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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주수봉은 묵계월을 최정식 사범에게 보내

[국악속풀이 177]

[그린경제/얼레빗=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1910~20년대에는 《증보신구잡가(增補新舊雜歌)》를 비롯하여 《고금잡가편(古今雜歌編)》 등 많은 종류의 노래 사설 모음집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내용은 가곡이나 가사, 시조와 같은 노래뿐 아니라 오늘날 민속음악으로 분류되고 있는 각 지방의 소리들, 예를 들면 초한가(楚漢歌)를 비롯한 서도지방의 소리, 육자배기를 비롯한 남도의 소리, 그리고 서울이나 경기지방의 긴 좌창, 앞산타령이나 뒷산타령과 같은 선소리, 그 외의 일반 민요, 단가(短歌)나 회심곡, 병창 등 성악의 전 장르를 망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러한 노래들이 하나의 노래책 속에 들어 있기에 책 이름도‘여러 노래의 모음집’이란 뜻의 잡가(雜歌)로 명명한 것이라는 이야기, 절대 노래 자체가 잡스럽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란 점을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명칭은 경기소리꾼들이 자신들의 소리를 스스로 낮추어 부른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이창배의 《한국가창대계》에서도 12잡가, 휘몰이잡가, 입창이나 송서, 각 지방의 민요 등으로 구분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또 경기잡가뿐 아니라 기악의 산조음악도 한때는 <헛튼가락>, <허드렛 가락>, <흐트러진 가락>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현재까지 산조 음악을 <헛튼가락>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산조음악의 예술성을 인정하여“더 넓게 확산되어 음악”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12가사를 본떠 긴소리 12곡을 모아 놓은 서울 경기의 12좌창은 그 연행의 태도나 음악적 분위기가 12가사와 유사하다. 단정하게 앉아 조용하게 불러야 하는 노래가 바로 긴소리 좌창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노래를 잡가라 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잡가>라고 하는 아름답지 못한 명칭보다는 <경기좌창>이나 <서울의 긴소리>로 부르기를 권한다.  

지난 시대, 산조를 연주해 온 악사들에게 풍류를 아는가? 라고 물으면 그들은 “풍류는 잘 모르고 헛튼가락이나 좀 탄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정악(正樂)이나 정가(正歌)에 대해 자신이 하는 음악을 낮추어 부르는 겸손이 깔린 표현이 아닐까 한다. 명칭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다시 하기로 하고, 이번 주에는 묵계월 명창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도록 한다.  

묵계월 명창은 1921년 서울에서 8남매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경옥(李瓊玉). 당시는 일제의 탄압이 극도에 달해 있을 때여서 먹고 사는 일이 매우 힘든 시기였다. 어머니는 가난하기도 하지만, 어려서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이는 딸에게 소리를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묵00씨네 집안의 양녀로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도 이경옥이라는 이름에서 묵계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양모는 딸의 소질이나 적성을 살려 그가 좋아하는 소리공부를 하도록 배려해 주었다고 전하다. 

우선은 묵계월이 10여세가 되던 해, 당시 유명한 소리꾼이었던 주수봉(朱壽奉)에게 보내서 경기민요며 서도민요 등을 배우게 하였다. 주수봉 선생은 2년여 어린 묵계월을 지도하면서 그녀가 경서도소리에 남다른 소질을 보이는 면을 보고는 그를 더 큰 선생에게 보내기로 결심을 한다. 그 선생이 바로 <금강산타령>, <풍등가> 등을 작사, 작곡한 당대 속요(俗謠)계를 주름잡던 거성 최정식(崔貞植)사범이었다.  

참고로 <금강산타령>의 시작은“천하명산 어디메뇨, 천하명산 구경 갈 제, 동해 끼고 솟은 산이 일만 이천 봉우리가 구름같이 벌였으니 금강산(金剛山)이 분명쿠나”로 시작하는 맛깔스런 노래로 경기명창들이 앞다투어 부르는 노래이다.

 

   
▲ 제자 임정란 명창과 함께 소리를 하는 묵계월 선생(오른쪽)

 한편 <풍등가>는“국태민안(國泰民安) 시화연풍(時和年豐), 연년(年年)이 돌아든다. 황무지 빈터를 개간하여 농어보국에 증산하세”로 시작하는 비교적 건전한 가사 내용으로 짜여져 있으며, 그 중심 가락은 창부타령조로 부르고 뒤끝은 <금강산타령>과 같이 노래가락조로 맺는다. 마치 서도의 <초한가> <공명가> <제전> 등이 수심가조로 맺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풍등가는 부르는 사람이 금강산타령처럼 그렇게 많지 않아서 좀처럼 듣기 어려운 실상이다. 

주수봉은 그가 지도하던 묵계월을 최정식 사범에게 보내준 참으로 고마운 선생이었다.

소질이 있고 재주가 있는 제자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폐습이 아직까지도 잔존해 있는 것이 이 바닥의 일반적인 생리이거늘, 제자의 앞날을 위해 더 큰 선생에게 보내주는 주수봉이라는 명창의 넓은 마음이나 결단이 없었던들 오늘의 묵계월이 존재했을 것인가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묵계월을 소개 받은 최정식 사범은 학강(鶴崗) 최경식 선생의 제자이다.

그렇다면 학강 선생은 또한 어떤 명창이었는가? 그의 아호는 학강, 즉 학이 머무는 높은 산봉우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아호이다. 최경식을 부를 때에는 항상 앞에 학강을 붙이는 것이 관습처럼 되어 있다. 학강 선생에게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그는 매우 유명한 명창이어서 당시 서울의 소리선생 치고 학강 최경식에게 배우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명창이었는데, 학강 사범은 많은 제자들에게 시조나 가사 등을 전수해 주고는 결코 월사금, 즉 지금으로 말하면 레슨비를 받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사범이었다.  

벽파 이창배의 《한국가창대계》에 따르면 최경식의 큰 제자로 최정식, 유개동, 박인섭, 김태봉, 김순태, 정득만, 이창배 등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중 큰 제자가 바로 최정식이지만, 선생 앞에 오랫동안 소리를 많이 배워서 선생의 뒤를 이은 명창이 바로 오늘날 경기소리의 중시조격인 벽파 이창배 사범인 것이다.  

하여튼 주수봉을 통해 묵계월이 만나게 된 최정식 선생은 당대 최고의 명창이었던 학강 선생의 제자였고, 학강 최경식은 그 윗대의 장계춘, 그리고 그 위의 추교신으로 이어진 경기소리의 정통파 계보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경기소리의 계보를 말할 때, 1800년대 초반의 <추, 조, 박>의 이야기부터 시작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추, 조, 박>이란 무슨 말인가? (다음주 계속)