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4월 30일 새벽 선조는 한양(서울)을 버리고 떠납니다. 하지만, 도성의 문은 굳게
닫히고, 백성의 피난길은 막혔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밧줄을 타고 성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생겼으며, 도성 안은 약탈과 겁탈이 기승을 부리고, 불을 지르는 일도 늘었습니다. 결국은 경복궁도 불타고 마는데 그동안은 경복궁을 왜병이 불태웠다고 알려졌었습니다. 그러나 '선조수정실록’에 보면 불을 지른 사람은 성안 백성이었습니다.
“임금의 피난행렬이 떠나려 할 즈음 도성 안의 간악한 백성이 먼저 내탕고에 들어가 값진
물건들을 다투어 가져갔다. 이윽고 행렬이 떠나자 난민이 크게 일어나 먼저 장례원과
형조를 불태웠다. 이는 두 곳의 관서에 공사 노비의 문서가 있음이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궁성의 창고를 크게 노략질하고, 불을 질러 자취를 없앴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의 세
궁궐이 모두 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