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 = 서한범 명예교수] 경기소리극의 제작과 이를 전문적으로 공연할 단체, 즉 경기소리극단의 창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소리극에 참여할 소리꾼들과 연출자, 연주자, 무용수 등과 전문 스탭들은 어느 정도 확보가 되어 있어 당장이라도 창단된다면 활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 그러나 소리극을 창단하는 주체는 재정능력이 없는 보존단체나 개인이 아니라 능력이 있는 국가나 지방정부, 또는 기업이라는 이야기, 정부기관이나 담당부서의 수장이 결심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처럼 생각되는데도 막상 소리극단을 창단하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라는 이야기르 f했다.
그리고 소리극단의 창단과정이 어렵다고 하면 우선은 ‘국립국악원’이라든가 ‘경기도립국악단’과 같은 국공립기관들이 앞장서서 소리극운동을 펼쳐나가야 한다는 이야기, 국립국악원의 소리극 중에는 ‘정가극’ <황진이>처럼 정가를 기본으로 하는 작품도 무대에 올렸는데, 그 발상 자체가 침체된 정가 음악의 저변을 확대하는 길이라는 점에서 크게 환영받을 일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정가(正歌)란 점잖은 선비들의 노래로 첫째는 가곡(歌曲)이고 둘째는 가사(歌詞)이며 셋째는 시조(時調)이다.
이들 노래의 특징은 뭐니 뭐니 해도 감정을 들어내지 않는 스스로의 마음을 추스르는 노래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노래들은 대체로 박자가 느리다는 점, 형식이나 장단형이 까다롭다는 점, 정좌해서 긴 호흡으로 불러야 한다는 점, 노랫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불러야 한다는 점, 소규모의 관현악이나 관악기가 지정해 주는 대로 불러야 한다는 점 같은 까다로운 조건이나 격식 때문에 현대인들에겐 별로 인기가 없는 재미없는 노래가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흥겹고 이야기가 있는 판소리, 또는 경서도 민요, 또는 범패에 비해 자생력도 취약한 종목으로 굳어졌다. 그래서 혹 개인의 발표회나 혹은 정가의 연구단체나 보존단체가 어렵게 정가의 무대를 만든다 해도 노인들 이외에는 자리가 항상 텅텅 비어있었던 것이 그간의 상황이었다. 이처럼 노인들이 즐기는 정가에서 젊은이나 학생들이 즐겨 부르도록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문제가 관련 전문인들의 고민인 것이다.
필자는 황진이 공연리뷰 “정가(正歌)극, 그 가능성을 확인한 실험무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최근 들어 국악계, 특히 성악의 공연형태를 보면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형태의 공연물들이 줄을 잇고 있다.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남도의 창극(唱劇)뿐 아니라, 경기소리나 서도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소리극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드디어는 발상 자체가 쉽지 않은 정가를 기본창으로 하는 노래극이 제작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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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가극 <영원한 사랑 - 이생규장전>의 한 장면 |
국립국악원이 전통문화의 재창조 씨리즈 세 번째 작품인 정가풍류극(正歌風流劇) <선가자 황진이>가 바로 그것이다. 창극을 공연함으로 인해 판소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고, 그 소리들이 대중속에 확산되어 왔다는 점은 정가의 중흥을 기원하는 전문가나 애호가들도 충분히 동의가 되어야 할 것이라 믿는다.
<선가자-황진이>는 40여명의 창자(唱者), 30여명의 연주단과 25명의 무용단, 그리고 20여명의 스�진과 40여명의 제작진 등, 총 150여명이 참여하여 만든 작품이었다. 줄거리는 황진이가 서경덕을 찾아가 제자가 되기를 청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여 서경덕의 죽음 이후, 지음(知音)의 경지를 깨닫기 위해 떠난다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는데, 주로 소세양, 이사종, 송겸, 이언방과의 교분을 회상하는 대목들이 중심을 이루면서 노래가 펼쳐지고 있다.”
황진이에 출연한 등장 배우들의 의욕과 열의는 대단했다. 노래의 수준이나 관현악과의 호흡도 일품이었다. 특히 이언방으로 분한 박문규의 백구사나, 천상의 가객으로 분한 이동규의 태평가는 정가의 진수, 정가의 음악세계를 실음(實音)으로 안내해 준 대표적인 예라 할 것이다. 기타 정자 뒤에 발을 내리고 걷는 방법으로 실내와 실외공간을 확보해 나가는 무대장치는 간결하면서도 변화를 주고 있어 극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살려 주었다.
정가를 기본창으로 시도해 보는 악극은 처음이어서 극의 짜임이나 진행, 출연자들의 연기나 노래수준, 관현악이나 춤의 역할, 기타 무대의 조건, 연출의 방향 등은 지속적인 시험기간을 통하여 개선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선가자(善歌者)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수준 높은 노래가 객석에 전달되어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와 음악극의 지휘자는 관현악만이 아니라, 무대 위의 창자를 고려하여 위치 선정을 재고해야 한다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축적된 경험이나 인적자원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 정가극의 공연은 상상밖에 신선한 충격을 국악계에 던져 주었다. 정가의 예술성을 들어낸 공연에서 객석과의 충분한 소통과 교감이 이루어졌고, 정가를 기본창으로 하는 소리극으로서의 성공 가능성, 그 이상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실험무대였다고 평가받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