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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삼월의 경복궁 뜰을 거닐면 가슴이 아려온다

 

 

         

 

1392년 조선개국과 함께 창건된 경복궁은 이후 경회루, 자선당, 흠경각 등의 크고 작은 전각을 추가로 지어 명실상부한 궁궐의 면모를 보였으나 1900년대의 민족 수난기를 맞아 1927년 조선총독부가 흉물스럽게 들어서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광복이후 여러 논란 끝에 1997년 총독부 건물 철거를 시작으로 2000년부터는 경복궁 복원 사업이 이뤄져 2006년 건청궁의 복원 등 본래 모습을 하나둘씩 찾아가는 모습이 다행스럽다. 일본에서 지인들이 오면 반드시 들르는 이곳에 서면 경복궁의 쓰라린 역사를 새기지 않을 수 없다.

1915년! 조선이 일본에 강제 병합(1910년 8월 29일)된 지 5년째 되는 해로 일제는 이 “조선통치 5년”을 기념하기 위해 2년 전부터 골똘한 궁리에 들어간다. 궁리 끝에 1913년 “통치 5주년 기념 조선물산공진회”라는 행사를 하기로 결정하고 1913년 제국회의에서 예산을 책정하여 장소를 경복궁으로 정하는 총독부 고시령을 1913년 8월 6일 내린다.

조선물산공진회란 한마디로 박람회를 뜻하는 것으로 조선의 상징이었던 경복궁을 박람회장으로 꾸며 더 이상 궁궐에 대한 미련을 두지 못하도록 철저한 계산 하에 궁궐 파괴에 몰입한 것이다. 예산이 확보되자 총독부는 곧바로 경복궁을 오늘날 무역박람회장처럼 꾸미기 위해 멋대로 기존 전각을 허물고 신축건물을 짓는 등 궁궐파괴에 착수하게 된다.  

사정이 이리되다 보니 오백년 사직의 상징이던 궁궐은 그 원형을 잃은 채 지금의 광화문 바로 안쪽에는 분수대를 만들고 왼쪽으로는 양어장을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관, 미술관, 음악당, 철도국특설관, 동양척식특설관, 기계관 따위의 건물을 경복궁 안에 빼곡하게 지어 놓고 정원은 야외전시장이라는 명목으로 지광국사현묘탑 등 전국에서 강제로 빼앗아온 석탑,  석등, 석불, 석비를 전시했다.

이러한 물산전(박람회)은 1915년 9월 11일부터 10월 31일까지 한 달 20여 일간 열렸는데 이의 홍보를 위해 통통하고 뽀얗게 살 오른 조선기생을 앞세운 포스터를 만들어 온 나라 곳곳에 뿌렸다.

이쯤만 해도 조선의 이미지는 구겨질 대로 구겨져 치유 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총독부는 거기에 궁궐의 주인인 순종임금을 박람회장에 나오게 해 궁궐파괴자들에게 상을 주도록 했다. 조선왕조실록 1915년 10월 17일 치에 보면 “임금께서 가마로 경복궁 내의 공진회장 (共進會場)에 임어하여 포상 수여식(褒賞授與式)을 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국권을 빼앗기고 자신이 살던 궁궐을 뜯어내어 박람회장으로 개조한 것만도 통탄할 일 일인데 이들에게 “잘했노라”고 상까지 주러 가게 만든 것은 조선능멸의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이어 왕비도 나흘째 되는 날 가마를 타고 공진회에 갔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 사람들은 98년 전 경복궁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즐거운 모습으로 누구에게나 개방된 경복궁 나들이를 하지만 특히 3월의 경복궁은 경회루를 돌아 나오는 차디찬 바람 한줄기에도 가슴이 아려옴은 숨길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