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지난 5월 23일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린 젊은 가야금 연주자 조아라 양의 취태평(醉太平) 연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조 양은 어린 시절부터 가야금을 시작하여 수차례 개인 발표회, 해외 연주 경험, 특히 전국가야금 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할 정도의 실력파 연주자라는 이야기, 젊은 연주자들은 정악보다는 산조, 산조보다는 창작곡이나 퓨젼을 즐겨 발표하는 추세이나 느리고 여유 있는 정악을 무대에 올리는 연주자들은 흔치 않다는 이야기, 영산회상은 원래 성악곡이었던 것이 조선조 후기로 내려오면서 기악화 되었고, 악곡을 삽입하여 연주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하는데, 이러할 경우에는 <별곡>이나 또는 <가진회상>이라고 부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또 몸과 마음이 극도로 피곤해 있을 때, 관악영산회상을 들으면 생기가 돋고, 주체하기 힘든 욕망이 끓어오를 때, 현악영산회상을 대하면 곧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는 이야기, 정악은 기교보다는 성정에 바탕하여 사람의 마음을 강력하게 조절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는 음악이라는 이야기, 오늘의 발표회를 통하여 영산회상이 곧 개인의 수양, 그리고 사회를 교화시켜 온 음악이었음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과 영산회상 전곡 연주에 더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도전해 주기를 바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속풀이에서는 얼마 전, 타계한 이은관 선생의 소식을 듣고 추모의 뜻으로 관련이야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겠다.
서도소리의 지존(至尊), 97세의 이은관(李殷官)명창이 그토록 즐겨 부르던 배뱅이굿을 뒤로 하고 조용히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아마도 살아생전 만나지 못하고 소리로만 대하던 배뱅 아씨를 직접 만나러 떠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선생을 기억하며 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이은관 명창은 1917년에 38이북인 강원도 이천이라는 마을에서 아버지(이윤하)씨와 어머니(길씨)의 7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이 동네는 강원도이기는 하나 황해도와 평안도의 접경지대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서도 지방의 풍속이나 소리를 듣고 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 명창이 소리꾼으로의 외길 인생을 살게 된 계기는 10대에 철원에서 열린 가요 콩쿨대회에서‘사설난봉가’로 일등을 한 것에 비롯된다. 그러니까 그는 어린 시절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유난히 노래(당시에는 소리)를 좋아했다. 당시 학생들의 평가방법은 갑(甲), 을(乙), 병(丙), 정(丁)으로 등급을 구분하였는데 음악은 늘 갑이었고 국어는 을, 산술은 정이었다. 음악이 갑이었으니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학교 안의 학예회 행사나 기타 학교 밖 행사에도 늘 뽑히는 행운을 안았다.
당시에는 학생들이 우리의 소리를 마음대로 부르지 못할 때여서 국악이라는 말도 없었고, 학교에서는 우리 소리는 부르지 못하고 동요나 창가와 같은 것을 배우던 시절이었다. 이 명창이 어려서부터 민요나 속가를 좋아하였기에 부모님은 자식을 위해 유성기를 한 대 사 주었다고 한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서 자식의 장래를 위해 비싼 기기를 사 주었다는 부모의 남다른 교육열도 예삿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강원도 이천의 그가 살던 마을은 모두 40호 정도였는데, 그의 집에 있던 유성기가 마을 전체의 유일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매우 부러워했을 법도 한데, 당시의 일반적 의식은 문화예술을 격하시켰기에 “소리를 하면 안 된다,”, “집안 망한다.” 같은 따가운 시선과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하여튼 그는 유성기 음반을 통해 박춘재의 소리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박춘재의 음반을 통해 경복궁 타령과 같은 경기 민요를 먼저 접하게 되었고, 라디오를 통해 서도소리와 경기소리를 즐겨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방 신문사 주최로 강원도 철원극장에서 가요 콩쿨대회가 열렸는데, 총 출전자 50여명을 제치고 당당하게 불러 영예의 1등상을 탔던 것이다. 가요콩쿨대회에 일반 가요가 아닌 전통민요 즉 소리로 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단지 소리가 좋았기 때문에 민요를 듣기도 즐겨하고 부르기도 즐겨했지만, 본격적으로 전통의 소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콩쿨대회에서 상을 받게 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인해 일가친척은 물론, 친지 등 주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황주에서 이사를 와서 살고 있는 김00의 권유는 그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로의 꿈을 꾸게 했다.
“소리를 본격적으로 배우려면 이런 산골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황해도로 가서 선생을 제대로 만나, 제대로 배워야 명창이 될 수 있다. 함께 가자.”
청년 이은관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친구를 따라 황해도 황주 권번을 찾아갔고 그 곳에서 이인수 선생을 만나게 된다. 이인수 선생과의 만남이 바로 그가 소리 인생을 살게 된 결정적인 인연이 될 줄이야 본인도 몰랐을 것이다. 권번이라면 이른바 기생을 양성하는 학교이면서 조합인데, 그 곳에서 기생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있던 분이 이인수 선생이었다. (다음주에 계속, 사진 전옥희 명창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