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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쌈과 피맛골 그리고 우산각

[서울문화 이야기 10] 재미있는 한양 풍속 1

[그린경제=김영조 기자] 

종로 거리에서 보쌈당한 선비 이야기 

   
▲ 조선시대엔 외간남자 보쌈과 과부업어가기가 있었다. (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조선 광해조 때 문인 유몽인이 지은 어유야담에는 과거를 보러 서울에 왔다 괴기한 일을 겪은 선비 이야기가 있다. 인적이 끊긴 종가(현재의 종로)에서 장정 네 명에게 보쌈을 당한 일이다. 어딘지도 모르게 끌려가 예쁜 여인과 동침할 수밖에 없었던 선비는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어 다시 과거를 보러 한양에 왔다가 밤마다 그 종가를 서성였으나 그 장정들을 또 만날 수는 없었다. 

조선시대 때는 과부가 된 여인은 죽을 때까지 개가를 못한다는 법이 있어 이런 일도 벌어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연산군 4(1498) 송헌동이라는 사람이 이 법을 폐하고 개가를 허락해달라고 임금께 청하였지만 대다수 대신이 반대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보쌈에는 여자집에서 외간남자를 보()에 싸서 잡아다가 강제로 동침시키는 경우와, 남자가 과부를 보에 싸서 데려오는 과부 업어가기가 있었다
 

옛 추억이 서린 종로 피맛골

   
▲ 벼슬아치의 말을 피해 다닌 ‘피맛[避馬]골’

조선시대는 양반과 서민이 분명히 구분되던 시대였다. 그래서 서민들은 종로에서 높은 벼슬아치를 만나면 가던 길을 멈추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그들이 지나가길 기다려야 했다. 그러자니 오죽 힘들었을까? 그래서 그들이 꾀를 낸 것은 종로 양쪽에 나 있는 좁은 골목길로 피해 다니는 것이었다. 이는 곧 높은 벼슬아치의 말을 피해 다닌 꼴이 되었고 피마(避馬)’라는 말에서 피맛골이 된 것이다. 

피맛골은 서민들의 지름길로 이용된 까닭에 자연스레 엽전 몇 닢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국밥집과 선술집, 목로술집 등이 많았다. 또 몰락한 양반들이 먹고살려고 국밥을 팔았는데 양반 체면 때문에 얼굴은 돌리고 팔뚝만 뻗어 손님에게 밥그릇을 건넸다고 해 팔뚝거리라는 별명도 붙었다. 특히 80년 민주화 항쟁이 절정이었던 무렵에는 거리시위 때 사람들이 최루탄과 백골단을 피해 이곳으로 숨어들었고 막걸리로 분을 삭이던 애환이 서려 있어 피연(避煙)이라고도 불렀다. 옛 추억이 서린 피맛골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동대문 밖 청백리집 우산각을 아시나요?

   
▲ 비가 새는 방안에서 일산을 펼친 청백리 유관선생(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일산(日傘)이 없는 집에서는 장마철을 어떻게 견디어 내나?” 이 말은 조선조 청백리로 소문난 유관(柳寬) 선생이 집안에 비가 새자 아내에게 건넨 말이다. 유관선생이 과거 급제 때 임금께 받은 일산을 비가 새는 방안에서 펼친 모습이 그려진다. 유관선생은 고려 말·조선 초 문신으로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어 대사성, 대사헌 등을 지낸 분이다. 그런 그가 성 밖 후미진 곳에 돌담은커녕 나무 울타리도 없고 물론 대문도 없는 두어 칸 오두막집에 살면서 나갈 때면 말을 타지 않고 짚신에 지팡이를 짚고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맨발에 베옷을 걸치고 남새밭(채소밭)을 가꿨다.  

이렇게 청빈하게 살았던 유관이 살던 집을 뒷날 사람들은 우산각(雨傘閣)”이라 불렀다. 이 집터는 5대손인 <지봉유설>의 이수광이 이어 살았는데 그 역시 우산을 펴 근근이 비를 가렸다는 뜻으로 비우당(庇雨堂)”이란 이름이 붙었다. 

   
▲ 창신역 근처 창신쌍용아파트 2단지 옆의 복원한 비우당, 비우당 뒤 오른쪽에는 단종 비 정순왕후 송 씨의 자주동천이 있다.

원래 비우당이 있던 집터는 현재 창신쌍용아파트 2단지 자리로 현재는 그 옆에 작으마한 초가집으로 복원해두었다. 복원해둔 집터는 수양대군(세조)에게 쫓겨난 단종의 비 정순왕후(定順王后) () 씨가 폐위된 뒤 비단을 빨면 자줏빛 물이 들었다는 전설의 샘인 자지동천(紫芝洞泉)이 있는 곳인데 지금은 물이 말라있었다서울지하철 6호선 창신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유관 어른이 생각나는 것은 그분이 높은 관직을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청빈한 삶을 몸소 실천한 분이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