사에서 승장을 처형한 예는 없다. 순체나 양복은 승장이 아니라 승장을 가장했기 때문이다. 포로도 없고 전리품도 없는 승장을 어느 임금이 인정하겠는가?
그러나 조선을 배신한 다섯 사람은 한나라로 가지 않고 그냥 제후로만 인정받았다. 조선을 배신한 다섯 명이 한나라로 가지 않고 조선을 나눠 다스리기 시작하자 중국은 할 수 없이 제후라는 봉작을 내린 것이다. 이는 조한전쟁에서 한나라는 결코 승리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닐까?
이후 한나라가 그토록 팽창을 하면서도 조선 이후 탄생한 국가들과의 전쟁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북방 민족의 후예들이 세운 연나라와의 잦은 충돌만이 기록 전부다.
조한전쟁은 당대 동양에서 치러진 전쟁은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가장 큰 전쟁이었다.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에도 조한전쟁에 대한 것은 자세하게 기록되고 있다. 그럼에도, 오로지 대한민국에서만 그 기록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하지 않는다. 다만,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침입해 왕검성을 무너뜨리고 4군을 설치했다.”라고 가르치고 교육받는다. 남의 나라 역사도 아니고 우리 역사를 이처럼 가르치는 것은 진실과는 동떨어진 정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독자 심순기 / 한국체험학습교육협의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