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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년 동안의 역사, 조선왕조실록

[서울문화 이야기 25]

[그린경제/얼레빗 = 김영조 기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 개국부터 끝까지 정치, 외교, 군사, 법률, 통신, 종교 등 인간사의 모든 부분을 종합하여 기록함으로써,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정확한 기록물로 평가받는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도 실록이 편찬되었지만 한 왕조가 조선왕조실록처럼 긴 시간에 걸쳐 풍부하고도 엄밀한 기록을 남긴 예가 없다 

   
▲ 《조선왕조실록》 표지들(왼쪽부터 태조실록, 중종실록, 광해군일기, 선조수정실록, 현종개수실록, 세종실록)

조선왕조실록은 궤짝에 담아 보관해왔다. 그리고 실록이 서로 닿는 것을 막도록 사이에 초주지를 끼워 넣고 악귀를 쫓는 붉은 보자기로 쌌다. 또 그 보자기에는 벌레와 습기를 막으려는 청궁, 창포 등의 한약재 가루를 담았다. 한 궤짝에는 15~20책을 담아 철저하게 봉인하고 자물쇠를 채웠다. 이렇게 자물쇠를 채운 왕조실록은 처음엔 서울의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사고에 보관했지만 임진왜란 때 전주 사고를 뺀 나머지 사고가 모두 불타자 정족산, 적상산, 태백산, 오대산 등의 산속 사고에 보관했다. 그리고 실록은 임금도 볼 수 없었으며, 실록을 관리하는 사람조차도 함부로 열지 못하게 했다. 오직 임금 명을 받은 사관만 궤짝을 열게 했고, 그 사관은 임금의 명을 받아 사고에 가는 것을 커다란 명예로 생각했다. 
 

실록을 말리는 직책을 가진 벼슬 포쇄별감 

여름철 특히 장마철에는 습기가 많아 곰팡이가 스는 일이 많다. 그래서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이부자리며 옷가지들을 내다 말리느라 집 안팎은 온통 빨래로 덮인다. 책도 마찬가지다.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는 조선왕조실록은 통풍이 잘 되는 사고(史庫)에 보관이 되어 안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의 관리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태종실록 23(1412) 43일 기록에는 포쇄별감(曝曬別監)으로 하여금 찾아내어 싸 가지고 와서 전악서(典樂署)의 악보(樂譜)를 참고하게 하소서.”라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포쇄별감이란 사고(史庫)에서 책을 점검하여 축축한 책은 바람을 쐬거나 햇볕에 말리던 일을 맡아보던 별감(別監)을 말한다. 아예 별감을 두어 관리 했던 것이다. 별감이 있었지만 실제 책 말리는 일은 아랫것들이 했을까? 아니다. 

   
▲ 장마가 지나고 햇살이 내리쬐면 《조선왕조실록》은 포쇄를 했다.(그림 이무성 한국화가)

중종실록 36(1519) 716일 기록에는 외방 사고(史庫)의 거풍(擧風)하는 일을 외방의 겸춘추(謙春秋)로 하게 하려 하시나 외방 겸 춘추는 사관(史官)이 아닙니다. 사국(史局) 일에 이런 발단을 열어놓으면 사국 일이 가벼워지게 될까 두렵습니다.”라는 좀 특이한 상소가 보인다. 책을 말리는 것쯤은 아무나 할 것 같아도 상소문에는 아무나 하면 안 되며 꼭 사관이 하도록 해달라.’고 간언하여 임금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아 조선왕조실록의 거풍 곧 포쇄는 엄격한 사관들의 관리 아래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철저한 관리가 있어 오늘날 세계에 유례없는 문화유산으로 남게 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쉬운 인터넷 번역본으로 볼 수 있다 

<이산>, <왕과 나> 그리고 <대왕 세종> 등 사극 드라마는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다가 정조를 괴롭히는 화완 옹주는 언제 죽었을까?”, “김처선은 어디 김씨이며, 어떻게 죽었을까?”, “충녕대군은 언제 양녕대군 대신 세자로 책봉되었을까?” 같은 궁금증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간단하다. 바로 우리에겐 번역본 그것도 인터넷에서 쉽고 간단하게 검색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이 있기 때문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실록 한글번역본·원본 이미지는 물론 한문으로 된 원문에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문장부호를 붙여준 한문표점본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입체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쉽게 조선시대를 확인할 수가 있다. 다만, 번역 과정에서 직역 위주로 한 나머지 이해하기 어려운 월(문장)과 낱말이 많은 것이 흠이다. 또 실제 조선시대에 쓰지 않았던 낱말을 일본말을 들여와 번역한 것은 두고두고 문제로 남는다.  

인터넷 조선왕조실록 보기 http://sillok.histor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