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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84. 김성진 명인의 대금독주, 평조회상·청성곡 등이 유명

   

 

 

지난 주 대금의 소개에서 지공(指孔)이 모두 6공이란 점, 그런데, 대금에는 청공(淸孔)이 하나 더 있어 중금이나 소금과는 다르다는 점, 청공은 갈대의 속청을 붙여 대금의 아름다운 떨림 음색을 만들어 내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는 점, 바람을 넣을 때에는 입술 모양이‘휘-’가 되도록 펴야 한다는 점, 위로부터 1.2.3공은 왼 손의 집게손가락, 가운뎃손가락, 약손가락으로 4.5.6공은 오른손의 집게손가락, 가운뎃손가락, 약손가락의 순으로 지공을 여닫는다는 점, 취법에는 저취, 평취, 역취 등 세 종류가 있어서 하나의 악기가 위 아래의 음색이 서로 다른 다양한 음색을 표출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소개하였다.

대금의 쓰임은 매우 광범위한 편이다. 대금은 그 청울림에 의한 음색이 일품이어서 독주 악기로 정평이 나 있다. 평조회상중에서 <상령산>이나 또는 <청성잦은한잎>과 같은 곡은 대금의 독주곡으로 유명한 곡들이다. 독주 음악뿐이 아니다. 정악 전반의 합주음악에도 대금의 자리는 매우 크다.

대금은 정악에만 편성되는 악기가 아니다. 민속악의 대소합주에도 대금이 빠지면 음악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비중이 높다. 그런가 하면 정가나 민속가의 각종 노래 반주, 무용의 반주 음악 등 국악전반에 걸쳐 매우 다양하게 쓰이는 악기가 대금이라 하겠다. 예를 들어 시조나 가사창의 반주에는 대금 하나만을 반주악기로 선택할 경우가 많을 정도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악기가 곧 대금인 것이다.

정악대금의 예능보유자였던 고 김성진 명인의 <평조회상>이나 <청성곡>은 대금의 독주곡으로 유명한 곡이 되어 버렸다. 청 소리를 울리며 낮게 깔려 퍼지다가 맑고 상쾌하게 고음을 내며 높은 가락으로 연결되는 평조회상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명곡 중의 명곡일 것이다.  

그러나 이 대금이란 악기는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신체적인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특히 각 지공간의 간격이 넓은 편이어서 팔이나 손가락이 짧은 사람들은 배우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손가락이 닿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힘이 든다는 체력적인 조건도 문제이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인 조건이고 마음만 먹는다면 극복은 가능하다. 어린 중학교 여학생들도 대금의 연주를 즐기고 있는 점으로도 증명이 될 것이다.

이보다 약간 작은 체제의 산조(散調)대금이 따로 있다. 주로 시나위 합주나 민속무 반주, 산조 독주 등 남도 음악을 연주하기 알맞게 만들어져 있다. 그 크기는 마치 중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산조대금은 정악대금보다 장2도 정도 높은 소리를 내며 길이가 조금 짧고 지공(指孔)사이의 간격도 좁아 빠른 음악의 연주에 편리하다. 또한 다양한 운지법(運指法 Fingering)과 기술을 구사하여 여러 가지 악조로 변주도 가능하다.

대금은 역사적으로 이름난 명인들이 많은 편이다. 정악대금의 명인으로는 조선 말기 헌종·고종시절에 이름을 떨친 최학봉·정약대 같이 사람이 있고 이들의 뒤를 이어서 근대의 명인으로 알려진 김계선, 김성진 등이 있었다. 김성진은 1950년대부터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국가무형문화재 <대금 정악>의 예능 보유자였다. 그는 현재의 예능보유자인 조창훈을 비롯하여 이상룡, 박용호, 김정수, 홍종진 등,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여 오늘날 대금 음악의 기초를 공고히 한 인물이다.

한편, 산조대금의 명인으로는 박종기, 한주환, 강백천, 한범수 등이 있고 이들의 뒤를 이어 서용석, 이생강, 이철주, 원장현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조선조 고종 때 대금의 유명한 어느 악사는 매일 인왕산에 올라 대금을 불었다고 한다.  한 곡조를 끝내고 나면 그가 벗어놓은 나막신에 모래 한 알을 넣고. 또 한 곡조를 불고 나면 모래 한 알, 이렇게 해서 종일 대금을 불어 그의 나막신에 모래알이 그득해야만 하산을 했다고 하는데, 어느 날 그 나막신의 모래알속에서 이름 모를 풀 한 포기가 돋아났다고 한다. 정성을 다한 그의 노력에 신이 보내는 미소라고 풀어 좋을 일이다.

실로 명인(名人)이 되기 위한 길이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얼마나 길고도 먼, 그리고 뼈를 깎는 고통을 동반한 험한 여정인가를 위의 일화는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