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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8. 송서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이야기

 

 

국악속풀이 77에서는 송서(誦書)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서울 경기지방에 전해오는 삼설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송서란 글방에서 읽는 식과는 달리 멋을 넣어서 읽는 것으로 가령, 고문(古文)이나 옛 소설과 같은 글을 읽을 때에 높낮이를 조화롭게 연결하며 구성지게 낭송하는 것을 말한다.

“우 근진소지의단은 의신의 평생 소원이”로 시작되는 송서 삼설기(三說記)는 경기민요의 묵계월(본명; 이경옥)명창이 1930년대 중반, 그의 스승 이문원으로부터 배워서 간직해 오던 유명한 소리조인데, 이것이 그의 제자들인 유창이나 박윤정 등을 통해 지금까지 전창되고 있는 점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묵계월이 전한 삼설기는 경기소리에 나타나는 음의 배열이나 창법 등이 유사하다는 점, 그러나 일정한 장단이 없어서 선율선의 단락, 즉 프레이즈(phrase)가 호흡의 단위가 된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하였다. 또한 삼설기의 사설내용은 과욕금물, 욕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화를 입게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매우 재미있게 묘사한 글이어서 사설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듣게 된다면 또 하나의 전통적인 음률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소리임을 강조하였다.  

이번에는 ≪한국가창대계≫에서 유일하게 서도창으로 소개되어 전해져 오는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다. 인생무상을 엮은 삼설기에 비하면 이 곡은 임과의 이별을 애절히 호소하는 내용이다. 그 중심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평양 사는 김진사는 무남독녀인 딸 <채봉>이를 두었는데, 누구보다 벼슬하여 출세하기를 원했다. 그는 벼슬과 함께 딸의 사윗감을 구해 보자는 생각에 서울로 떠난다.

채봉이는 미모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10세에 벌써 시와 서, 백가의 글 이치를 모르는 것이 없었고, 그 밖에 바느질이나 수놓기 등에도 뛰어난 재기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에 맞는 배필을 만나지 못하다가 우연히 어느 달밤, 달구경을 나왔다가 한 남성을 알게 되는데 그가 곧 강필성이라는 사람이었다.

서울로 떠난 아버지 김진사는 쉽게 벼슬을 사려고 하다가 거액만 날리고, 빚만 잔뜩 지게 되었다. 세도가인 재상은 빚을 갚지 못한다면 딸 채봉이를 애첩으로 삼겠다고 협박한다. 채봉은 도망을 치고 끝내는 아버지를 구할 목적으로 기생이 되어 평안감사의 수청을 들게 되는데, 강필성을 생각하며 애달프게 지어 부른 곡이 곧 ‘추풍감별곡’이다. 뒤늦게 채봉의 안타까운 심정을 알게 된 평안 감사는 강필성과 원앙의 짝을 지어 준다는 줄거리이다.

남녀의 사랑 이야기는 사랑과 믿음 이외의 요소인 신분의 귀천이나 벼슬, 돈, 사회구조의 모순 등으로 성사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허다한 것이다.

애절한 심경을 호소하듯이 읽어 내려가는 것이므로 보통의 송서식으로 읽으면 맛이 안나고 역시 서도창식 애조를 띤 구슬픈 조로 불러야 한다. 여섯 절로 된 장시이며 사설 내용에 치중한 작품이다.

서도의 송서도 서도의 민요창법과 유사하다. 처음에는 평탄하게 떨기 시작하다가 점차 격해 지면서 위로 쳐 올리며 떠는 소리, 목을 조르듯 떠는 소리, 꺾는 소리, 반음을 안고 퇴성하는 소리, 명암이 교차하듯 밝고 어두운 소리, 부분적으로 나오는 콧소리 등 등, 감칠맛이 나는 서도의 특유한 창법은 언제 들어도 매력적이다.

이 <추풍감별곡>은 얼마 전, 서도명창 유지숙과 서도연희보존회원들이 소리극 형태로 선을 보여 더욱 유명한 노래가 되었다. 소리극 형태로 이야기의 전개와 함께 서도의 대표적인 민요들을 노래와 춤, 동작 등으로 꾸며서 서도창법을 바탕으로 하는 음악극을 무대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극적 전개나 배우들의 소리실력, 춤, 동작들이 뛰어나 대단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기억된다. 이러한 전통적인 소재의 소리극들은 앞으로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확신한다.

전쟁으로 인해 남과 북이 갈리고, 월남해 온 토박이 소리꾼들이 거의 타계한 실정에서, 그 보존과 계승이 시급을 요하는 관서(關西)지방의 옛 노래들을 오늘의 우리가 다시 대할 수 있다는 감회만으로도 서도창법으로 부르는 송서나 시창은 충분한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전문 소리꾼이나 애호가 층이 엷고, 또한 서도창의 이해가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추풍감별곡의 이름으로 무대에 오르는 송서나 시창의 형태도 좋고, 나아가 소리극의 형태라면 더더욱 환영한다. 서도지방, 즉 평안도나 황해도의 소리들이 단절의 위기를 안고 있으나, 이 역시 우리의 소리들이기에 우리가 힘을 모아 지켜가야 하는 귀한 유산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